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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계 “러시아가 몰수한 내 특허, 소송 근거 충분”
우크라이나 침공 장기화로 한국 기업 현지 생산 멈춰
러시아, 법 개정해 비우호국 시민 지적재산권 침해 보상 ‘0원’
파리협약·TRIPS 등으로 ‘적절한 보상’ 범위 따져야
물품매매 계약 때 러시아 가입한 CISG 적극 활용
2022-06-16 18:33:33 2022-06-16 18:33:33
[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113일째 접어들면서 이미 현지에 투자했거나 투자를 고민하는 한국 기업인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이에 관련 학계와 법조계가 16일 러시아에서 찾아야 할 기회와 특허권 침해 대처 등 다양한 변수에 대응할 방안을 제시했다.
 
이상준 국민대 러시아·유라시아학과 교수가 16일 법무법인 바른에서 열린 '한러 비즈니스 가능성 모색 및 사업 리스크 관리' 세미나에서 러시아 경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이범종 기자)
 
이상준 국민대 러시아·유라시아학과 교수는 16일 법무법인 바른에서 열린 '한러 비즈니스 가능성 모색 및 사업 리스크 관리' 세미나에서 “넓게 보면 러시아가 어떻게 공급망을 구축할 지 보면 외려 기회로 작용할 부분이 있다”며 “과거 냉전 시기에도 한국 기업들이 러시아 시장을 일궜고 글로벌 시장을 만드는 데 러시아가 상당한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올해 1분기 러시아 경상수지 흑자는 사상 최대인 580억 달러를 기록했지만 중장기 전망은 밝지 않다. 기계와 반도체 등 중간재 수입이 줄어들어 러시아와 전세계 생산 체계 간 격차가 벌어질 수 있어서다. 서방의 석유·가스 수입 금지와 러시아 수출품 감소도 악재다.
 
전쟁의 파급력은 거세다. 러시아는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2% 미만에 불과하지만 유럽 천연가스 공급량의 약 40%를 차지한다. 반도체 원료 팔라듐의 3분의1 이상을 미국에 공급하는 등 전세계 칩 부족에도 영향을 준다.
 
발등의 불은 한국에도 떨어졌다. 현대차와 삼성·LG전자, 조선3사의 현지 생산이 멈췄다. 경기침체 국면으로 한국산 제품 가격이 경쟁력을 잃게 됐다.
 
다만 이 교수는 서방의 러시아 신용평가 하락은 망신주기 의도가 있고 외채 상환도 제대로 하고 있어 디폴트 가능성이 낮다고 평가했다. 한국 기업이 자동차 엔진 공장 등 중간재 생산시설을 현지에 지어놔 보완적 기능을 한다고 관측했다.
 
이 교수는 대러 협력 방향으로 △국제 규범에 맞는 협력 기준 마련 △차별화된 경제안보 전략 △글로벌 공급망의 가변성 적극 대응 △러시아 정부와 국민을 구분하는 방안 모색 등을 들었다.
 
이 교수는 “1991년 소련 해체와 2008년 미국발 글로벌 위기, 2014년 러시아 제재 당시에 우리 기업의 노력이 어땠는지 돌아봐야 한다”며 “경험적 사실들은 과거 우리가 어떻게 헤쳐와서 일궜는지 보면 부정적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유준하 법무법인 바른 러시아 변호사가 ‘러시아 진출 한국 기업의 산업·사업영역에 따른 리스크 관리’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이범종 기자)
 
러시아 내 지적재산권을 지킬 수단도 요원하다. 한국인이 보유한 러시아 내 유효특허와 등록상표는 2020년 기준으로 각각 3951개와 819개다. 그런데 러시아 연방정부는 비우호국 시민의 특허권을 침해한 경우 지급해야 할 배상액을 3월 없앴다.
 
유준하 법무법인 바른 러시아 변호사는 "실제 러시아 안에서 법적 다툼을 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며 “파리협정과 ‘무역관련 지적 재산권에 관한 협정(TRIPS)’ 등을 통해 공권력 있는 판결문을 활용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베른협약과 특허협력조약(PCT)을 활용하는 방법도 거론됐다.
 
파리협약 제5조는 특허 몰수 남용 방지를 규정한다. TRIPS는 권리자 승인 없는 지적재산권 사용에 대해 '적절한 보상'을 명시한다. 유 변호사는 "러시아 결의안에 나온 강제실시에 대한 보상액을 0%로 설정한 것은 적절한 보상에 위배된다"며 "TRIPS 제3조 1항은 '지식재산권 보호에 관해 내국민보다 불리한 대우를 부과하는 것을 금지한다"고 설명했다.
 
한국 기업은 러시아 밖에서 현지 정부를 상대로 소송할 수도 있다. 우선 투자자가 투자협정 규정대로 상대 정부 상대로 배상 청구할 수 있는 투자자-국가간 분쟁해결(ISDS)제도가 있다. 반면 국제투자분쟁 해결센터(ICSID)는 러시아가 협약 체결 후 비준하지 않아 활용 가능 여부가 불확실하다.
 
다만 한·러 투자보장협정(BIT)을 근거로 국제법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다. 협정 1조는 저작권·상표권·특허·산업디자인·기술공정·노하우·영업비밀과 상호권 등이 포함된 지식재산권과 영업권에 대한 투자를 보장한다.
 
상황이 꼭 절망적인 건 아니다. 현재 제재 대상이 아닌 제과(오리온·팔도·롯데 등)은 현지 기업 활동이 활발하다. 해상·항공 물류도 대행 업체를 통해 이어지고 있다.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등 제3국을 통한 교역도 해당국에서 서류 교체 등으로 러시아에 발송 가능하다. 다만 한국은 비우호국인만큼 은행의 LC(신용장) 발행과 통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대금 지불 등 외환거래는 제재에 포함되지 않은 은행을 통해 거래할 수 있다. 유 변호사는 “미국이 어느 은행을 제재하는지 매 거래마다 확인해야 조금이라도 안전하다”고 말했다.
 
이에 러시아 투자를 앞두고 있다면 분쟁에 대비해 계약서를 신중히 작성해야 한다. 물품 매매 계약 해제에 따른 손해배상은 러시아가 가입한 '국제물품 매매 계약에 관한 유엔 협약(CISG)'을 근거 삼을 수 있다. 유 변호사는 CISG에 대해 "계약서를 기준으로 하여 분쟁 발생 시 국제적 통용 규칙과 국제협약, 준거법 등으로 해석한다"며 "자동집행조약이어서 별도 입법 없이 국내법과 효력이 같다"고 설명했다.
 
다만 "국제 물품 매매계약에 한정되기 때문에 증권이나 기타 유가증권, 주식에 대한 보장은 받을 수 없다”며 "당사자 간 합의된 관행이 계약 내용에 포함될 수 있어 오해의 소지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외국에서 받은 중재판정이 국제조약에 따라 인정되는 경우 러시아 상사법원에 의해 집행된다. 하지만 관련 소송이 현지에서 진행되고 있거나 끝난 경우 인정되지 않는다.
 
유 변호사는 "계약 당사자 간 협의로 CISG 일부나 전부를 배제할 수 있어 계약서를 면밀히 검토·작성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범종 기자 smil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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