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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2021년 기사(騎士) 소설
2021-06-04 06:00:00 2021-06-04 06:00:00
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아베드라가 1605년 출간한 '기발한 이달고 돈키호테 데 라만차'는 기사(騎士) 소설에 빠져 자신을 기사로 여기고, 종자 산초 판사와 모험을 떠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돈키호테는 풍차를 거인으로, 객줏집을 성으로, 놋쇠 대야를 맘브리노 투구로 부르면서 이를 똑바로 보는 정상적인 사람들은 마법에 걸린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슬픈 몰골의 기사'라고 칭하지만, 그를 처음 본 사람은 일말의 여지없이 '미치광이'라고 단정 짓게 된다. 세르반테스는 이처럼 이 소설을 통해 당시 유행했던 기사 소설들을 풍자한다.
 
이 작품의 속편이 출간된 1615년으로부터도 400년이 넘은 2021년 우리나라에서도 마치 마법의 효과를 내듯이 사람들을 사실과 사실이 아닌 것 사이에서 혼동하게 하는 기사 소설이 난무하고 있다. 그 기사 소설은 가짜 기사(記事)들이다. 왜곡 또는 과장된 기사도 의도적으로 작성된 것이라면 가짜 기사는 아니더라도 사람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기사 소설과 다름없다.
 
최근 언론 보도를 보면 코로나19 백신, 부동산 관련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세, 한강 사망 사건 등 주요 사안을 다룬 기사 중 일부는 기사 소설을 방불케 한다. 코로나19 백신을 극약처럼 여기면서 공포와 불안에 떨게 했던 언론은 백신의 홍보대사로 돌변했다. 어떤 부동산 기사는 대상자가 아닌 주택 소유자도 전쟁터로 몰려 세금 폭탄을 맞을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한강 사망 사건은 아직 최종 결론이 나오지 않았지만, 일부 허위사실에 대해 경찰이 수사하고 있다.
 
오늘도 역시 간밤에 대량으로 찍혀나온 지면들을 보니 대통령과 4대 그룹 총수들이 만난 자리와 관련해 일부 언론의 불순한 부채질이 엿보인다. 올해는 일요일과 겹쳐 자유인에게는 유감이지만, 우리나라의 중요한 기념일 중 하나인 광복절을 자꾸 거론한다. 이에 대한 온라인상 빅데이터 호감도가 급상승하고 있다는 기사 역시 언론의 영향력을 새삼 느끼게 한다. 
 
기사 소설은 TV와 신문을 벗어나 유튜브로, 페이스북으로, 블로그로, 그리고 각종 온라인 게시판으로 재판·증보된다. 지금도 동영상 또는 게시판에서 "백신 맞아 사지 마비", "백신 맞고 자살한다" 등의 터무니없는 내용을 접하고, 이를 의학적 진실인 것처럼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도 일부 유튜버는 사실을 가장한 교묘한 정보, 사실과는 상관없이 제목이 전부인 자극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대가로 톡톡한 이익을 얻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작품 속에서는 돈키호테의 두 번째 모험을 막기 위해 라만차의 신부와 이발사가 벽을 가득 채운 기사 소설들을 마당에 던져 불살라버린다. 하지만 현대에서는 그러한 극단적인 방식으로 가짜 기사를 막을 수도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기사 소설의 재판·증보는 정보통신기술 발달에 기인한 것이기도 하지만, 때때로 불신을 자초해 온 기성 언론의 원죄가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시대가 아무리 흐르고, 정보통신기술이 계속해서 발전하더라도 언론의 책무는 바뀌지 않는다. 시청자와 구독자에게 진실을 전달하는 것이다. 무모한 두 번째 모험 중이던 돈키호테를 소달구지에 태워 다시 라만차로 데려간 신부와 이발사처럼 언론은 혹시라도 왜곡되거나 과장된, 심지어 가짜인 기사를 접할지 모르는 사람들을 바른 곳으로 인도해야 한다.
 
정해훈 법조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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