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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혐오철학의 기원: 윤지선의 곤충혐오에 대한 과학적 분석
2021-04-15 06:00:00 2021-04-15 06:00:00
철학 논문 한 편으로 유튜브가 뜨겁다. 윤지선이 2019년 ‘철학연구 127집’에 게재한 <‘관음충’의 발생학: 한국남성성의 불완전변태과정(homomorphism)의 추이에 대한 신물질주의적 분석> 때문이다. 이 논문을 두고 유튜버 보겸과 윤지선 사이에 심각한 갈등이 생겼다는 이야기를 듣고, 호기심에 논문을 읽으려다 이내 그만두었다. 논문 초록조차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20년 넘게 생물학자로, 그 중 13년은 곤충을 연구하며 지냈고, 한국 과학자 중에서 그나마 인문사회과학에 관심을 두고 공부해온 학자인데, 이 논문의 초록은 독해가 불가능했다. 과학자는 논문을 쓸 때 초록만 읽어도 논문을 이해할 수 있게 훈련받는다.
 
사실 이 논문을 읽는데 곤충학적 지식은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 윤지선이 이 글에서 의도하는 바는, 철저한 남성에 대한 혐오이기 때문이다. 곤충은 한국 남성을 보잘것 없는 존재로 선언하기 위해 윤지선이 꺼내든 비유다. 한국에서 ‘관음충’, ‘한남충’처럼 불특정 다수를 혐오하는 표현으로 자주 곤충이 동원되기 때문이다. 사실 곤충을 싫어하는 사람은 꽤 많다. 곤충에 대한 공포는 모기나 파리처럼 인간에게 전염병을 옮기는 매개체와 수백만년을 공존하면서 우리 유전자에 새겨진 본능일지 모른다. 곤충을 연구하지만, 욕설에 곤충 혐오가 반영되었다고 해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문제는 본능적인 곤충혐오에서 잠시 빠져나와 인류와 곤충 사이의 관계를 과학적으로 조망해봐야 한다는 점이다. 곤충은 인류의 식량 생산과 생태계 보존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곤충은 생물학적 구조들을 분해해 토양에 활력을 준다. 우리가 혐오하는 동물 배설물을 처리하는 것도 곤충이다. 곤충은 새, 박쥐, 작은 포유류의 먹이가 되는데, 척추동물의 약 60%는 생존을 위해 곤충을 필요로 한다. 이 뿐만이 아니다. 우리가 먹는 곡물의 약 75%는 곤충이 없이는 수분이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초콜릿의 꽃가루를 매개하는 곤충은 17종 정도인데, 그 중 15종은 사람들이 혐오하는 모기 같은 곤충이다. 존경하는 고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는 진화의 테이프를 다시 돌려 척삭동물을 제거하면, 지구는 꽃과 곤충으로 뒤덮인 천국이 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아마도 지구에게 물어보면, 인간보다는 곤충과 식물과 함께 사는 쪽을 선택하지 싶다.
 
본문에는 다양한 곤충학 용어가 등장한다. “곤충 군집체의 형태발생학적 착상”, “불완전변태”, “연속적 진화체” 등인데, 윤지선은 이 용어들을 한국 남성에게 사용하면서 주로 데란다라는 철학자에 의존하고 있다. 데란다의 논문을 읽을 생각은 전혀 없지만, 윤지선이 인용한 부분만 읽어봐도 데란다라는 철학자는 제대로 생물학을 공부한 적 없는 인물이다. 실제로 그는 건축을 전공한 예술철학자다. 데란다는 ‘모방’을 할 줄 아는 동물은 고차원의 신경체계시스템을 지닌 존재이고, ‘조건반사’를 하는 곤충은 저차원적인 존재라고 구분하는데, 과학적으로 그다지 매끈한 구분이 아니다. 곤충에 대한 지난 수백년간의 연구로 우리는, 곤충이 그 작은 두뇌로 얼마나 복잡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지를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초파리 암컷조차 알 낳을 자리를 찾기 위해 인간처럼 의사결정을 수행하고, 호박벌과 꿀벌은 숫자를 셀 수 있으며, 말벌은 군집의 모든 개체를 얼굴 패턴으로 인식할 수 있다. 심지어 초파리 암컷은 기생말벌이 나타나면 다른 암컷 초파리에게 알을 낳지 말라는 신호까지 보낸다. 
 
윤지선은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다양한 학자들의 권위를 인용해, 한국 남성에 대한 자신의 혐오를 정당화하고 있다. 학자가 해서는 안되는 행동이다. 그는 그저 혐오표현에 불과한 곤충에 대해 무려 ‘형태발생학적 착상’이라는 단어까지 사용하며 수학자 브라이언 굿윈의 1990년 논문을 인용하는데, 브라이언 굿윈이 곤충의 발생과정에서 나타나는 패턴을 수학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를 했던 과학자인건 맞지만, 그는 개체의 발생과정을 연구했을 뿐, 윤지선이 주장하는 곤충군집체 은유모델에 도움이 될만한 아이디어를 제공하지 않는다. 심지어 그 논문조차 잘못 인용되었다. 윤지선은 브라이언 굿윈의 논문을 읽지 않았거나, 읽었다 해도 곤충의 발생패턴에 대한 그럴듯한 학술용어를 따오기 위해 아주 피상적으로 읽었을 가능성이 크다. 
 
곤충의 발생과정은 인간의 발생과정을 이해하기 위해 지난 백여년 동안 연구되어온 주제다. 예를 들어 체절을 결정하는 ‘혹스 hox’ 유전자의 발견이 노벨상을 수상했고, 그 유전자는 인간과 곤충에 모두 보존되어 있다. 즉, 곤충과 인간의 발생과정을 유전자 관점에서 보면 크게 다르지 않다. 윤지선의 논문은 생물학적으로 아무런 정당성을 얻기 힘들다. 유전자 발현과 조절의 관점에서, 인간과 곤충의 발생과정은 다르기보다 오히려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의 논문에서 곤충의 형태발생학은 고생만 하고, 전혀 논문 속으로 녹아들지 못하고 있다.
 
굳이 윤지선의 논문을 생물학적으로 비판할 이유는 없어 보이지만, 그가 곤충을 비롯한 여러 용어를 통해 혐오를 조장하려는 시도는 철학계가 나서 비판해야 한다. 그는 일부러 한남충의 발생과정이 ‘불완전변태’라고 주장하는데, 불완전변태가 완전변태에 비해 열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굴드가 말했듯이, 진화는 다양성의 증가이지, 진보가 아니다. 윤지선의 발생학과 진화에 대한 사고방식은 19세기 사회진화론과 우생학에 머물러 있다. 그리고 페미니즘 학자인 윤지선이 더 잘 알다시피, 우생학과 사회진화론적 사고가 횡행하던 시대에, 여성의 인권은 처참한 상황에 머물러 있었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는 철학논문은 존중받을 가치가 없다. 윤지선의 논문이 실린 철학연구회는 무려 서울대 철학과 동문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진 학회라고 한다. 한국 인문학계에 작은 위로를 보낸다.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heterosis.kim@gmail.com)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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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그리고 교수님께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2021-04-22 16:26 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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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기사에 댓글이 없어 회원가입 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2021-04-15 18:59 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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