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기자
기괴한 ‘홍상수 월드’…그래서 더 가치 있는 그 세상
2020-03-03 15:32:03 2020-03-03 23:09:21
[김재범의 Why Movie] 기괴할 정도로 온도 차가 극명하다. 홍상수 감독에 대한 국내와 해외 평가는 극명하다. ‘불륜’과 ‘거장’ 양극단에 선 이 평가는 홍상수란 이름 석자를 설명하기에 가장 완벽한 두 단어다. 자신의 ‘뮤즈’이자 연인 김민희와 함께 한 24번째 장편 영화 ‘도망친 여자’가 제70회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은곰상(감독상)을 수상했다. 그의 영화는 해외에선 언제나 환영을 받고 추앙을 받고 호평을 받고 극찬 받는다. 반대로 국내에선 불쾌하고 어렵고 난잡하고 때로는 너무 솔직한 스타일에 거부감으로 지적 받아왔다. 그리고 김민희와 불륜을 인정한 뒤 그의 영화는 치정의 장르 속에서 해석돼 왔다.
 
1996년 홍상수 감독은 데뷔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부터 이번 24번째 영화 ‘도망친 여자’까지 자신의 자전적 스토리를 연상케 하는 흐름으로 영화를 만들어 왔다. 스토리는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즉석에서 구성한다. 홍 감독은 기본적인 콘셉트만 갖고 촬영을 시작한다. 시나리오는 촬영 그날그날 아침 쪽 대본으로 배우들에게 전달된다. 때문에 그의 영화를 보면 ‘뜬금없고’ ‘의미 없어 보이고’ ‘이해할 수 없는’ 흐름이 많이 등장한다. 묘하게 이런 흐름 속에서 인물들은 심리적으로 크게 요동치고, 그 흔들린 심리는 날카롭게 관객들을 자극한다. 기존 상업 영화에선 절대로 볼 수 없는 장치적 구성이다. 이런 흐름과 장치 그리고 연출이 이른바 ‘홍상수 월드’를 만들어 냈다.
 
김민희, 홍상수 감독. 사진/뉴시스
 
‘홍상수 월드’ 특징은 몇 가지로 압축된다. 일상이다. 주인공이 어떤 여행지로 떠나고 그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과 나누고 행하고 겪는 일을 보여준다.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남녀간의 성관계가 여지 없이 등장한다. 인물간의 대화는 괴팍할 정도로 ‘난잡’하다. 19금 대화가 이어지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대화의 주고 받음이 많다. 기승전결도 없다. 영화 전체 주제로 향하는 맥락이 아닌 주어진 상황 속에서만 나올 수 있는 대화와 소재만 등장한다. 이런 대화는 마법처럼 영화의 마지막 주제 의식으로 관객들을 끌고 간다. 모순적이고 위선적인 현실의 삶과 그 삶을 살아가는 인간들의 ‘지금’을 가장 적나라하게 표현하는 방식이 바로 ‘홍상수’의 연출이다.
 
그의 이런 세계관은 배우들에겐 특별하고 또 생경하다. 출연표 한 푼 주지 않는 그의 영화 제작 방식에 충무로 특급 스타들이 출연을 자청한다. 해외 영화제 참여 기회를 얻기 위한 일종의 꼼수라고 평가 절하할 수도 있다. 하지만 홍상수 감독의 이런 세계관은 배우 입장에선 경험하기 힘든 체험이다. 홍상수 감독의 페르소나로 활약해 온 배우 김상경은 영화 ‘극장전’ 개봉 이후 인터뷰에서 “내 얼굴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나. 또 그 동안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숱한 모습을 보여줬다”면서도 “그런데도 ‘극장전’의 내가 연기한 ‘동수’는 다른 얼굴이더라. 그럴 때 배우로서 쾌감을 느끼게 된다. 약간 소름 끼치기도 한다”고 평가했다. 이런 방식은 배우들을 홍상수 월드로 초대하는 가장 강력한 출연료가 됐다.
 
현재 홍상수 감독의 페르소나는 ‘뮤즈’ 김민희다. 김민희 역시 장르 영화 속에서 소비돼 온 상업 영화 배우였다. 하지만 홍 감독과의 불륜 인정 뒤 그는 연인 홍 감독의 작품에만 출연하고 있다. 대중들의 평가는 제외하고 그는 ‘홍상수 월드’ 속에서 기존 장르 외피를 깨고 탈피한 배우가 됐다. 홍 감독 역시 김민희와의 작업 이후부터 시선을 남자에서 여자로 이동시킨다. 여성이 메인으로 등장한 ‘옥희의 영화’부터 홍상수 감독은 여성의 시선으로 사회의 편견을 깨려는 시도와 여성 자체의 욕망을 들여다 보려는 노력을 시도한다.
 
이런 인간 내면의 변화는 홍상수 감독 특유의 촬영 방식으로 극대화된다. 홍상수 영화 롱테이크 기법은 영화 자체를 영화가 아닌 일상으로 변주해 버린다. 별다른 촬영 기교도 없다. 특유의 미니멀한 제작진과 제작 방식을 통해 만들어 낸 그의 영화는 현실을 엿보고, 그 엿본 비밀을 관객과 공유하게 만드는 힘을 지닌다.
 
이런 방식은 해외 영화제에서 빛을 발한다. 일상성이 극대화된 홍상수의 영화는 미니멀리즘의 상찬이란 평가까지 받는다. 크게 더 크게를 외치는 주류 상업 영화 현실과 달리 그의 영화는 작은 세계로 더 작은 한 사람의 내면으로 파고든다. 더욱 놀라운 점은 그의 영화에는 관객을 가르치고 현실을 가르치려 드는 ‘회초리’가 없다. 그저 바라보는 시선이 있고, 바라보는 관객만 있다.
 
그의 불륜과 사생활의 불편함 속에서도 ‘홍상수 월드’가 여전히 높게 평가 받고 높은 가치로 여겨지는 것은 현대 상업 영화 시장 흐름을 역행하는 일종의 반골 기질이 만들어 낸 일상의 중요성은 아닐까 싶다.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