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모의세상읽기)한밤중에 깨어 있는 세상
입력 : 2019-07-05 06:00:00 수정 : 2019-07-05 06:00:00
나는 옷 사는 데 드는 돈과 잠으로 보내는 시간이 세상에서 가장 아깝다. 그런데 옷이야 자연적인 게 아니니까 그렇다고 치더라도 동물의 세계에 잠이 존재한다는 것은 분명 의미가 있지 않을까? 과학자들이 받아들이는 가장 흔한 격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자연은 쓸 데 없는 일을 하지 않는다"라는 것을 생각하면 말이다.
 
모든 동물들은 잠을 잔다. 잠이 들면 익사할 수밖에 없는 고래도 양쪽 뇌가 교대로 잔다. 장거리를 이동하는 철새도 마찬가지다. 짝짓기 시간을 확보하느라 아예 먹이 먹는 입을 포기한 수컷 하루살이조차도 잠을 잔다. 지렁이처럼 뇌가 없는 동물도 잠을 잔다. 이것은 지구에 생명이 탄생한 직후에 잠이 진화했다는 뜻이다. 잠을 자지 않는 동물은 정말 단 하나도 없다.
 
동물의 수면 시간은 제각각이다. 갈색박쥐는 매일 열아홉 시간을 잔다. 주머니쥐는 열여덟 시간을 자고 호랑이와 사자는 열다섯 시간을 잔다. 사람은 여덟(?) 시간을 자고 코끼리는 단 네 시간만 잔다. 대체로 짧은 시간 동안에 필요한 영양분을 섭취하는 동물들은 오래 자고, 반대로 긴 시간이 필요한 동물들은 잠을 조금만 잔다. 대개 영양분도 적은 데다가 소화도 잘 되지 않는 풀을 먹는 동물들이다. 게다가 이들은 깨어 있어야 포식자의 공격에서 자신을 보호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혹시 생명은 깨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다가 휴식을 위해 잠시 잠이 드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원래 생명의 기본 행태는 잠을 자는 것인데 양분 섭취와 번식 그리고 경계를 위해 가끔씩 잠시 깨어나는 것이 아닐까? 잠이야말로 동물의 기본 존재 양식 아니냐는 것이다. 
 
사람은 일부러 수면 시간을 줄이는 유일한 생물이다. 적게 자도 사는 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다. 우리 사회는 잠자는 시간을 아껴 애쓰는 사람들을 근면하다고 추켜세운다. 그리고 잠을 많이 자는 사람을 질책한다. '잠자는 사람은 꿈을 꾸지만, 깨어있는 사람은 꿈을 이룬다'는 어느 고등학교 교실에 걸려 있는 급훈처럼 말이다. 잠은 악의 유혹과도 같다. "시몬아, 자고 있느냐?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란 말이냐?"라는 예수님의 꾸짖음을 맥락과 상관없이 인용하며 잠 많은 이들을 비난하기도 한다. 
 
잠을 연구하는 신경과학자 매슈 워커는 그의 저서 『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에서 '한밤중(midnight)'이라는 단어의 뜻을 우리에게 일깨운다. 한밤중은 '밤(night)의 중간(mid)'이라는 뜻이다. 사람은 주행성 동물이니 닭이 울 때 깨어 낮에는 활동하고 땅거미가 지면 잠에 들어서 한밤중에는 깊은 잠에 빠져 있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우리는 닭이 울 때 깨기는 하지만 땅거미가 지면 친구들을 만나고 영화를 본다. 아니면 낮처럼 일을 한다. 한밤중이 되어도 여전히 깨어 있다. 현대인에게 한밤중이란 없다. 
 
사람과 다른 영장류 사이의 가장 큰 차이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뇌 크기다. 큰 뇌를 갖기 위해 필요한 두 가지 요소가 있는데 하나는 직립함으로써 큰 뇌를 받칠 수 있도록 척추를 꼿꼿하게 세운 것이며, 다른 하나는 불을 사용함으로써 영양 섭취를 늘려 커진 두개골을 뇌로 채운 것이다. 150만 년 전 호모 에렉투스가 겨우 획득한 형질이다.
 
그 이전의 인류는 나무에서 자야 했다. 나무 위에 아무리 좋은 둥지를 짓는다고 하더라도 추락에 대한 걱정이 사라지지 않는다. 잠을 푹 잘 수 없다. 원숭이는 나무에서 떨어져 죽는다! 인류는 호모 에렉투스 때부터야 비로소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불을 피워놓고 땅에서 안심하고 푹 잤기 때문이다. 불은 벌레를 쫓았고 큰 포식자의 접근을 막았다. 매슈 워커는 숙면이 인간 뇌 회로의 재편성을 가져왔고 그 결과 인간이 진화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올라설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한편, 숙면은 수면시간의 단축을 가져왔다. 하지만 숙면만으로 현대인의 잠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 가운데 최소한 절반은 새벽 1시에 자서 6시에 일어나는 생활을 몇 년째 하고 있을 것이다. 바쁘면 가장 먼저 줄이는 게 잠이기 때문이다. 현대인의 수면 시간은 산업화와 더불어 꾸준히 줄었다. 에디슨이 전구를 발견한 후에는 활동 시간을 늘이는 데 큰돈이 들지 않았다. 게다가 텔레비전과 인터넷, 그리고 스마트폰은 잠보다 더 매력적이다. 
 
자연은 쓸 데 없는 일을 하지 않는다. 잠의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잠을 푹 잘 방도를 찾아야 한다. 잠을 아무리 줄여도 우리는 여전히 바쁘다. 잠 부족 사회다. 자연으로 돌아가자. 잠을 충분히 자야 꿈을 꾼다. 어이할꼬?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penguin@m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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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나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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