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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한국정치, 제도보다 사람이 바뀌어야
2019-04-30 06:00:00 2019-04-30 06:00:00
지금 국회는 말 그대로 ‘난장판’이다. 선거구제 개편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안, 검·경수사권 조정안을 신속 처리하는 패스트트랙 지정 문제를 놓고 여야가 정면충돌하며 고성과 폭력을 서슴지 않는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국회의장실로 몰려가 몸싸움을 벌이고 문희상 의장을 모욕해 결국 병원에 실려 가는 웃지 못 할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대한민국 서열 2위인 국회의장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고 입법기관인 국회는 법은커녕 상식도 지키지 못하는 무법천지가 됐다.
 
이런 일을 다시는 반복하지 말자며 지난 2012년 ‘국회선진화법’을 제정했건만 이 법은 결국 액세서리에 불과했고, 쇠지렛대가 다시 등장하는 ‘동물국회’를 만들었다.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소위 선진한국을 표방하며 대부분의 국민은 한국이 정말 선진국인줄 알고 있는데 정치 엘리트 집단인 국회를 보면 후진국 중의 후진국이다. 생전에 신사정치, 순리정치를 보는 게 꿈이건만 일장춘몽으로 끝날 확률이 높아 보인다.
 
우리 국회만 이렇게 형편없는 것일까. 프랑스의 경우를 보자. 프랑스 국회에서는 거의 폭력사태가 일어나지 않지만 2013년 4월19일 의외의 일이 벌어졌다. 그날 새벽 1시쯤 국회의사당에서 고성이 오가고 공화당(UMP) 의원들이 내려와 정부관계자들이 앉아있는 곳을 향해 주먹을 추켜들었다. 그러나 이 장면은 국회가 정회해 카메라가 자동으로 꺼지는 바람에 화면에 잡히지는 않았다. 다만 베르나르 로망(Bernard Roman) 사회당 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국회에서 주먹질을 했다”고 주장했다. 프랑스 TV엥포도 “경비원들과 정무수석 알랭 비달리(Alain Vidalies)가 이를 뜯어말렸다”고 보도했다.
 
사건 전개과정은 이랬다. 마르크 르 퓌르(Marc Le Fur) UMP 의원이 국회의원들 앞에서 동성애 결혼을 반대하는 앵발리드(Invalides)광장 내 시위대 현장을 설명하자 크리스티안 토비라(Christiane Taubira) 법무부 장관 뒤에 앉아있던 한 공무원이 코웃음을 치며 냉소했다. 이에 몇몇 야당 의원들은 화를 냈다. 이브 알바렐로(Yves Albbarello) UMP 의원은 조롱한 공무원과 싸우기 위해 자리에서 내려왔고, 법무부 소속의 이 공무원은 모두에게 야단을 맞았다. 그러나 또 다른 의원들이 국회의장석을 향해 내려왔고, 또 다른 의원들은 “동성애법은 한 단체의 로비로 좌지우지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소리를 질렀다. 이 과정에서 국회는 혼란스러워졌다.
 
국회 밖에서는 시위대가 국회에서 최종 심사를 하고 있는 동성애결혼 법안에 대한 불만을 계속 토로했다. 국회 근처에서 폭력사태가 일어나 공권력이 개입했다. 며칠 전부터 여기저기서 동성애 결혼을 반대하는 욕설들이 넘쳐났다. 동성애혐오자들의 폭력도 일어났다.
 
이렇듯 동성애 법안을 둘러싸고 프랑스 국회 안팎은 어수선 했다. 국회의장 클로드 바르톨론(Claude Bartolone)은 술렁이는 국회를 다독이기 위해 의원들을 향해 “우리는 학교 운동장에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가자미눈을 뜨고 말썽을 피우는 중학생이 아니다”라고 언성을 높였다. 또한 “우리가 있는 이곳에서 육체적 위협을 행사하는 것은 그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 될 수 없다…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라고 일침을 날렸다. 국회의원들을 순간 조용하게 만들만큼 바르톨론 의장의 권위는 압도적이었다.
 
그렇지만 프랑스의 한 블로거는 ‘부끄러운 국회’라고 명명하며 술렁이는 국회 사진을 올렸고, 인터넷 매거진 슬레이트(Slate)는 이 싸움을 ‘서글픈 예술(triste art)’로 표현했다. 그러나 슬레이트는 2009년 7월22일 한국 국회에서 미디어법을 둘러싸고 의원들이 치고받는 사진을 올리고 “프랑스 국회의원들은 초년생에 불과하다”는 비유를 들기도 했다.
 
국회가 아무리 엘리트집단이라 하지만 이처럼 입장이 첨예하게 갈린 주제에 대한 법안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의견을 주장하는데도 선은 지켜야 한다. 바르틀론 의장의 말처럼 국회는 눈을 흘겨 뜨고 몸싸움을 벌이는 중학교 운동장이 아니다. 물리적 충돌은 결코 용납해선 안 된다. 그런데 한국 국회는 어떠한가. 이번 선거법 개정은 이데올로기 문제도 아니고, 결국 각 당의 이권 때문에 생사를 걸고 싸우는 게 아니던가.
 
필자가 우리 정치의 후진성을 두고 자주 하는 말이 있다. “한국정치는 제도가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다. 사람이 바뀌지 않고 제도만 백날 바꾼들 문제는 개선되지 않는다. 어떤 이들은 제도를 바꾸는 그 순간부터 제도를 빠져나거나, 어길 궁리를 한다. 따라서 사람이 바뀌어야 한다. 정정당당하게 페어플레이를 하는 신사가 많아야 한다. 그 신사는 교육이 만들어 낸다. 지금의 입시교육 시스템을 버리고 인성교육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한다. 교육이 바뀌면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점이 바뀔 수 있다.” 결국 국회의 문제도 교육의 문제로 종결되는 씁쓸함이 엄습한다. 4월은 역시 잔인하다.
 
최인숙 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sookjuliette@yahoo.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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