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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현대제철, 하청노조 무력화 의혹…'사찰'까지 진행
법무법인과 시나리오 마련해 실행…올해 5월에도 노조 관리
2018-09-13 17:23:39 2018-09-13 17:23:39
[뉴스토마토 구태우 기자] 현대제철 순천공장(옛 현대하이스코) 전직 임원이 사내하청 노조를 무력화하기 위해 부당노동행위를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법무법인과 함께 노조 파괴 시나리오를 작성, 실행에 옮겼다. 현대제철은 현대하이스코의 노무관리 방식을 계승, 노조는 현실적 두려움도 떨치지 못하고 있다. 
 
<뉴스토마토>는 13일 민주노총 금속노조로부터 현대제철과 현대하이스코가 노조 무력화를 시동한 정황이 담긴 다량의 문건을 단독 입수했다. 현대제철에서 근무하다 퇴직해 사내하청업체를 운영한 대표 A씨가 해당 문건을 노조에 넘겼다. 문건에는 현대하이스코가 사내하청 노조 설립 후 노조 파괴를 시도한 정황이 구체적으로 담겼다. 현대하이스코는 2015년 7월 현대제철에 합병됐다. 
 
현대하이스코의 조직적인 노조 탄압은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내하청 노동자 박모씨 등은 처우개선을 요구하며 같은 해 6월 하청노조를 결성했다. 하청노조가 출범한 뒤 가입 조합원들이 있는 하청업체 수곳이 잇따라 폐업됐다. 노조 무력화를 위한 위장폐업이었다. 하청노조는 위장폐업 철회와 복직을 요구하며 수차례 농성을 벌였다. 하청노조는 이듬해 4월 순천공장 크레인을 점거하며 고공농성에 돌입했다. 이 농성을 계기로 하청업체 노사는 폐업으로 인한 실직자 105명을 3차례에 걸쳐 채용키로 합의했다. 
 
현대제철(당시 현대하이스코)이 2006년 입사 예정자의 입사 포기를 설득시키는 내용의 문건. 사진/뉴스토마토
 
이후 현대하이스코는 모 법무법인의 도움을 받아 '협력사 노조관리 방안'(2006년 10월 작성)을 마련했다. 노조를 4단계에 걸쳐 점진적으로 무력화시키는 내용으로, 노조 파괴 시나리오로 추정된다. '1단계(조합원 수 105명→85명) 1·2차 입사자 대상 퇴사 유도', '2단계(85명→65명) 2·3차 입사자 대상 퇴사 유도', 3단계(65명→25명) 구조조정', '4단계(25명 이하) 무력화' 수순으로 노조를 관리한다는 내용이다. 이를 위해 폐업으로 인한 실직자 중 하청업체에 입사를 앞두거나, 이미 한 조합원을 설득해 입사를 포기하게 하거나 퇴사시켰다. 
 
입사를 포기하도록 회유하는 전략도 총 4단계에 걸쳐 마련됐다. "1차 만남은 안부를 살펴 일반적인 사안에 집중하고, 2차는 친분이 있는 사람과 동석자리를 만들어 가능성을 평가하고, 3차에 최종 판단을 내린다"고 문건에는 적시돼 있다. 문건이 명시한 최종판단은 입사 포기에 따른 지원책으로 추정된다. 또 다른 문건은 "타사 취업, 개인사업 등과 관련한 합의점을 찾아 처리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현대하이스코는 입사 예정자의 성향을 파악하기 위해 지인과 친척 그리고 동장·이장까지 동원했다. 
 
해당 문건이 실제 가동된 정황은 문건 곳곳에서 드러난다. '협력 재입사자 성향 분석' 문건에는 입사 예정자의 근황, 사내 지인 등이 상세하게 적혔다. "(입사 예정자 강모씨를) 여러 차례 만난 결과 물품에 대한 관심도가 높고, 전세자금을 지원한다면 가게운영을 직접할 생각이 있음. 80% 이상"이라는 내용도 보고됐다. 입사 포기가 예상되는 경우 '재면담을 통해 굳히기 시도'라고 보고했다. 상당수의 입사 예정자가 입사포기 각서를 쓴 뒤 채용을 포기했다. '5차 2단계 자문회의'(2006년 12월8일) 회의록에는 하청노조 조합원이 특정 정당에 가입해 활동하는 내용도 보고됐다. 하청노조 조합원의 정치적 성향과 동향 등을 광범위하게 수집한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BHJN(김모 부회장님) 지시사항과 권모 이사 지시사항을 캡처한 노트. 사진/뉴스토마토
 
현대하이스코의 조직적인 노조 탄압은 권모 이사가 주도했다. 권 이사는 2006년 5월부터 법무법인, 하청업체 대표와 함께 매주 한 차례 자문회의를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하청노조의 동향, 입사 포기 현황 등을 공유하고, 대응전략을 지시했다. 권 이사는 이후 현대하이스코 합병 후 현대제철 당진공장 전무로 승진한 뒤 지난해 퇴직했다. 현재 당진공장 하청업체의 부사장을 맡고 있다. 당시 현대하이스코 경영진도 회사의 부당노동행위를 보고받았거나 관여한 것으로 추정된다. 김모 현대하이스코 부회장은 "2·3차 입사자는 대민봉사나 교육만 받게 해 지루하게 만들라"며 "천막농성시 안전팀과 충돌을 유발하라"고 지시했다. 김 부회장은 현재 현대종합상사 부회장을 맡고 있다. 
 
현대하이스코의 조직적인 노조 관리는 현대제철에서도 이어졌다. 현대제철 당진공장 원·하청이 지난 5월2일 진행한 회의에는 회사의 노무관리 방식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나온다. 회의록에는 "협력사 인원 충원시 인원 검증 및 필터링 후 채용 바람"이라고 적혔다. "취업 방해에 저촉, 공식적인 절차 아닌 협조 차원으로 처리 바람"이라고 주문하는 내용도 담겼다. 국적, 사상 등으로 취업을 방해할 경우 근로기준법에 저촉된다. 
 
한편 현대제철은 이 같은 의혹에 대해 아무런 해명도 하지 않았다. 
 
현대제철 당진공장 원하청의 지난 5월 회의 내용. 하청노조 조합원의 성향 파악을 지시하는 내용이다. 사진/뉴스토마토
 
구태우 기자 goodtw@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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