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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누구를 위한 '금융소비자 보호'인가
2018-07-20 08:00:00 2018-07-20 08:00:00
"조만간 대형 금융사고가 터지지 않을까 걱정된다."
 
불과 올해 초 전직 금융당국 간부가 사석에서 한 말이다. 당시 금융위원회나 금융감독원 등 금융당국이 금융권 채용비리, 금융지주 회장 셀프연임 등 내부통제와 지배구조 손질에 열을 올리고 있을 때였다. 전직 간부의 우려는 당국이 금융사 건전성과 영업행위(소비자 보호) 감독이라는 당국의 본업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시각에서 비롯됐다. 말이 씨가 된 듯, 그때쯤 삼성증권 배당 사고 등 굵직한 사고가 터졌다.
 
금융당국이 '금융산업'으로 인정하진 않았지만 '금융인듯 금융이 아닌' 신생산업에서는 지난해 말부터 사고가 터지기 시작했다. 암호화폐의 대표주자인 비트코인은 지난해 1월만 해도 100만원에 불과했으나 그해 여름을 지나면서 500만원에 다가섰다. 제대로된 규제가 없으니 암호화폐 가격이 널뛰었으며, 대형 거래소인 빗썸에서 해킹 사건이 일어났고 불투명하게 운영하던 거래소들은 검찰 수사를 받게 됐다.
 
지난 2015년 말 시작된 P2P 대출도 지난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연 15~20%대 고금리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는 말에 젊은층이 대거 몰렸다. P2P 대출은 최근 연체율이 5%에 달하고, 일부 업체 대표는 고객 돈을 가지고 도주해 당국이 수사에 나섰다.
 
그런 와중에 금융위원회의 입장은 암호화폐나 P2P 대출 모두 법적 근거가 미흡해 감독을 하고 제재를 하기 어렵다고 토로해왔다. 신생 산업을 관리·감독할 만한 부서도 당국에는 전무했다. 사실 당국은 암호화폐나 P2P대출은 '금융이 아니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최종구 위원장도 '암호화폐는 금융상품이 아니다'고 선을 그으면서 암호화폐 거래 시중은행을 우회적으로 압박해왔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금융위나 금감원이 최근 경쟁적으로 소비자 보호 강화에 올인하고 있다. 윤석헌 금감원장이 "소비자 보호를 위해 금융회사와 전쟁을 지금부터 해나가야 한다"고 선포한지 일주일 만에 금융위는 소비자 보호를 명목으로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특히, 금융위는 '중소서민금융정책관'을 금융소비자국으로 확대 개편하고, 인력을 7명 보강하면서 핵심부서로 격상시켰다. 이전의 금융서비스국과 자본시장국 소속 소비자 보호 관련 부서들도 신설된 금융소비자국으로 이동한다.
 
금융위에서는 그동안 소비자 보호 관련 부서들이 흩어져 있어 효율성이 떨어졌다고 설명하지만, 이번 조직개편을 둘러싸고 세간에서는 기대보다 의구심이 짙어지고 있다. 이미 금감원 내에 유사한 성격의 '금융소비자보호처'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또다시 정책당국에 소비자보호부서를 따로 둬야 하느냐는 것이다.
 
금융위 조직개편은 문재인 대통령 취임 후 발표된 국정과제와 어긋난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지난해 발표한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엔 금융산업 구조 선진화 차원에서 금융위 조직을 기능별로 개편하고, 추후 정부조직 개편과 연계해 금융정책과 감독을 분리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국정과제 내용대로라면 조직 축소가 불가피한 금융위가 되레 덩치를 키운 셈이다.
 
대대적인 조직 개편에도 불구하고 금융 신사업에 대한 금융위의 내부 시각이나 정치권 등 외부 상황은 달라진 게 없다.
 
이른바 '금융소비자법'은 지난해 5월 국회에 계류돼 있는데, 금융당국은 국회 탓만 하고 있다. 법 제정을 설득하기 위해 정무위원회를 얼마나 방문했는지 꼽아보면 알 수 있다. 암호화폐나 P2P금융을 금융으로 봐야하는지도 당국 내부에선 입장이 정리되지 않았다. 이역시 관련 법을 국회에서 만들어야 줘야 한다며 여의도만 바라보고 있다.
 
내외부적인 상황이 이러한데 금융위원회가 대규모 조직개편을 추진한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금융이 부가가치를 높여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도록 금융위가 정책을 이끌어야 할텐데, 소비자보호부서를 키울 정도로 급박했던건지 의구심이 짙다.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을 고쳐매지 말라'는 속담이 있다.  금융위 조직을 축소하는 감독체계 개편안 논의를 앞둔 시점에서 조직 개편 카드를 꺼낸 금융위의 저의가 의심되는 이유다. 
 
이종용 금융팀장 yon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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