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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노사혁명4.0이다)③노사에서 노노갈등으로…정규직·비정규직 분열
정규직, 비정규직 처우 외면…심지어 노사협상 안건 삼아 제 잇속만 챙겨
2017-04-26 07:00:00 2017-04-26 07:00:00
[뉴스토마토 최병호·구태우 기자] 노사 간의 갈등보다 심각한 반목은 노동계 내부에 있다. 공동체를 표방한 노조가 정규직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하면서 비정규직의 설움은 깊어졌다. 정규직이 비정규직의 애환을 무기로 제 잇속만 챙긴다는 지적마저 나온다. "민주노조 깃발 아래 뭉치자"던 투쟁가는 극심해진 노노갈등 앞에서 빛바랜 구호가 됐다.
 
정규직 노동자로 구성된 금속노조 기아차지부는 오는 27일 사내하청 비정규직을 노조에서 분리하는 투표에 돌입한다. 가결될 경우 비정규직은 금속노조 지역지부 소속이 된다. 분리를 우려하는 노동계의 호소에도 투표는 예정대로 진행될 전망이다. 기아차 노조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은 지난 10년간 켜켜이 쌓여왔다. 정규직이 교섭 때마다 비정규직의 현안을 외면하면서 갈등은 더 켜졌다는 게 노동계 안팎의 공통된 평가다. 특히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 전환을 강하게 요구하면서 갈등은 폭발했다.
 
그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3000명에 이르는 비정규직 전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해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정규직들은 생산라인 정원 등의 문제를 들어 특별채용 1049명만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단계적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이번 분리투표는 결국 정규직 전환을 바라는 비정규직을 같은 '기아차지부 깃발' 아래 둘 수 없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으로 노동계는 평가한다.
 
기아차 해고 노동자인 한규협씨는 "기아차 노동자들은 10년 동안 1사 1노조를 유지하려고 많은 조합원들이 노력했는데, 정규직 노조가 갈등을 봉합하기보다 이익만 챙기려는 것 같아 답답하다"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그는 2015년 기아차 불법파견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364일 동안 고공농성을 벌였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기아차지부 관계자는 "갈등보다 차라리 분리하는 게 지금에서는 서로 낫다고 판단했다"며 "정규직 노조는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해명했다.
 
다른 사업장들을 보면,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말은 빈 말로 전락한다. 지난 19일 현대제철 당진·순천공장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냈다. 사측의 부당한 대우가 아닌,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이 이유였다. 현대제철 공장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섞여 일한다. 지난해 3월까지 정규직은 흰색 안전모, 사내하청 비정규직은 노란색 모자를 쓰고 일했다. 논란이 되면서 안전모 색깔은 통일됐지만 차별은 곳곳에 남아있다. 심지어 정규직과 동일한 업무를 하더라도 산업안전과 관해서는 어떤 의견도 내지 못했다.
 
또 정규직은 사내 직영주차장을 쓰지만, 비정규직은 공장 밖에 차를 세워야 한다. 성과급과 생산장려금, 명절 귀향비, 체력단련비, 의료비 등에서 차별이 생기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정규직 자녀들은 대학 졸업 때까지 학자금을 받지만 비정규직 자녀들은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60만원을 받는 게 전부다. 노동의 기본 원칙인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노동자들끼리도 지켜지지 않는 현실에서 비정규직 가장들은 서러움의 눈물만 흘린다.
 
사진/뉴스토마토
 
현대제철 정규직 노조는 사측과의 협상 때면 으레 비정규직 차별 개선을 내세운다. 하지만 정작 정규직 노사가 합의한 최종안에는 비정규직에 대한 안건이 들어있지 않다. 정규직 노조 입장에서 비정규직의 처우 등에 대한 문제는 투쟁을 하면서까지 해결해야 할 자신들의 문제가 아닌 데다, 되레 사측 압박 카드로 악용된다. 김흥주 현대제철 비정규직지회장(순천공장)은 "비정규직 노조도 사측과 별도로 협상하지만, 정규직의 도움 없이는 비정규직 처우 개선은 불가능하다"며 "정규직의 협상은 교섭 막판이 되면 비정규직 문제가 늘 빠진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현대제철지회 측은 "비정규직도 따로 사측과 협상을 벌이는데, 정규직 노조가 굳이 비정규직 문제에 개입하면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어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입장에선 옹색한 변명에 지나질 않는다. 
 
지난 2월 현대·기아차 판매사원들로 구성된 전국자동차판매연대노조는 금속노조 가입을 추진하다가 현대·기아차 노조의 반대로 무산됐다. 노동계에서는 초유의 사태로 받아들이고 있다. 자동차 대리점 사원들로 구성된 전국자동차판매연대노조와 일반 직원들의 갈등 탓에 정규직 노조가 실리주의에 빠져 사회적 약자의 처우 개선을 방관했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힘을 모아 성과를 만들어야 노동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이 열릴 텐데 대기업 노조에서 연대가 실패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비정규직의 문제를 도외시하는 노동운동이 얼마나 지속가능할지 의문이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정규직 노조의 각성과 함께 세대교체를 통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가 늘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병호·구태우 기자 goodtw@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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