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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에서 떨어지는 사람은 다 그럴 만 해
오늘 부는 바람은
2017-02-07 10:23:57 2017-02-07 10:23:57
얼마 전 시험 준비로 연락이 잘 닿지 않았던 친구를 오랜만에 만났다. 시험에 좋은 성적으로 합격한 친구의 얼굴은 한결 아니 매우 가벼워 보였다. 너무나도 힘겨운 수험기간을 보냈음을 짐작할 수 있었기에 친구가 시험에 붙었다는 사실은 나에게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해줬다.
 
본격적인 수험생활을 위해 애인과 헤어지고, 식사 시간도 아까워서 삼각 김밥을 씹는 둥 마는 둥하며 책을 봤다는 등의 수험생활을 회상하는 친구의 표정은 암울하기 그지없는 얘기에 비해 밝았다. 그렇게 일련의 에피소드를 얘기 한 후 그 말을 했던 것 같다. 시험에 떨어지는 사람들은 다 그럴 만 하다고. 떨어질 것 같다고 생각한 사람은 다 떨어졌고 붙을 것이라 생각한 사람을 다 붙었다는 게 그 이유였다. 공부를 열심히 한 정도가 판단기준이었다. 열심히 하지도 않아놓고 떨어졌다고 슬퍼하는 사람들이 보기 좋지 않다고 했다. 친구가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는지 알기에 그런 말을 하는 친구를 이해 할 수는 있었다. 그래도 그 때 난 당황스러운 표정을 감추기 어려웠다.
 
약속된 게임에서 포상을 받는 사람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대부분 엄청나게 노력했을 것이다. 어떤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이 머리가 좋아 들인 노력에 비해 성과가 좋고, 공부할 수 있는 재원이 풍부하고, 집안이 화목하고 교우관계도 좋아서 시험 이외 다른 스트레스가 없을지라도, 그가 전혀 노력하지 않는다면 좋은 환경은 별 의미가 없다. 인생은 운칠기삼 이라지만 인간의 의지를 죄다 무시하고 운이 모든 걸 결정한다고 보기엔 우린 너무 열심히 또 고민하며 살고 있지 않나.
 
하지만 노력은 포상을 위한 충분조건이지 필요충분조건이 아니다. 포상을 받기 위해선 노력과 좋은 환경 두 가지 요소가 모두 전제돼야만 한다. 그러나 포상을 받은 사람은 대개 노력만을 필요충분조건으로 생각하려 한다. 그 자신이 얼마나 노력했는지 제일 잘 알기에 노력을 가치 절하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의 통제를 벗어난 임의적 환경의 영향력을 무시하려 한다.
 
“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톨스토이는 소설 <안나 카레리나>를 위 문장으로 시작했다. 포상을 받는 이유는 비슷하다. 노력과 좋은 환경 두 가지 요소가 모두 갖춰져야만 한다. 이에 비해 포상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저마다 너무나도 다양하다. 좋은 환경의 조건 중 하나만 충족이 되지 않아도 포상을 받을 확률이 낮아지는데 좋은 환경의 조건은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떤 특정한 조건이 충족되지 못 하는 사정은 그보다 더 많다. 우리는 종종 생각지도 못 했던 어려움에 처해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곤 한다. 내 자신이 남에게 말하지 못 하는 어려움에 허덕이는 경우도 많고.
 
포상을 받은 사람, 특히 많이 받은 사람은 유독 그 사실을 자주 잊는 듯하다.
 
지난 7월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은 ‘경향신문’ 기자들과의 자리에서 “민중은 개돼지다”라고 말해 논란이 된 바가 있다. 그보다 좀 더 영리한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곤란한 질문을 하는 기자에게 “네가 감히” 라고 말 하는 대신 기자를 노려봤다. 청문회장에서도 그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질문에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더 영리했다. 굳이 직접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는 무고한 사람들을 자신의 출세를 위해 이용했다. 유서를 대필해서 친구의 분신자살을 교사 내지 방조했다는 혐의를 무고한 청년에게 뒤집어 씌웠고,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을 날조하여 30여 명에게 사형 등 실형을 받게 했다. 자신은 무고한 청년과 30여명에게 그럴 수 있는 자리에 올라갔기 때문에(불법이지만 걸리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을 테니)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나 보다. 그리고 이 세 명 모두 그 어렵다는 고시를 패스한 소위 엘리트다.
 
설정된 게임의 규칙을 어기지 않고 포상이 약속된 능력을 연마했다면 누구라도 포상을 받을 권리는 있다. 하지만 자신의 능력을 귀히 여기는 사회에, 포상을 성취하기 유리한 환경에 살게 된 자격이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오만이다. ‘포상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올라가게 된 사람’은 있어도 ‘애초에 포상을 받을 만한 사람’은 없다.
 
우리에게 일어난 모든 일은 각자의 온전한 노력만도 온전한 운 때문에도 아니다. 그게 뒤섞인 결과가 지금의 우리다. 어쩌다 내가 가지게 된 것을 그리고 어쩌다 타인이 가지지 못하게 된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원하건 원하지 않건 누구도 혼자의 힘만으로 살지는 않는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 포상을 받았건 받지 않았건 서로 존중해야 한다는 사실은 말하기도 민망할 만큼 당연하지 않은가. 아는 것 많다고 으스대는 엘리트 분들이 왜 기본 상식을 죄다 잊고 사시나.
 
사진/바람아시아
 
 
임다연 바람저널리스트 baram.news T F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news)에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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