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기자
(New스토리)혁신의 선봉 실리콘밸리, 농업에 빠지다
스마트팜·모조고기·식물공장 등에 수억달러 투자 몰려…"먹거리 산업 발전은 끝없어"
2015-12-22 13:26:16 2015-12-22 13:26:16
유엔 산하 식량농업기구(FAO)는 2050년 전세계 인구가 96억명에 이를 것으로 예견했다. 아프리카나 아시아 개발도상국들을 중심으로 인구가 꾸준히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다. 이에 따라 100억명에 육박하는 사람들을 먹여 살릴 문제에도 관심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FAO에 따르면 매년 10억톤의 곡식과 2억마리의 가축이 추가로 생산돼야 늘어나는 인구를 충당할 수 있다. 지금보다 70%나 많은 규모다. 저부가가치 산업으로만 치부됐던 농업에 대한 인식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추세다. 첨단 기술과 결합한 농사 방식의 잇따라 모습을 드러내며 농업의 선진화를 추구하고 있으며 빌게이츠, 리카싱 등 글로벌 부호들도 미래의 농업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뉴저지의 식물 공장 '에어로팜'의 모습. 에어로팜은 특허 받은 생산 기술로 태양과 흙 없이 실내에서 식물을 재배하고 있다. 물 사용량도 일반 경작 대비 95% 적다. 사진/뉴시스·신화
 
이마무라 나라오미 일본 도쿄대 명예교수는 지난 1996년 미래 농업의 키워드로 '6차 산업'을 제시했다. 1·2·3차 산업을 모두 포괄하는 의미의 6차 산업은 1,2,3을 더하거나 곱하면 모두 6이 된다는 데에서 착안했다. 이마무라 교수는 1차 산업인 농림수산업, 2차 산업인 식품 가공업, 3차 산업인 유통·판매업을 통합적으로 활용하면 농업 생산기술을 끌어올려 농업 종사자의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봤다. 농업에 활력을 불어넣어 농림수산물 및 식품의 수출 증가는 물론 경제 성장까지 기대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 고루하고 전근대적인 이미지가 강해 젊은 층의 참여가 크지 않았던 기존 농업의 한계점도 6차 산업 활성화로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이마무라 교수가 20여년 전 주창한 이 개념은 혁신의 근거지라 할 수 있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최근들어 다시금 회자되고 있다. 데이터 분석, 클라우드 컴퓨팅, 모바일 앱 등 최신 컴퓨팅 기술을 농업에 적용시키는 방안들이 꾸준히 논의되며 스타트업 열풍에 일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적은 자원으로 식량 생산량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환경에 대한 부정적 영향도 최소화하는 이들 농업 선진화 선봉대를 향한 관심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포춘지가 클린테크그룹의 조사 결과를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2014년 기준 151개 스타트업이 농업과 식품에 주목하고 있으며, 이들에 대한 투자 규모는 9억7600만달러다. 1년 사이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인용한 다우존스 벤처소스의 조사에서는 농업 혹은 식품과 관련된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가 전년대비 54% 늘어난 4억8600만달러로 집계됐다. 조사 기관에 따라 투자 규모에 차이는 있지만 방향성만은 명확했다.
 
농업 정보 제공으로 생산 효율 극대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실리콘밸리에서 나타나고 있는 농업·식품 연계 스타트업은 크게 5개 유형으로 분류된다. 첫 번째는 스마트 파밍(smart farming)이라고도 불리는 정밀 농업이다. 농작물 수확률이나 토양 지도, 날씨, 가축 건강 등의 정보를 수집·분석해주는 서비스를 말한다. 농사를 짓는 과정에서 낭비되는 자원들을 줄여보자는 실시간으로 농작물의 수확이나 파종에 관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면 토지 가치에 대한 판단을 돕거나 농작물의 양적·질적 성장을 유도할 수 있다.
 
지난 7월 안드레센 호로비츠, 구글 벤처스, 코슬라 벤처스 등으로부터 1870만달러의 투자금을 유치한 농업 소프트웨어 개발업체 그래뉼라는 전형적인 정밀농업형 스타트업이다. 그래뉼라는 소프트웨어, 클라우드 서비스,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농업인들을 위한 협력 도구 들을 기반으로 창업했다. 2009년 설립된 전신 회사 솔룸의 핵심 기술을 각각 세계 최대 유전자조작식품(GMO) 기업 몬산토와 데이터 스타트업 클리메이트에 넘긴 후 남은 기술들을 재정비해 설립된 것이다. 그래뉼라는 적은 물과 비료를 사용해 작물을 재배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강우량이나 기온 정보 들을 사전에 제공해 농업인들이 보다 효율적으로 농작물을 관리할 수 있는 솔루션을 제공한다.
 
그래뉼라와 같은 정밀농업 기업의 성장은 최근 몇 년 사이 급격히 세를 확장한 사물인터넷(IoT)의 발전에 기반을 둔다. '스마트 파밍을 향해'의 저자이기도 한 사베리오 로미오 비아킴 리서치 애널리스트는 "사물인터넷과 농업의 결합은 농업을 보다 효율적이며 지속가능한 고품질의 것으로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스마트 파밍 투자자들의 최종 목표는 새로운 형태의 식품을 개발하는 것"이라며 "이는 최종적으로 식품인터넷(internet of food)을 지향하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고기인듯 고기아닌 고기같은 너
 
두 번째 유형은 대안 식품(alternative foods)이다. WSJ은 젊은 소비자일 수록 식품 생산에 소비되는 자원들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인다고 대안 식품이 주목받는 이유를 설명했다. 단순히 최종 소비 식품의 품질만 따지는 것이 아니라 이를 생산하는데 사용되는 식용 동물들이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 물이나 토지가 어떻게 관리됐는지를 모두 살핀다는 것이다. 지구온난화 같은 환경에 미치는 영향도 체크 대상이다. 대안적인 방법으로 생산되는 식품에 투자자들의 관심이 모아지는 것도 당연지사다.
 
대부분의 대안 식품은 동물에게 직접 얻은 것이 아닌 식물 원료를 이용한 '가짜 고기'다. 식용 고기를 얻기 위해 동물 학대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육식을 거부하고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데다, 가축을 사육하는 과정에서 온실 가스 등 환경을 파괴하는 요인이 적지 않게 배출된다는 이유로 가축 사육을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도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식물성 모조 고기는 채식주의자들은 물론 육식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도 만족시킬 수 있는 맛과 질감 구현을 목표로 한다. 굳이 동물이 아니더라도 건강과 환경에 좋은 고기를 얻을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겠다는 것이다. 
 
식물에서 추출한 단백질로 닭고기를 만들어 판매한 '비욘드 미트', 미국의 대표 음식인 햄버거에 식물 원료를 활용한 고기 패티를 넣은 '임파서블 푸즈', 계란 대신 캐나다산 노란 완두콩과 수수를 사용해 마요네즈와 쿠키를 제조한 '햄튼 크릭' 등이 대표적인 기업들이다. 더 나아가 '모던 메도우'와 '로사 랩'은 동물성 세포나 비타민, 미네랄 등을 활용해 동물성 단백질을 인위적으로 합성하기도 한다. 이들은 모두 보다 효율적인 방법으로 환경친화적인 음식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공유한다.
 
대안적인 방법으로 생산되는 식품에 투자자들의 관심이 모아지는 것도 당연지사다.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인 빌게이츠와 아시아 최대 부호 리카싱, 코슬라벤처스 창업자 비노드 코슬라는 모두 임파서블 푸즈와 햄튼 크릭의 투자자다. 햄튼 크릭의 경우 지금까지 3차례의 투자를 통해 총 1억2000만달러를 조달했고, 임파서블 푸즈는 지난 10월 진행된 투자에서 새롭게 2억800만달러를 조달했다. 앞서 지난 여름에는 2억~3억달러에 이르는 구글의 인수 제의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져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친환경·건강·스마트에 주목
 
세 번째 유형은 도시에서의 농업을 적극 육성할 수 잇는 실내 농업이다. 식물 공장의 형태를 띄고 있는 실내 농업은 농경지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도시에서 최소한의 생산 요소 투입으로 식량 생산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지금까지 490만달러를 조달하며 이 분야 유망 기업으로 떠오른 '프레이트 팜'을 예로 들면, 선박용 컨테이너를 리모델링해 식물공장의 본체로 삼았다. 내부에는 LED 조명과 각종 센서를 설치하고 수경재배 시스템을 도입했다. 농약을 치지 않고 일주일에 양배추 500개를 생산할 수 있는 프레이트 팜의 사업 모델은 식량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기대를 모은다. 
 
네 번째는 식품 안전을 확인할 수 있는 솔루션이다. 비위생적인 식품이나 불량 식품이 늘어나며 소비자의 불안감도 함께 높아진 상황에서 식품의 생산자, 공급자, 유통업체 등을 모두 추적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가 잇따라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식품이나 음료에 살모넬라, 리스테리아 등 식중독을 유발하는 병원체가 있는지를 즉시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도 이에 해당한다. 이식스 노스아메리카, 인비지블 센티넬 등 이 분야 기업들에 대한 투자는 1000만~5000만달러 수준으로 상대적으로 적지만 효용성 면에서 꾸준한 수요가 예상된다.
 
마지막으로는 농사 로봇이다. 사람이 하기 어려운 일을 로봇이 도와 농업 생산성을 높여줄 것이란 기대에서 비롯됐다. 세 명의 로봇 전문가가 지난 2009년 메사추세츠에서 설립된 하베스트 오토메이션도 이를 표방한다. 하비스트 오토메이션의 대표 제품인 HV-100은 비닐하우스 등의 경작에 적합한 농업 보조기계다. 별도의 프로그램 설치 없이 간단한 조작법만 익히면 쉽게 사용할 수 있어 노동력 절감에 매우 효과적이다. 지금까지 4차례의 투자를 통해 약 2500만달러를 조달했는데, 내년 초에는 새로운 로봇 모델을 출시할 계획이다.  
 
김진양 기자 jinyangkim@etomato.com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