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전재욱기자] 시국사건에 관련한 재심 무죄 판결에 대한 검찰의 상고가 대법원에서 모두 기각되고 있는 가운데 피해 당사자들이 확정 판결을 받기도 전에 숨져가고 있다.
11일 <뉴스토마토>가 대법원의 협조를 얻어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유죄에서 무죄로 뒤집힌 '시국사건'(계엄법위반, 국가보안법위반, 긴급조치위반, 반공법위반, 외환의죄, 특수범죄처벌에관한특별법위반)을 전수 조사한 결과, 검찰의 불복으로 상급심이나 대법원에서 다시 유죄를 선고한 사건은 단 한 건도 없는 것으로 집계됐다.
◇재심 신청후 사망..유족들이 대 이어 소송
그러나 이 중 피해 당사자 일부는 무죄확정 판결을 받기 전 숨을 거두고 있다. 더러는 진실화해위의 재심권고 결정을 받고 사망하기도 한다. 고령의 피해 당사자로 피고인 란에 유족의 이름이 올라오는 경우다.
노동운동가 이일재씨 사건이 이런 경우다. 일제시대부터 노동운동에 투신한 그는 1968년 박정희 정권 당시 '남조선해방전략당 사건'(전략당 사건)에 연루돼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그는 1988년까지 20년을 복역하고 석방돼 2011년 법원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으나 검찰이 상고했다. 그는 무죄가 확정되기 전인 2012년 89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이 사건은 아직도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이씨를 대리한 김희수 변호사는 이씨가 사망한 뒤 "내 잘못도 아닌데 유족에게 미안해 혼났다"며 "명예회복이 이뤄지지 않아 안타까울 뿐"이라고 말했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사형집행일(1975년 4월9일)에서 이름을 딴 49재단의 사무총장 안경호씨는 "피해자 일부는 노령인 탓에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도 검찰의 상고로 무죄가 확정되기 전 숨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말했다.
'살아남은 자'들의 명예회복도 더디다. 이태복 전 보건복지부 장관(64)은 '학림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뒤 풀려 나와 재심을 신청해 2010년 12월 서울고법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검찰이 상고해 대법원에서 심리가 다시 진행되면서 2012년 6월 무죄확정 판결을 받기까지 1년 6개월이 걸렸다.
◇무죄 판결받아도 불복..금전 배상도 늦어져
금전적인 배상도 늦어지기는 마찬가지다. 형사보상법에 따르면 피고인은 무죄판결이 확정된 뒤 국가로부터 보상금을 받을 수 있다.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낼 때도 무죄 확정판결이 필요하다. 일단 승소해도 국가가 항소하기 때문이다.
불법수사가 확실하게 드러난 대부분의 사건에 대해서도 검찰이 상고를 하는 것에 대해 '관행적'이라는 비판과 함께 피해자에게 2차, 3차의 고통을 주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장준하 선생 사건의 재심에서 무죄확정 판결을 이끌어낸 조영선 변호사는 "제출한 증거의 증거능력이 인정되지 않으면 검찰은 상고를 포기해야 한다"며 "항소권을 남용해 피해자에게 또 다른 고통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사법위원회 부위원장인 이재화 변호사도 "검찰 스스로 무죄라고 판단되면 직권으로 공소를 철회하거나 무죄를 구형해야 한다"고 말했다.
검찰이 시국사건을 정치적 접근한다는 지적도 있다. 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장 오영중 변호사는 "재심 무죄사건에 불복하는 것은 종북 프레임을 유지하려는 의도"라며 이것이야 말로 "일종의 반국가적 행위"라고 비판했다.
◇재심 불복 검찰 비판할 법적 근거 없어
물론 재심사건에 대한 검찰의 상소를 비판하고 제한할 법적 근거는 없다. 우리 헌법은 3심제를 규정하고 있고 검찰은 공익의 대변자로서 형사사건에서 진실을 추구하는 것을 임무로 하고 있다.
서울고법의 A부장판사는 검찰의 상소를 무조건적으로 비판하고 제한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재심에서 유죄가 나온 경우 피고인의 항소와 상고를 제한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의미"라고 설명했다.
검찰 출신의 B변호사는 검찰의 상소를 문제삼는 것을 오히려 '정치적'이라고 봤다. 그는 "이 문제 역시 법률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법치를 바로 세운다는 차원에서 상소는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법부조차 재심무죄 사건에 대한 검찰의 거듭되는 불복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법원 올 일 아니라 국가가 사과할 일"
서울중앙지법의 C부장판사는 "법원에 올 일이 아니라 가해자인 국가가 당사자에게 사과를 할 일"이라며 "이런 일(검찰의 재심무죄에 대한 불복)은 그 사회의 품격을 말해준다"고 개탄했다.
같은 법원의 D부장판사는 "법원의 판결에 대한 검찰의 불복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는 원칙론을 언급한 뒤 "다만 무죄 판결이 확정되면 검사는 공익의 대변자로서 유감을 표명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유죄가 무죄로 확정된 재심사건에 대해 검찰이 공식으로 사과한 적은 여태까지 한 차례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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