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나게 빠른 속도의 정보화와 개방화로 세계 경제가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습니다.
시장은 예측 불허이고, 뜻모를 경제 용어가 홍수를 이루고 있습니다.
글로벌 시대. 경제 참 어려우시죠?
뉴스토마토가 새롭게 선 보이는 칼럼 `쿨(Cool)~경제`가 속시원하게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따분하고,어려운 경제를 통쾌하게 풀어드립니다. 집필을 맡은 김대환 칼럼니스트는 미국 하버드 대학 경제학박사 출신으로 러시아, 모스크바 유명 대학에서 강의를 하다 현재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퍼스트 프라이빗(First Private)증권에서 시니어 포트폴리오 매니저로 일하고 있습니다. [편집자註]
전례 없는 금융위기를 맞은 세계 각국 정부가 잇달아 시장 안정을 위한 대책을 쏟아 내고 있다. 이 중 특히 눈길이 가는 것은 금융권 주식에 대한 공매도 금지 방안이다. 이 같은 방안을 추진하게 된 배경이 이해가 될 듯 하다가도 다시 생각해보면 다소 혼란스러워지기 때문이다.
공매도를 못하게 하면 주가 하락을 막을 수 있을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적어도 단기간은 말이다. 주가가 너무 낮다고 믿는 사람은 주식을 사면 그만이지만 주가가 너무 높다고 믿는 사람은 이미 보유한 주식이 없으면 팔 도리가 없다. 결국 주식을 매수하는 사람의 수는 그대로인데 주식을 매도하려는 사람의 수는 줄어들 것이다.
그러니까 공매도 금지는 주가 하락에 베팅해서 돈을 버는 “나쁜 사람들”한테는 안 좋은 일이지만 그 외의 선량한 대다수한테는 좋은 일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적어도 모건 스탠리 CEO 존 맥과 같은 사람들은 그렇게 말할 것이다.
이들은 공매도가 최근 주가 하락의 주범이라며 공매도 금지를 적극 주장해 왔다. 공매도를 포함한 주식 거래 수수료가 모건 스탠리 수익 중 일부라는 점에 다소 아이러니가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다수 금융전문가들의 생각은 이와 다른 듯하다.
공매도 금지로 주가하락을 인위적으로 막게 되면 주가가 기업의 진정한 가치에서 멀어질 수 있고, 이는 결국 경제의 효율성을 떨어 뜨릴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주가 하락에 베팅해서 돈을 버는 나쁜 사람들 뿐 아니라 그 외의 선량한 대다수에게도 별로 좋은 일은 아니다.
이처럼 기본적인 경제학적 지식을 모를리 없는 미국 정부가 공매도 금지를 취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평소 시장개입에 대해 미국 정부보다 더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해 온 영국 정부조차도 공매도 금지에 함께한 이유는 무엇일까?
주가가 기업의 진정한 가치를 나타내고 있지 않다는 일부의 주장을 미국과 영국의 정부가 받아들인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다. 주식 시장이 반이성적이 되어 주가가 기업의 가치와 상관 없이 널뛰고 있다는 주장을 말이다.
얼마 전 러시아는 주식 시장을 이틀 동안이나 닫아 놓았다. 시장이 비정상적이 되어 주가가 이유없이 폭락하기 때문이란다. 이틀 닫았다가 다시 열었을 때, 마치 시장이 한 동안 비정상적이었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주가는 폭등했다.
이 같은 상황을 지켜 보며 십 년 전 아시아 외환 위기 때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환율이 매일 최저가를 기록하자 결국 한국 정부는 가격변동제한 제도를 없애 버렸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권고에 의한 것이었다. 가격변동제한 제도 때문에 시장의 가격이 적정 수준에 도달하는 데 너무 오래 걸리니 이를 없애는 것이 낫다는 게 IMF의 생각이었다.
서울 증시에서 주식의 상한가, 하한가가 없어진 것도 비슷한 연유에서다. 어차피 떨어질 주가는 떨어지게 마련이고 오를 주가는 오르게 마련이지, 상한가, 하한가를 둔다고 해서 달라질 게 없다는 생각이었다. 상한가, 하한가는 시장의 효율성을 해칠 뿐이라는 거였다.
그런데 10년 사이에 무언가가 바뀐 것일까? 10년 전에 필요없다던 시장가격제한 조치들이 지금에 와서는 다시 필요해진 걸까? 주가가 정말 이상해지기라도 한 걸까?
주가가 이상하다 혹은 적정 수준에 있지 않다는 주장이 새로운 건 아니다. 1929년 주가 대폭락 이후, “주가가 기업의 진정한 가치를 반영한다면 어떻게 며칠 사이에 절반으로 떨어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시장이 효율적이라고 믿는 경제학자들을 계속 괴롭혀 왔다.
시장이 효율적이고 주가가 항상 정확하다고 믿는 경제학들에게 1929년의 주가 폭락은 분명 설명하기 어려운 현상이었다.
하지만 기업의 실제 가치가 순식간에 크게 바뀌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다. 기업의 가치가 물리학에 나오는 무게나 질량과 같이 항상 일정한 수준에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다. 기업의 가치가 순식간에 크게 바뀔 수 있다면, 주가가 하루 밤 사이에 반토막이 난다고 해서 이상할 건 없다.
시장이 효율적이라고 믿는 경제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주가가 정말 비정상적으로 떨어졌다면 시장이 비정상이라고 소리지를 것이 아니라 그냥 주식을 대량 매수하면 될 것 아니냐고. 그러면 엄청난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고.
최근의 주식시장을 보면 기업의 가치가 순식간에 변할 수 있다는 말이 이해가 될 것도 같다. 어제까지 멀쩡하던 회사가 오늘 도산 직전에 몰리는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또 어제 도산할 듯 하던 회사가 오늘은 다시 정상화 되기도 한다. 기업의 실제 가치가 하루에도 몇 차례 크게 널뛰기를 하고 있지 않은가.
기업의 가치가 이렇게 쉽게 바뀌는 것은 기업의 가치에 결정적 영향을 끼치는 요인들이 급격히 변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들이 리먼 브라더스에 돈을 빌려 줄 거라고 생각하면 누구나 리먼 브라더스에 돈을 빌려 주려 한다.
그러면 회사가 망할 까닭이 없다. 하지만 남들이 리먼 브라더스에 돈을 빌려 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면 누구도 리먼 브라더스에 돈을 빌려 주려 하지 않는다.
그러면 회사는 순식간에 무너져 내릴 수 있다.
그런데 아무리 주가가 정확하다 해도 매일같이 이렇게 널뛰기를 한다면 자원의 효율적 분배라는 시장기능은 작동하지 않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주가가 정확한가 아닌가가 크게 상관이 없다는 생각이 나올 법도 하다. 주식 시장을 며칠 닫는다고 해서 크게 나쁘지는 않을 수도 있고, 공매도를 금지해서 가격의 정확성이 떨어진다고 해도 크게 손해볼 건 없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
미국과 영국의 정부가 공매도 금지 조치를 취한 건 주가가 부정확하다고 판단했기 보다는 주가 변동이 너무 심해서 어차피 시장이 기능을 잃었다고 판단한 때문이라는 추측을 해 본다. 여론에 편승해서 손쉬운 처방을 내린 것이라는 주장도 꽤 설득력이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공매도의 금지가 문제의 본질을 비켜가는 처방임은 분명해 보인다. 주가가 들쑥 날쑥 하는 건 경제 내의 불확실성이 극도로 높아져 있기 때문이지 누가 주가를 조작하기 때문이 아니다. 주가를 인위적으로 안정시킨다고 해서 경제 내의 불확실성이 낮아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경제 내의 불확실성이 높은지 낮은지마저도 불확실하게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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