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참사 늘었는데…노동계, 아리셀 감형에 "예방보다 합의" 우려
대법원, '피해자 합의' 이유로 대폭 감형한 항소심 확정
노동계 "'안전 투자보다 사후 합의' 잘못된 신호 줄 것"
"대법원 판결, 다른 중처법 재판 양형에 영향 줄 수도"
2026-10-21 17:00:50 ㅣ 2026-10-21 17:09:04
[뉴스토마토 김백겸 기자] 화성 아리셀 화재 참사의 책임자로 기소된 박순관 대표의 중대재해처벌법(중처법) 위반 혐의에 대해 대법원이 징역 4년을 확정, 솜방망이 처벌을 하자 노동계는 "기업들이 중대재해 예방보다는 사고 후 합의를 더 중시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올해 제조업에서 화재·폭발 등 대형 참사로 인한 사망자가 늘어나 '중대재해를 예방한다'는 중처법의 취지가 훼손될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습니다.
 
박순관 아리셀 대표가 지난 2024년 8월28일 경기도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친 뒤 대기 장소인 수원남부경찰서로 들어서고 있다. (사진=뉴시스)
 
21일 민주노총 경기지역본부는 성명을 통해 "대법원은 입법 취지를 완전히 몰각하고 자본의 편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을 무력화했다"고 비판했습니다. 민주노총 경기본부는 아리셀 참사가 일어난 경기 지역에서 관련 투쟁을 이어왔습니다. 경기본부는 "유가족들은 징역 15년을 4년으로 감형한 2심 판결에 이미 거세게 분노했다"며 "대법원은 2심의 결과에 어떠한 문제도 없다면서 재판을 끝내버린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앞서 대법원은 전날 박 대표에 대한 상고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한 항소심 판결을 확정했습니다. 1심은 박 대표에게 징역 15년의 중형을 선고했지만, 2심에서는 징역 4년으로 대폭 감형했습니다. 2심 재판부는 감형의 이유 중 하나로 피해자 측과 합의한 점을 들었습니다. 이를 대법원이 별다른 판단 없이 확정한 겁니다.
 
노동계는 이번 대법원 판결이 경영책임자에게 무거운 처벌을 경고해 중대재해를 예방하도록 하는 중처법의 취지를 훼손했다고 지적합니다. 민주노총은 전날 성명을 통해 "대법원이 중처법의 취지를 좁게 해석하고 책임의 무게를 크게 낮춘 판결을 그대로 확정함으로써 중처법의 실효성은 심각하게 훼손됐다"고 평가 절하했습니다. 한국노총도 같은 날 입장문을 내고 "이러한 판결이 선례로 남아 기업의 책임 회피와 솜방망이 처벌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실제로 중처법 제정 이후에도 제조업의 대형 참사는 늘어나고 있습니다. 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3분기 기준 제조업 사고 사망자는 132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19명보다 13명(10.9%) 증가했습니다. 특히 50인 이상 제조업 사업장에서 사망한 노동자는 55명에서 72명으로, 17명(30.9%)이나 늘었습니다. 지난 3월 대전 대덕구 안전공업 화재로 14명, 6월 대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사업장 폭발로 5명이 숨지는 등 대형 참사도 여전했습니다. 
 
노동계는 이번 대법원의 판결이 '대형 참사가 일어나도 합의하면 형량을 감경받을 수 있다'는 잘못된 신호를 기업들에게 주게 될 것이라고 우려합니다. 민주노총은 "중처법은 기업이 사고가 난 뒤 합의와 배상으로 책임을 줄이는 구조를 바꾸기 위한 법"이라며 "이번 대법원 판결이 안전 투자보다 사고 이후의 합의와 감형을 선택해도 된다는 잘못된 사법적 신호로 남는다면, 그 책임에서 대법원도 자유로울 수 없다"고 경고했습니다.
 
우려는 현실이 될 수도 있습니다. 최근 대법원이 내놓은 중처법 양형기준안에 '처벌불원 또는 실질적 피해 회복'을 특별감경인자로 포함했기 때문입니다. 아리셀 참사 법률지원단장인 신하나 변호사(법무법인 덕수)는 "양형기준안은 2심의 판시 문구와 굉장히 유사하게 서술하면서 유족들과의 합의를 특별감경인자로 보고 있다"면서 "사실상 대법원은 '합의하면 형량을 대폭 깎아주는 게 맞다'고 입장을 명확하게 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이 안전공업 화재, 한화에어로 폭발 등 다른 중처법 재판에 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도 나옵니다. 신 변호사는 "양형에 있어서 굉장히 강력한 사인을 준 것"이라며 "대법원은 10년 이하의 양형에 대해서는 직접 판단할 수 없지만, 파기환송해 양형을 다시 보게 하는 방법이 있다. 그걸 돌려보내지 않으면서 양형이 확정되는 결과를 낳았다"고 지적했습니다.
 
김백겸 기자 kb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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