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경영을 찾아서)1차 세계대전과 가치의 전도: 불황기 리스크 매니지먼트[윤리]
22 / 관계의 총체성으로 쓰는 프루스트의 비즈니스 서사
2026-08-05 15:09:54 2026-08-05 15:36:06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1차 세계대전의 포화에 휩싸인 파리는 평시의 세련된 문화와 규범이 일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가치 전도의 거대한 무대다. 밤마다 감행되는 공습과 등화관제, 국가적 사투라는 절대적 위기 상황 속에서 오랜 세월 사교계를 지배한 가치관과 도덕적 기준은 기묘하게 뒤틀린다. 귀족적 품격과 교양을 자랑하던 살롱의 인사들은 생존과 욕망, 애국과 배반이라는 혼란스러운 경계 위에서 기존의 도덕적 나침반을 상실한다.
 
어둠에 갇힌 도시 속에서 공습경보가 울리는 순간에도 사람들은 어둠을 틈타 은밀한 쾌락을 좇거나 위기를 기회 삼아 이익을 챙기고, 평소 멸시받던 가치들이 생존의 필수 조건으로 둔갑한다. 소설의 화자는 한때 고결한 가치를 대변하던 사교계 인물들이 위기라는 압박감 앞에서 자신들이 구축한 신념을 얼마나 손쉽게 전복하고 표변을 정당화하는지를 냉혹하게 목격한다.
 
"전쟁이라는 거대한 폭풍은 도시의 지형뿐만 아니라 인간 내면의 도덕적 지형마저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어둠 속에서 울려 퍼지는 공습경보는 평상시의 고결과 품위라는 가식을 일시에 벗겨냈다. 한때 살롱에서 숭상 받던 미덕들은 생존의 위기 앞에서 거추장스러운 장식품으로 전락했고, 타인을 향한 냉혹함과 자기합리화가 지혜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었다. 사람들은 자신이 믿었던 가치가 뒤집히는 것을 보면서 혼란에 무감각해졌으며, 급박한 위기를 핑계 삼아 자신의 도덕적 추락에 정당성의 면죄부를 부여하였다. 폭격의 위험 아래에서 진정으로 무너진 것은 대리석 건물이 아니라, 인간의 영혼을 가누던 윤리적 기둥들이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재구성)
 
손실 회피와 윤리적 퇴색
 
현대 기업 경영에서 대외적 경제 불황이나 미증유의 위기 상황은 소설 속 전쟁터와 마찬가지로 조직의 가치 체계를 정면으로 흔드는 거대한 시험대다. 매출 급감, 자금난, 시장 점유율 하락이라는 생존의 위기 앞에서 기업은 장기적 윤리 경영과 단기적 재무 성과 사이의 격렬한 딜레마에 직면한다. 호황기에는 착한 기업과 사회적 가치를 부르짖던 조직이라도 불황이라는 폭풍이 몰아치면 윤리와 준법을 비용이자 거추장스러운 통제로 치부하며 윤리적 타협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불황기에 접어들면 기업들은 생존 위기 앞에서 장기적 윤리 경영과 단기적 재무 성과 사이에서 격렬한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이미지=챗GPT)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인간이 왜 비윤리적 선택으로 내몰리는지를 규명하는 출발점은 행동경제학자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과 아모스 트버스키(Amos Tversky)의 '전망 이론(Prospect Theory)'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같은 크기의 이익을 얻었을 때 느끼는 기쁨보다 손실을 보았을 때 느끼는 고통을 약 2배 이상으로 크게 인지한다. 이 강력한 '손실 회피(Loss Aversion)' 성향으로 기업 경영진과 임직원은 순조로운 이익 영역에 있을 때는 안정적인 '위험 회피적' 태도를 취하지만, 불황이나 실적 미달이라는 손실 영역에 진입하는 순간 손실을 회피하기 위해 파멸적인 '위험 선호적(Risk-Seeking)' 행동을 선택하게 된다.
 
중요한 점은 이 전망 이론의 손실 회피 동기가 인간의 인지 체계 속에서 '윤리적 퇴색(Ethical Fading)'이라는 심리적 자기기만 메커니즘으로 이어지기 쉽다는 사실이다. 여러 실증 연구나 학계의 논의는 의사결정이 '손실 방지'란 프레임에 갇히는 순간 인간의 도덕적 주의력과 인지적 시야는 극단적으로 좁아진다.
 
데이비드 메식(David M. Messick) 교수 등이 제기한 윤리적 퇴색 이론은 이 과정을 명료하게 설명한다. 손실 회피라는 강력한 심리적 동기가 발동하면, 의사결정자의 뇌 속에서는 이 사안의 도덕적·윤리적 차원이 마치 옷감의 색이 바래듯 수면 아래로 녹아 사라진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오직 '비즈니스 프레임'과 '단기 생존 프레임'이 완벽하게 대체한다. 손실에 대한 공포가 윤리적 자각을 마비하는 이 순간, 인간은 자신이 저지르는 행위의 도덕적 파장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한계적 윤리성(Bounded Ethicality)' 상태에 빠진다.
 
결국 "지금은 회사가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라는 생존 논리가 내면의 도덕적 죄책감을 해소하는 면죄부로 작동하면서, 손실 회피라는 심리적 압박은 윤리적 퇴색이라는 인지적 마비를 거쳐 조직 전체를 거대한 윤리적 표류 상태로 완성하게 된다.
 
단기 생존의 착시와 평판 자본의 와해
 
불황기에 윤리와 타협하여 단기 실적을 보전하려는 시도는 대부분 기업을 완벽한 파멸로 이끄는 독약이 된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글로벌 기업이 경기 침체나 위기 상황에서 리스크 매니지먼트의 중심축인 윤리적 나침반을 상실하여 돌이킬 수 없는 대가를 치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극심한 수익성 압박과 고성장 강박에 시달리던 웰스파고(Wells Fargo)의 사례는 불황기 가치 전도의 대표적 비극이다. 경영진이 하부 조직에 과도한 교차 판매 목표를 강요하자, 직원들은 생존을 위해 고객의 동의 없이 350만개에 달하는 유령 계좌를 무단으로 개설하는 사기 행위를 저질렀다. 단기 수익을 끌어올리기 위한 이 윤리적 타협의 결과는 참혹했다. 웰스파고는 30억달러가 넘는 벌금을 납부해야 했을 뿐만 아니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로부터 자산 성장을 금지당하는 초유의 규제를 받았으며, 수십년 쌓아 올린 브랜드 신뢰도를 일시에 잃고 경영진이 불명예 퇴진했다.
 
경쟁사 에어버스의 A320neo 출시에 쫓겨 시장 점유율을 빼앗길 위기에 처했던 보잉(Boeing) 역시 유사한 우를 범했다. 신형 기종인 737 MAX 개발을 급속히 추진하는 과정에서 개발 기간 단축과 비용 절감을 우선시한 나머지, 조종사 재훈련을 피하기 위해 조종 특성 향상 시스템(MCAS)의 결함 가능성을 은폐하고 안전 검증을 소홀히 했다. 이로 인해 잇따라 발생한 추락 사고로 346명의 고귀한 생명이 희생되었으며, 전 세계적인 운항 중단과 함께 600억달러에 달하는 재무적 손실을 입었다. 기술 중심의 자부심을 가진 기업이 단기 경쟁 압박 속에서 수익 중심으로 가치를 전도했을 때 어떤 비극이 발생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었다.
 
반면 극심한 경제 위기 속에서도 윤리적 나침반을 견고히 유지함으로써 위기를 도약의 계기로 삼은 기업도 존재한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코스트코(Costco Wholesale)가 보여준 결단이 대표적이다. 당시 월가와 금융 분석가들은 최고경영자 짐 시네갈(Jim Sinegal)에게 전례 없는 불황을 견뎌내기 위해 임직원의 임금을 삭감하고 복리후생을 줄이며 제품 가격을 인상하라고 집요하게 압박했다. 
 
하지만 시네갈은 "불황일수록 구성원과 약속과 고객에 대한 진정성을 지키는 것이 기업 윤리의 본질"이라며 단기 이익을 위한 윤리적 타협을 단칼에 거절했다. 코스트코는 마진 압박을 감수하면서도 임직원의 고용과 인센티브를 유지했고, 이것은 구성원들의 헌신과 고객들의 높은 충성도로 이어졌다. 그 결과 코스트코는 금융위기 이후 유통업계에서 압도적인 성장세와 평판 자본을 회복하며, 위기 속 윤리 경영이 단기 비용이 아닌 최고의 장기 투자임을 증명해냈다.
 
이처럼 불황기에 비용 절감이나 매출 보전이라는 명목으로 윤리를 타협하는 행위는 단기적으로 재무제표의 숫자를 끌어올리는 착시를 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수십 년 축적해 온 평판 자본을 일시에 몰수당하게 만들고, 법적 처벌과 고강도 규제라는 치명적인 리스크를 초래하는 나쁜 결말을 초래할 때가 많다.
 
금융위기 당시 코스트코는 임직원의 고용과 인센티브를 유지함으로써 기업 윤리와 평판 자본을 지켜냈다. (사진=뉴시스)
 
위기 속의 리스크 매니지먼트와 윤리적 나침반
 
리스크 관리의 국제 표준인 ISO 31000이 리스크를 '목표에 대한 불확실성의 영향'으로 정의하듯, 경제적 불황기일수록 기업의 리스크 매니지먼트는 단순한 재무적·운영적 통제를 넘어 조직 전체의 윤리적 나침반을 재정렬하는 고차원적 거버넌스로 진화해야 한다. 불황기 기업이 지향해야 할 본질적 목표는 단순한 단기 영업이익 달성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생존과 이해관계자 전체의 가치 보존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위기 시 윤리적 탈선은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가장 치명적인 불확실성으로 인식되어 전사 리스크 평가의 최상단에 위치해야 한다.
 
이러한 리스크 매니지먼트가 실효성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불황기에 특화한 윤리적 스트레스 테스트가 선제적으로 시행되어야 한다. 금융기관이 바젤3 규제나 미국 연준의 종합자본분석·검토(CCAR) 가이드라인에 따라 심각한 경기 침체 시나리오를 가정하여 자본 적정성을 평가하듯, 기업 역시 매출이 급감하는 불황 시나리오 아래에서 각 사업 부문의 비윤리적 행위 발생 가능성을 선제적으로 진단해야 한다. 미국 법무부의 '기업 컴플라이언스 프로그램 평가 가이드라인(Evaluation of Corporate Compliance Programs)'에서도 강조하는 핵심 리스크 평가 절차다.
 
구체적으로 원가 절감 압박이 가중되는 영업 및 수주 현장에서는 외주업체 단가 후려치기나 안전 관리비 삭감 유혹을 점검하고, 재무 및 회계 부문에서는 매출 조기 인식이나 충당금 미설정 등 분식회계 위험을 모니터링해야 하며, 생산 및 품질 부문에서는 스펙 미달 자재의 사용이나 검사 성적서 조작 가능성을 상시 진단해야 한다. 단기 실적 압박이 극에 달할 때 조직 내 어느 고리에서 윤리적 균열이 발생할지 시뮬레이션하고 대비책을 세우는 정교한 스트레스 테스트만이 실질적인 예방책이 된다.
 
나아가 가치 전도를 막기 위해서는 성과 평가 및 보상 체계의 구조적 재설계가 필수적이다. 경영학자 스티븐 커(Steven Kerr) 교수는 그의 고전적 논문 'A를 바라면서 B에 대해 보상하는 오류에 관하여(On the Folly of Rewarding A, While Hoping for B)'에서 조직이 윤리와 준법을 강조하면서도 실제 보상은 단기 재무 목표 달성에만 연동할 때 조직원은 필연적으로 비윤리적 행동을 선택하게 된다고 입증했다. 불황기 윤리적 탈선의 근본 원인은 도저히 달성할 수 없는 재무 목표를 하향식으로 강요하고 이에 맞춰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관리 방식에 있다.
 
따라서 위기 상황일수록 단기 재무 성과의 반영 비중을 과감히 낮추고 준법 규정 준수, 안전 관리, 윤리 경영 이행도를 가중 평가하는 윤리적 성과 관리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윤리와 절차를 지켜내는 행동이 개인의 성과 평가에서도 절대적으로 유리하도록 인센티브 구조를 바꾸는 것만이 생존 압박 속에서 조직원들의 도덕적 나침반이 흔들리지 않도록 물리적으로 뒷받침하는 길이다.
 
[안치용의 Critique: 폭풍 속의 나침반과 가치의 연금술]
 
프루스트가 그린 전쟁터 파리의 모습은 위기라는 폭풍이 불어올 때 인간의 도덕적 피부가 얼마나 얇게 찢겨 나가는지를 증언한다. 평시의 윤리가 따뜻한 햇살 아래서 입는 화려한 외투라면, 불황기의 윤리는 몰아치는 비바람 속에서 생명을 지키는 방수갑옷이자 오직 북극만을 가리키는 나침반이어야 한다.
 
오늘날의 수많은 기업이 불황의 어둠에 휩싸일 때, 비용 절감이라는 미명하에 윤리 경영 시스템의 불을 끄고 단기 이익의 달콤한 환상 속으로 도피한다. 그러나 거친 바다에서 나침반을 버린 배가 향하는 곳은 암초뿐이다. 불황기 윤리 경영은 결코 한가한 한량들의 도덕적 훈화가 아니다. 그것은 기업이 가장 혹독한 환경에서도 살아남아 다음 호황의 바다로 나아가게 만드는 가장 현실적이고 과학적인 리스크 매니지먼트의 본질이다.
 
가치가 전도되는 혼란의 시대일수록 최고경영자는 단기 실적의 숫자가 아닌 기업의 본질적 존재 이유를 되물어야 한다. 위기 속에서 윤리를 타협하지 않고 지켜낸 기업만이, 폭풍이 지나간 뒤 시장이 내어주는 가장 높은 수준의 신뢰와 영속성이라는 자산을 거둬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안치용 ESG비즈니스리뷰 발행인 겸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충범 테크지식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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