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경영을 찾아서)샤를뤼스 남작의 이중생활: 내부통제 시스템(ISO 37001)과 리더십[반부패]
21 / 관계의 총체성으로 쓰는 프루스트의 비즈니스 서사
2026-07-27 13:02:05 2026-07-27 14:23:23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가장 지배적이고도 입체적인 인물은 단연 샤를뤼스 남작이다. 게르망트 가문의 방계이자 사교계의 절대적 지배자인 그는 고고한 귀족적 품격, 범접할 수 없는 지적 권위, 그리고 타협을 불허하는 자존심과 오만의 화신이다. 그는 살롱의 중심에서 타인의 위선과 천박함을 잔인할 정도로 통렬하게 비판하며 귀족적 교양과 문화적 권위를 대변하는 인물로 군림한다.
 
그러나 이 화려한 가문과 품격의 장막 뒤에는 누구에게도 밝힐 수 없는 남작의 비밀스러운 이중생활이 도사리고 있다. 소설의 화자는 우연히 재단사 쥐피엥의 어두운 가게 뒤편에서 펼쳐지는 남작의 은밀한 회동을 목격하고, 더 나아가 1차 세계대전의 포화가 밤하늘을 수놓는 파리의 어느 은밀한 호텔 방에서 사슬에 묶인 채 채찍질을 당하며 피학적인 쾌락에 탐닉하는 그의 일탈을 마주하게 된다. 
 
"샤를뤼스 남작의 목소리는 평소 사교계의 여성들을 얼어붙게 만들던 그 위압적이고 오만한 울림을 완전히 잃어버린 상태였다. 그 어두운 방 안에서, 오직 은밀한 본능의 지시만을 따르며 매질을 자청하는 그의 몸짓은 그가 그토록 멸시하던 천민의 비천함보다 더 깊은 심연으로 추락해 있었다. 거대한 게르망트라는 성벽이, 그의 고결한 정신을 떠받치던 우아한 대리석 기둥들이 이 비밀스러운 이중성이라는 보이지 않는 흰개미 떼에 의해 안으로부터 완전히 갉아 먹히고 있었다. 남작은 자신이 무너지지 않는 성채라고 믿었으나, 그의 요새는 가장 은밀한 내부의 통로로부터 붕괴하고 있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재구성)
 
현대 기업 경영의 관점에서 샤를뤼스 남작의 이중생활은 치명적인 리더십 리스크와 도덕적 해이를 정면으로 환기한다. 완벽해 보이는 브랜드 이미지, 화려한 사회공헌, 윤리경영 선언이라는 외부의 가면 뒤에서 최고경영진과 리더가 은밀한 부패와 일탈을 저지를 때, 기업이 마주하게 될 평판 자본의 붕괴와 조직 거버넌스의 파산은 소설 속 남작의 몰락과 궤적을 같이한다.
 
2006년 독일 기술 대기업 지멘스(Siemens)의 대규모 뇌물 스캔들은 리더십의 일탈이 평판 자본을 어떻게 단숨에 증발시키는지 보여준 사례다. 독일 뮌헨에 있는 지멘스 본사 건물 앞에 놓인 지멘스 로고의 모습. (사진=뉴시스)
 
리더의 일탈과 평판 자본의 붕괴
 
현대 경영학에서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한 핵심 임원은 기업의 장기적 가치를 극대화하고 이해관계자의 신뢰를 지켜내야 하는 수임인이다. 그러나 대리인 이론에 따르면 주주와 경영자 사이에는 필연적으로 정보의 비대칭과 이해관계의 상충이 발생한다. 경영자는 자신에게 부여된 절대적인 권한과 정보를 활용해 주주나 기업 전체의 이익이 아닌, 자신의 사적 이익이나 욕망을 추구하려는 도덕적 해이에 빠지기 쉽다. 특히 조직 내에서 감시받지 않는 절대 권력을 쥔 CEO라면, 대리인 문제가 극단적인 형태의 반부패 리스크로 발현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 리더가 뇌물 수수, 횡령, 채용 비리, 직장 내 괴롭힘 등의 부조리를 저지를 확률을 통제하지 못할 때 기업이 입는 타격은 정량화하기 힘들 정도로 막대하다.
 
리더의 일탈은, 부정행위로 얻을 수 있는 사적 효용과 발각 시 치러야 할 유무형의 처벌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계산의 결과물이다. 만약 기업 내부의 감시와 통제 체계가 부실하여 부정이 적발될 가능성이 극도로 낮게 유지된다면, 리더는 설령 적발 시의 처벌과 사회적 매장 비용이 치명적이라 할지라도 도덕적 나침반을 상실하기 쉽다. 즉, 규제와 감시의 그물이 느슨해질 때 리더의 뇌리에서는 부정을 통해 누릴 사적 이익의 기대 가치가 합법적 품위를 유지하는 것보다 크다고 오판하는 왜곡된 합리화가 작동한다. 
 
2006년 세계를 뒤흔든 독일 기술 대기업 지멘스(Siemens)의 대규모 뇌물 스캔들은 리더십의 일탈이 평판 자본을 어떻게 단숨에 증발시키는지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지멘스 경영진이 해외 사업 수주를 위해 무려 13억~14억유로에 달하는 전방위적 비자금과 뇌물을 조직적으로 살포했음이 드러났다. 기업 내부의 정교한 회계 시스템조차 리더들의 초법적 담합과 방조 앞에서는 무력했고, 발각 시의 위험보다 단기적 성장을 더 탐닉했던 리더들의 도덕적 해이는 결국 16억달러가 넘는 천문학적인 벌금과 평판의 처참한 붕괴로 이어졌다. 
 
평판 자본은 기업이 약속을 이행하고 도덕적 계약을 준수하겠다는 무형의 담보이다. 리더의 부패는 이 담보 가치를 일시에 몰수당하게 하며, 이해관계자와 거래비용을 급격히 증가시킨다. 소비자의 불매운동, 투자자의 자금 회수, 인재의 이탈은 몇몇 개인의 도덕적 파산이 유기체로서 기업 전체를 어떻게 질식시키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현상이다.
 
시스템으로 통제하는 인간의 취약성
 
경영학자 도널드 크레시(Donald R. Cressey)가 오래전 정립한 '부정의 삼각지대(Fraud Triangle)' 이론은 리더를 포함한 조직 구성원이 부패를 저지르는 세 가지 핵심 요소를 압박(Pressure)과 기회(Opportunity), 그리고 합리화(Rationalization)로 명쾌하게 규명한다. '압박'은 단기 실적 달성에 대한 강박이나 사적인 금전적 곤경, 혹은 개인적인 욕망 등 부정한 행위로 나아가게 만드는 심리적 혹은 환경적 동기를 의미한다. '기회'는 견제 받지 않는 초법적 권한이나 허술한 내부 감사 프로세스 등 부정을 저지르고도 충분히 은폐할 수 있다고 믿는 조직적 틈새에서 생겨난다. '합리화'는 회사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거나 업계의 공통된 관행일 뿐이라는 식, 혹은 자신의 공헌에 따른 정당한 대가라는 식으로 도덕적 죄책감을 씻어내고 자기 행동에 면죄부를 부여하는 내면의 타협이다. 이후 2004년에 후학에 의해 '역량(Capability)'이 추가되어 '부정의 다이아몬드(Fraud Diamond)' 이론으로도 불리게 된다. 
 
이 '부정의 삼각지대' 중에서 기업이 제도와 거버넌스를 통해 통제하고 와해할 수 있는 실효적인 축은 '기회'의 제거이다. 압박과 합리화는 개인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이다. 기회를 체계적이고 과학적으로 통제하여 부패 발생 가능성을 선제적으로 완화하기 위해 고안된 국제표준이 부패방지 경영시스템인 ISO37001이다.
 
ISO37001은 단순히 선언적인 윤리강령 수준에 머물지 않고 기업 프로세스 전반에 스며드는 구체적인 통제 도구를 가동한다. 가장 먼저 단행되는 조치는 기업이 처한 사업 환경과 거래 관계, 내부 프로세스를 분석하여 부패가 발생할 수 있는 취약지대를 식별하고, 각 부조리 요소의 리스크 등급을 평가하여 집중 관리하는 합리적 리스크 평가 방식이다. 또한 고위험 거래나 의심스러운 계약 상대방을 사전에 검증하고, 주요 보직의 임직원을 채용하거나 승진시킬 때 엄격한 도덕성 및 이력 검증을 수행하여 부조리의 씨앗을 걸러내는 실사의 의무화를 도입한다. 동시에 자금의 집행과 계약 체결 시 단독 의사결정을 철저히 배제하고 복수 결재 라인과 교차 검증을 강제하는 재무적 및 비재무적 통제 시스템을 가동하여 부정의 기회를 무력화한다.
 
이러한 국제 표준 인증 프로세스가 실질적인 통제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사법 및 자본시장이 요구하는 수준의 제도적 장치가 유기적으로 결합되어야 한다. 단순히 인증서 획득이라는 기계적인 절차에만 의존하면, 내부 감시는 리더의 권력 아래 손쉽게 포섭되어 박제화한 절차로 전락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상법에 따른 준법지원인 제도,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이 준법감시인의 독립적 직무 수행을 법적으로 명시한 이유, 그리고 이사회 내 감사위원회의 독립적 구성을 강력히 요구하는 자본시장법 및 상법의 세부 장치들이 존재하는 본질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경영진의 인사권과 영향력으로부터 원천적으로 차단된 사외 전문가로 감사기구를 채우고, 준법 감시 조직에 독립적인 조사권과 안건 상정권을 실질적으로 부여할 때 비로소 통제 시스템은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다. 감시자가 피감시자의 지배 아래 놓여 있는 불합리한 권력 구조를 깨트리는 독립성의 수호야말로, '부정의 삼각지대'에서 가장 핵심적인 '기회'라는 축을 무너뜨리는 마지막 퍼즐이다.
 
'톤 앳 더 탑(Tone at the Top)'
 
그러나 아무리 완벽한 프로세스와 독립적인 준법 감시 기구를 법과 서류(Paper Compliance) 상으로 구비해 두었다 하더라도, 최고경영진이 이 시스템의 예외가 되기를 자처하거나 은밀한 일탈을 묵인한다면 내부통제는 앙상한 뼈대만 남은 무기력한 서류상 컴플라이언스로 전락하고 만다. 준법 경영의 성패를 가르는 이 핵심적 개념은 바로 최고경영진의 윤리적 의지와 실천을 일컫는 '톤 앳 더 탑'이다. 결국 시스템의 완성은 사람인 셈이다.
 
톤 앳 더 탑의 원리는 최고경영진의 고유한 가치관이 조직 전반의 윤리 수준을 결정한다는 상위계층 이론(Upper Echelons Theory, Hambrick & Mason, 1984)과 조직원이 리더의 실천적 행동을 관찰하며 자신의 도덕적 나침반을 조율한다는 사회학습 이론(Social Learning Theory, Bandura, 1977)에 토대를 두고 있다. 상위계층 이론은 기업의 전략적 선택과 윤리적 수준이 결국 최고경영진이 지닌 고유한 가치관과 인지적 편향의 필터를 투과해 결정된다는 점을 실증한다. 또한 사회학습 이론은, 최근 스타벅스 사태가 여설히 보여주었듯 조직 구성원이 공식적인 매뉴얼보다는 리더의 실제 행동과 태도를 관찰하고 모델링하며 자신의 윤리적 기준을 조정해 나간다는 사실을 명확히 짚어낸다.
 
무대 앞에서 ESG를 역설하고 반부패를 선언하면서, 무대 뒤편 은밀한 방 한구석에서 내부 거래와 편법 승계라는 은밀한 이중생활을 설계하는 경영진이라면 무대 뒤 어두운 분장실까지 실시간으로 들여다보는 초연결사회에서 생존하기 어렵다. (이미지=챗GPT)
 
실질적으로 최고경영진의 윤리적 분위기가 내부통제와 반부패 거버넌스의 핵심 요소로 인식되는 중요한 전환점은 1987년 미국의 '부정 재무보고에 관한 국가위원회(National Commission on Fraudulent Financial Reporting, 통칭 트레드웨이 위원회)' 보고서였다. 위원회는 회계 부정의 가장 결정적인 원인이 부실한 감사 절차가 아닌, 최고 경영진이 조성하는 왜곡된 기업 문화와 비윤리적인 분위기에 있음을 분명히 규명하였다. 이러한 인식은 이후 트레드웨이 위원회 후원조직위원회(COSO: Committee of Sponsoring Organizations of the Treadway Commission)가 1992년 발표한 '내부통제–통합 프레임워크'를 통해 '통제 환경'의 핵심 원칙으로 제도화하였다.
 
지멘스 역시 파국 이후 뼈아픈 교훈을 수용하며 전무후무한 혁신을 이뤄냈다. 그들은 내부 승진 관행을 깨고 최고경영진부터 전면 교체하는 극단적 혁신을 단행했다. 외부에서 영입된 CEO와 경영진과 완벽히 격리된 독립적인 사외 준법감시인은 "정직한 사업만이 지멘스의 유일한 사업"이라는 톤 앳 더 탑을 새롭게 조율했다. 경영진이 법무나 감사 부서의 보고서에 절대 관여하지 못하도록 구조적 독립성을 확립하였고, 준법 점수를 성과 지표에 연동하였다. 강력한 윤리적 리더십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흐르기 시작하자, 한때 부패의 대명사였던 지멘스는 세계 기업들이 벤치마킹하는 수준 높은 컴플라이언스 체계를 갖춘 청렴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었다.
 
조직의 참된 부패 방지 문화를 결정하는 것은 성문화한 규범의 텍스트와 함께, 매일 마주하는 리더의 일상적인 언어와 선택, 그리고 실천적 행동이다. 최고경영진을 포함한 모든 임직원이 예외 없이 동일한 통제 프로세스 내부에서 투명하게 움직일 때, 비로소 ISO37001은 규정집에서 벗어나 조직 구성원의 심장에 살아 숨 쉬는 유기적 문화로 진화한다. CEO가 독립적인 준법 감사 기구의 엄격한 칼날 앞에 스스로를 가장 먼저 내놓고 규칙을 몸소 실천할 때, 조직 하부의 구성원도 자율적인 도덕적 주체로서 비로소 움직이게 된다.
 
[안치용의 Critique: 가면극의 종말과 투명성의 거울]
 
살롱의 가장 높은 단상 위에서 우아한 독설을 내뿜던 샤를뤼스 남작의 모습은 화려한 보도자료와 지속가능경영 보고서의 서문 뒤에 자신을 숨긴 현대 기업 리더의 자화상과 묘하게 겹쳐진다. 그들은 단상 위에서 ESG를 역설하고 반부패를 선언하지만, 관객의 시선이 닿지 않는 무대 뒤편 은밀한 방 한구석에서는 여전히 단기 실적의 달콤한 채찍질을 탐닉하거나 내부 거래와 편법 승계라는 은밀한 이중생활을 설계하느라 분주하다.
 
그러나 초연결 사회는 그러한 이중 가면극의 공간을 극도로 줄여가고 있다. 관객은 이제 조명이 비치는 무대 전면뿐 아니라 무대 뒤 어두운 분장실까지 실시간으로 들여다본다. 진정한 내부 통제는 시스템의 그물망을 촘촘히 엮는 기술적 작업을 넘어, 리더가 먼저 가식의 가면을 벗고 준법의 거울 앞에 나체로 마주 서는 용기에서 출발한다. 경영진과 무관한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감사기구의 엄격한 독립성이 제도적으로 완성될 때 비로소 '톤 앳 더 탑'의 울림은 진정성을 획득한다. 품격의 진짜 이름은 가면의 화려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면을 벗겼을 때 드러나는 얼굴의 정직함에 있다.
 
안치용 ESG비즈니스리뷰 발행인 겸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충범 테크지식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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