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보라·이명신 기자]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가 세계 최대 메모리·스토리지 행사 ‘FMS(Future of Memory and Storage) 2026’에서 인공지능(AI) 시대의 데이터 처리 병목을 풀기 위한 서로 다른 차세대 메모리 해법을 내놨습니다. 삼성전자는 AI 가속기 위에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수직으로 쌓는 ‘zHBM’을, SK하이닉스는 낸드플래시를 HBM처럼 연결한 ‘HBF(High Bandwidth Flash)’를 각각 공개했습니다. 생성형 AI가 학습을 넘어 추론 단계로 확산하면서 메모리 용량과 대역폭, 전력효율을 동시에 높이려는 경쟁이 본격화하는 모습입니다. 이처럼 차세대 AI 메모리 경쟁이 HBM을 넘어 새로운 메모리 구조와 제품군으로 확대되는 가운데, 향후 시장 주도권을 놓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치열한 혈투가 예상됩니다.
삼성전자가 'FMS 2026'서 차세대 3D 메모리 비전을 제시했다. (사진=삼성전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지난 4일부터 6일(현지시각)까지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라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FMS 2026에서 차세대 인공지능(AI) 메모리 기술을 나란히 선보였습니다. 이 행사는 당초 낸드플래시 기술을 중심으로 한 ‘플래시 메모리 서밋’으로 출발했지만, 2년 전부터 D램과 낸드, 저장장치 전반을 아우르는 현재의 명칭으로 바뀌었습니다. 생성형 AI 확산으로 HBM과 기업용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등 메모리·스토리지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올해 행사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비롯해 샌디스크와 키옥시아, 마이크론 등 주요 메모리·스토리지 업체와 엔비디아, 마벨 등 글로벌 AI 반도체 기업들이 대거 참여했습니다.
zHBM, 데이터를 더 ‘가까이’ 전달
삼성전자가 이번 행사에서 가장 앞세운 기술은 차세대 3차원(3D) 메모리 아키텍처인 zHBM입니다. 기존 HBM이 그래픽처리장치(GPU) 등 AI 가속기(xPU) 옆에 나란히 배치되는 것과 달리, zHBM은 가속기 바로 위에 HBM을 수직으로 쌓는 구조입니다. AI 가속기와 메모리 간 데이터 이동 거리가 짧아지면 더 많은 정보를 빠르게 주고받을 수 있고, 데이터를 옮기는 데 쓰이는 전력과 발생하는 열도 줄어듭니다. 삼성전자는 zHBM을 적용한 차세대 인터페이스 시스템이 HBM5보다 최대 8배 높은 성능을 구현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전력 대비 성능도 최대 3배 높아지고 열 저항은 절반 이하로 낮아집니다.
삼성전자는 온디바이스 AI용 차세대 낸드 솔루션인 ‘zNAND-O’도 선보였습니다. ‘zNAND-O’는 기존 V낸드 기술에 실리콘관통전극(TSV)을 결합해 낸드 칩 4개 또는 8개를 수직으로 쌓은 3차원 패키징 제품입니다. 제품명 뒤의 ‘O’는 온디바이스 AI 환경에 최적화됐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이나 PC 등 기기 자체에서 대규모 데이터를 빠르게 불러오고 처리하는 온디바이스 AI가 확산하면서, 제한된 공간 안에 높은 용량과 성능을 갖춘 저장장치의 필요성이 커진 데 따른 것입니다.
업계 최초로 400단 이상을 쌓은 10세대 V낸드 ‘V10 BV-NAND’도 공개됐습니다. V10 BV-NAND는 웨이퍼 본딩 기술과 3스택 기술을 적용해 400단 이상의 초고적층 구조를 구현한 제품입니다. 메모리 집적도는 전 세대인 9세대 V낸드보다 약 58% 높아져 같은 면적에 더 많은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습니다. SSD 등 다양한 제품에 적용되면 제한된 공간에서도 저장 용량을 늘리는 데 기여할 것으로 회사 측은 기대했습니다. 이 밖에도 HBM4E와 HBM5, LPDDR5X-PIM, PM1763 등 고성능 컴퓨팅과 AI 데이터센터에 최적화한 차세대 메모리·스토리지 솔루션을 선보였습니다.
HBF, HBM ‘속도’에 낸드 ‘용량’ 결합
SK하이닉스도 이번 행사에서 샌디스크와 함께 차세대 스토리지 기술인 HBF의 표준 규격을 최초로 공개했습니다. HBF는 HBM과 SSD 사이에 놓이는 새로운 메모리 계층으로, HBM처럼 데이터를 빠르게 주고받으면서도, 낸드를 기반으로 해 용량을 크게 키울 수 있습니다. AI 추론 확산으로 처리해야 할 데이터가 급증하면서, HBM의 용량 한계를 보완할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SK하이닉스가 'FMS 2026'에서 샌디스크와 함께 차세대 스토리지 기술인 HBF의 첫 표준 규격을 공개했다. (사진=SK하이닉스)
이번 규격은 지난해 8월 샌디스크와 HBF 표준화 협력에 나선 데 이어, 올해 2월 컨소시엄을 출범한 지 약 6개월 만에 내놓은 첫 결과물입니다. SK하이닉스는 개발 중인 10세대(V10) 375단 4D 낸드의 웨이퍼와 제품도 공개했습니다. 375단 4D 낸드는 이전 세대보다 전력 대비 성능을 2.5배 높인 것이 특징으로, 전력 효율과 성능을 동시에 요구하는 데이터센터 등 AI 인프라 환경에 최적화됐다는 설명입니다. 회사는 내년 초 이를 기반으로 한 고성능·고용량 eSSD 양산에 착수할 계획입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이번 행사에서 미세화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적층 기술을 공통으로 앞세우면서, 차세대 AI 메모리 시장 선점을 위한 경쟁이 본격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학계에서는 차세대 AI 메모리 시장에서 양사 모두 적층 기술을 택한 만큼 수율 확보가 향후 시장 경쟁에 주요 가늠자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김형준 차세대지능형반도체사업단장(서울대 명예교수)은 “메모리 기술은 미세화와 적층이라는 두 축으로 발전해 왔는데, 이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발표는 미세화의 물리적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적층 기술의 진화를 보여준다”며 “여러 적층 방식 가운데 생산비용을 낮추면서도 양산성과 수율을 확보할 수 있는 기술 구현이 관건”이라고 했습니다.
박경덕 포항공대 물리학과·반도체공학과 교수는 “메모리의 3차원 집적은 앞으로도 확대되겠지만, 적층 구조가 복잡해질수록 공정 난도가 높아지고 결함을 찾아내기도 어려워진다”며 “기술적으로 제품을 구현하는 것뿐 아니라 검사·계측과 첨단 패키징 역량을 바탕으로 수율을 확보하는 것이 상용화와 경쟁력을 좌우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이보라·이명신 기자 bora11@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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