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강석영 기자] 원청 사용자는 사내하청 노동자와 교섭할 의무가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와 논란이 예상됩니다. 원청은 오랫동안 하청업체 생산 전반을 실질적으로 지배·결정해 왔음에도 원청의 책임을 부정한 겁니다. 개정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동조합법) 취지와 변화하는 노동 현실에 맞지 않는 판결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21일 HD현대중공업에 사내하청노조와 교섭할 의무가 없다고 판결한 직후 금속노조가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금속노조)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21일 오후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가 HD현대중공업을 상대로 낸 단체교섭 청구소송에서 사내하청지회의 상고를 기각했습니다.
사내하청지회는 2016년 사 측으로부터 단체교섭을 거부당하자 이 사건 소를 제기했습니다. 하지만 소를 제기한 시점은 노동조합법 개정(노란봉투법) 전이기 때문에, 판결에서도 이를 적용하지 않았습니다.
조희대 대법원장 등 대법관 8명의 다수의견은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하지 않은 하급심 판단이 맞다고 판단했습니다. 다수의견은 “노동조합법에서 규정한 사용자 개념에 ‘근로계약 당사자가 아니라도 노동자의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까지 포함된다고 해석하기는 어렵다”고 했습니다.
특히 다수의견은 최근 노동조합법 개정안에서 ‘근로조건을 지배·결정할 수 있는 자’까지 사용자 개념을 확대한 점을 언급하며 “향후 개정 노동조합법이 적용되는 사건에서 노동3권의 실효적 보장이라는 입법 목적에 맞게 사용자 개념을 해석하면 충분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흥구, 오경미, 신숙희, 마용주 대법관은 개정 전 노동조합법을 적용해도 HD현대중공업에 교섭 의무가 있다고 반대의견을 냈습니다.
반대 의견은 “헌법 33조와 노동자에게 노동3권을 보장함으로써 근로조건의 유지·개선과 근로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도모하려는 게 구 노동조합법의 입법 취지”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원청이 하청 노동자의 근로조건에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대해 △하청노조가 교섭을 요구한 사항을 원청이 사실상 단독 결정할 수 있어서 직접 결정할 수 있는 것과 동일하다고 평가되는 경우 △하청 노동자의 원청에 대한 경제적 종속성의 실질에 비춰 하청 노동자의 노동3권 보장을 위해 원청에 대해서도 단체교섭의무를 부담시킬 필요가 있는 경우에 (사용자성이) 인정된다고 판시했습니다.
반대 의견은 노란봉투법이 완전히 새로운 입법이 아니라는 점도 강조했습니다. 대법원이 그동안 외주화 등 변화된 노동 환경에 맞춰 노동3권을 보장하는 법리를 꾸준히 발전시켜 왔다는 겁니다. 반대의견은 “하급심과 노동위원회가 이미 실질적 지배력설을 통해 사용자 범위를 넓게 해석해 온 것은 헌법 정신에 부합하는 합헌적 조치”라며 “개정 노동조합법은 이런 기존의 법률 해석을 명문화한 것일 뿐 온전히 새로운 입법을 한 게 아니다”라고 짚었습니다.
노동계는 판결 후 대법원이 하청 노동자 현실을 외면했다고 규탄했습니다.
금속노조는 “이번 판결은 현장의 현실을 외면한 결정이다. 원청은 오랫동안 하청업체 생산 전반을 실질적으로 지배·결정해 왔다”며 “그러나 법원은 왜곡된 하청 구조를 바로 보지 못한 채 원청 책임을 부정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특히 오늘 판결은 개정 노동조합법 취지에도 역행한다”며 “이미 사회는 노동조건을 지배·결정하는 자가 사용자라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강석영 기자 ksy@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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