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혜현 기자] 국내 패션 시장의 경쟁 구도가 빠르게 재편되고 있습니다. 백화점과 오프라인 유통망을 기반으로 성장해 온 전통 패션 기업들이 국내 소비 둔화로 고전한 사이, 패션 플랫폼 기업들은 거래액 확대를 넘어 흑자전환과 글로벌 확장에 집중하며 새로운 성장축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K패션 산업의 주도권이 브랜드 중심에서 플랫폼 중심으로 이동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옵니다.
1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대표적인 국내 전통 패션 기업으로 꼽히는 삼성물산 패션 부문, 한섬, LF, 코오롱인더,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올해 1분기 전년 동기 대비 실적이 개선돼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들 기업은 지난해 1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이 동반 감소하며 부진을 겪었지만, 올해는 기저효과와 소비심리 일부 회복 영향으로 반등에 성공했습니다. 지난해 연간 기준 영업이익률이 전반적으로 하락하며 수익성 악화 우려가 커졌던 만큼, 이번 실적 반등이 추세적 회복으로 이어질지 관심이 쏠립니다.
삼성물산 패션 부문은 지난해 1분기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각각 2.5%, 36.8% 감소했으나, 올해 1분기에는 매출 5733억원, 영업이익 377억원을 기록하며 각각 13.7%, 10.2% 증가했습니다. 영업이익률은 6.6%로 전년 동기 대비 0.2%포인트 상승했습니다.
한섬 역시 지난해 같은 기간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3.4%, 33% 감소했지만, 올해 1분기 매출은 4104억원으로 7.9%, 영업이익은 365억원으로 67.4% 증가했습니다. 영업이익률은 8.9%로 3.2%포인트 상승했습니다.
코오롱인더와 신세계인터내셔날 패션 부문은 흑자전환에 성공했습니다. 전년 동기 각각 12억원, 42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지만, 올해 1분기에는 각각 21억원, 58억원의 영업이익을 냈습니다.
구조적 한계…오프라인 의존 부담 여전
패션업계는 한동안 고물가와 소비 침체, 백화점 채널 성장 둔화로 전통 패션 기업들이 실적 부진을 겪었지만, 올해는 증시 상승에 따른 부의 효과가 소비심리 개선으로 이어지며 일부 회복세를 보인 것으로 분석합니다. 다만 업계에서는 이번 실적 개선을 구조적 반등보다는 기저효과와 소비심리 회복이 맞물린 일시적 개선 흐름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합니다.
전통 패션 기업들은 여전히 국내 시장 중심 사업 구조와 높은 오프라인·백화점 의존도를 안고 있습니다. 여기에 브랜드 생산과 유통, 매장 운영에 따른 고정비 부담도 적지 않아 성장성에 한계가 있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브랜드 경쟁력과 유통망이 핵심 자산이었다면, 최근에는 해외 매출 비중과 사업 포트폴리오 다변화 여부가 실적을 좌우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전통 기업들이 주춤한 사이 무신사와 에이블리, 카카오스타일(지그재그)을 주축으로 한 패션 플랫폼 기업들이 신흥 강자로 부상하며 K-패션 성장의 한 축을 맡고 있습니다. 이들 플랫폼 기업들은 외형성장 중심 전략과 함께 수익성 확보도 집중하며 글로벌 시장 확대를 신성장 동력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중국 상하이 안푸루에 오픈한 무신사 오프라인 편집숍 '무신사 스토어 상하이 안푸루' 전경 (사진=무신사 제공)
무신사·에이블리·지그재그 신흥 강자 부상
패션 이커머스 업계 1위 무신사는 지난해 매출 1조4679억원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18.1% 성장했습니다. 2022년부터 2025년까지 연평균 매출 성장률은 27.5%에 달합니다. 영업이익은 1405억원으로 36.7% 증가했습니다.
특히 글로벌 스토어 성장세가 가파릅니다. 무신사의 해외 13개 지역 글로벌 스토어 거래액 증가에 힘입어 수출 실적은 489억원으로 전년 대비 10배 이상 급증했습니다. 무신사는 패션 플랫폼을 넘어 오프라인과 뷰티, 글로벌 사업을 아우르는 종합 패션 커머스 플랫폼으로 외연을 넓히고 있습니다. 중국 시장을 겨냥해 오프라인 편집숍과 브랜드 매장 확대에 나서는 한편, 일본 현지에서는 K-패션 업체와 팝업 스토어를 진행하면서 해외시장 공략에도 속도를 내며 글로벌 브랜드 허브로의 전환을 추진 중입니다.
에이블리코퍼레이션은 여성 패션과 셀러 생태계를 기반으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지난해 매출은 3697억원으로 10.6% 증가했고, 영업손실은 154억원에서 43억원으로 축소됐습니다. 지그재그를 운영하는 카카오스타일 역시 2년 연속 흑자를 기록했습니다. 지난해 매출은 2192억원으로 9.4%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58억원으로 확대됐습니다.
업계에서는 플랫폼 기업의 가장 큰 경쟁력을 낮은 재고 부담과 높은 확장성을 꼽습니다. 전통 패션 기업이 상품 기획부터 생산·재고·유통까지 직접 관리해야 하는 반면, 플랫폼 기업들 낮은 고정비를 기반으로 일본·동남아·북미 시장 진출에 보다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업계 일각에서는 향후 K패션 시장에서 플랫폼 기업이 백화점보다 더 강력한 유통 권력을 갖게 될 가능성도 제기합니다. 브랜드 입장에서도 소비자 접점 확보를 위해 플랫폼 의존도를 높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종우 남서울대 유통마케팅학과 교수는 "국내 패션 시장은 이미 성숙기에 접어들어 단순 브랜드 경쟁만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며 "앞으로는 누가 더 많은 소비자 데이터를 확보하고 글로벌 허브를 구축해 안정적인 수익성을 확보하느냐가 시장 주도권을 가를 핵심 변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혜현 기자 hyu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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