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생태계’ 기여 없으면 ‘보조금 벽’…수입 전기차 ‘투자냐 포기냐’
전기차 보조금, 공급망·AS 점수 낮으면 ‘입구 컷’
첫 문턱 60점 낮췄지만 매년 상향 예고
생산설비·부품 국산화 비중이 당락 가를 듯
보조금 포기한 저가 공세 역풍 우려도
2026-05-13 15:40:33 2026-05-13 15:40:33
[뉴스토마토 이규하 기자] 전기차 성능·가격만 따지던 정부의 전기차 보조금 평가 기준에 ‘국내 산업 기여도’까지 반영하면서 향후 전기차 시장은 중대한 변곡점을 맞을 전망입니다. 이번 평가 기준에서는 총점 100점 중 40점을 차지하는 ‘공급망 기여도’와 20점의 ‘사후관리·지속성’은 중대 핵심 요인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 항목은 국내 생산 기반이 취약한 해외 제작사들에게 치명적인 약점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만, 제도 첫 시행인 만큼 총 60점을 충족하면 통과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췄습니다. 이 문턱은 매년 높아지는 등 판매에만 치중한 해외 전기자동차 업체들이 국내 인프라 투자와 일자리 확대에 기여할 수 있는 요인이 될 전망입니다.
 
 
지난 3일 서울 용산구 용산역 주차장에 한 전기차가 충전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13일 기후에너지환경부가 확정 발표한 ‘전기차 보급사업 수행자 선정 평가기준’은 해외 전기차 시장의 양대 산맥인 테슬라와 BYD에 영향이 미칠 것으로 분석됩니다. 확정된 평가기준은 기술개발 역량과 공급망 기여도, 환경정책 대응, 사후관리·지속성, 안전 관리 5개 분야·13개 세부 평가항목으로 총 100점 만점입니다.
 
전기차 시장의 강자로 꼽히는 테슬라의 경우 해당 평가 기준 앞에서는 낮은 점수가 예상됩니다. 국내 생산 설비가 전혀 없는 테슬라가 국내 부품 조달 비중을 따지는 항목에서 만점(10점)을 받기 위해서는 국산 부품 비중 60%를 넘어야합니다. 
 
중국 상하이 기가팩토리에서 생산해 들어오는 모델Y 등의 경우 해당 점수를 충족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직영 정비소 15개소 이상 보유 시 만점(6점)을 주는 항목도 부담 요입니다. 최근 인프라를 늘리고 있지만 수치상으론 현대·기아자동차에 비해 불리하기 때문입니다. 
 
‘가성비’ 전기차로 지목된 BYD의 경우는 환경 정책 대응 항목(15점)에서도 발목 잡힐 공산이 높습니다. 환경정책 대응 항목을 보면, 전기차 제조시의 탄소배출량을 모델별 판매대수에 따라 평가하며 저탄소 소재 적용, 배터리·부품의 재활용·회수 등 전기차 전 주기에 걸친 환경 관리 역량을 점검하도록 했습니다.
 
전기차 제조 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을 조립국의 전력 배출계수로 평가하는 방식은 화력 발전 비중이 높은 중국 생산 차량에 불리할 것으로 보입니다. ‘친환경차’를 표방하면서도 사실상 제조 과정에서 탄소를 많이 배출했다면 보조금을 깎겠다는 속내가 담긴 셈입니다.
 
또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는 삼원계(NCM) 배터리에 비해 유가 금속 회수 가치가 낮아 자원순환 측면에서 불리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사후관리 책임 지속성(20점)’ 항목도 판매 후 철수 우려가 있는 수입사들을 걸러내는 이른바 먹튀 필터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점수(7점)가 상대적으로 낮은 사이버 보안 대응 역량 평가도 기술적 완성도가 낮은 저가형 전기차와 보안 투자를 소홀히 하는 수입사의 시장 진입을 막는 거름망이 될 전망입니다.
 
 
지난 3일 서울 용산구 용산역 주차장에 한 전기차가 충전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그럼에도 총 100점 만점 중 60점 이상만 획득하면 자격이 부여되는 관계로 첫 문턱은 낮은 상황입니다. 예컨대 AS센터 구축 여부도 직영 기준이 아닌 협력 센터 규모에 따라 만점을 받을 수 있도록 수입차 업계의 요청이 반영됐습니다.
 
기후부는 당초 80점을 검토했으나 업계 의견을 수렴해 60점으로 낮춘 상태입니다. 첫 시행에 따른 시장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설정된 ‘최소한의 문턱’인 셈입니다.
 
하지만 이 문턱을 매년 단계적으로 높이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했습니다. 당장 최소한의 기준을 충족해도 국내 인프라 투자와 일자리 확대에 소홀한 해외 업체들은 결국 수년 내에 보조금 시장에서 퇴출당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총 40점의 공급망 기여도를 보면, 생산 및 공급 역량, 부품산업 전환기여, 지역 공급망 안정성 기여, 고용 창출 효과 등에 각 10점씩 배정돼 있습니다. 이 중 해외 제작사가 국내 기관과 50억원 이상의 공동 연구개발(R&D)를 수행했는지, 국산 부품 조달 비중이 60% 넘는지를 따지는 부분은 보조금을 매개로 해외 업체들이 국내 부품 산업의 전동화 전환을 돕고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도록 유도할 수단으로 읽힙니다.
 
박판규 기후부 탈탄소녹색수송혁신과장은 “이번 확정된 평가 기준에서는 주관이 될 수 있는 평가 기준을 최대한 정량화해 정성 평가 항목을 없앴다”며 “기술력을 갖춘 신규 업체도 국내 전기차 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했다. 기존 통과 기준이 100점 만점에 80점으로 했으나 제도 도입 초기 기준이 높다는 의견이 있어 60점으로 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제도 도입 초기이기 때문에 문턱을 너무 높이면 국내 자동차 산업 생태계에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 수행자 선정 평가 지표는 매년 업데이트할 것이다. 의견을 받아 더 강화할 부분이 있으면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기후부 측은 “자동차 제작사들은 어쨌든 기준을 맞추기 위해 노력을 할 것이다. 예를 들어 AS 정비망이 없는 경우 정비망을 구축할 거고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국내 고용을 늘린다든지 국산 제품을 쓴다든지, 국내 소비자를 보호하고 자동차 산업 생태계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우려의 시선도 있습니다. 정부의 의도가 국내 투자 유도이나 결국 보조금을 포기하는 대신 마케팅 물량 공세와 가격 인하로 대응하는 ‘제3의 길’을 택할 공산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관련 업계의 관측입니다. 60점이라는 점수가 지금은 낮아 보일 수 있지만 공급망과 환경 지표가 강화될수록 해외 업체들의 선택지는 ‘한국 투자’ 혹은 ‘보조금 포기’ 저가 공세로 좁혀질 수 있다는 우려입니다.
 
세종=이규하 기자 judi@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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