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AI 시대, 회사의 쓸모
2026-05-12 06:00:00 2026-05-12 06:00:00
“먼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 내 자리가 위험하다는 것을 경험했어요.”
필자가 운영 중인 독서 클럽에서 한 디자이너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녀는 최근 다른 부서에서 배너 광고 디자인 작업을 디자인팀에 요청하지 않고 AI를 활용해 직접 만드는 일이 있었다고 했다. 회사 절차대로라면 디자인팀에 요청하고 일정을 받고 피드백을 주고받는 것이 당연하지만, 시간은 없는데 번거로우니 해당 팀에서 직접 AI로 작업을 완료한 것이었다. 퀄리티야 디자인팀만 못하지만 적당히 만족스러운 수준이어서 그대로 광고가 진행되었고, 그 이야기를 들은 디자인팀 전체는 서로를 바라보며 한동안 말이 없어졌다고 한다. 이미 포토팀과 이모티콘팀 조직도 없어진 터였다. 
 
며칠 뒤 디자이너들은 디자인만으로는 일자리가 안전하지 않겠다는 생각에 그룹 스터디를 시작했다. 독서 모임에도 나와 새로운 지식을 접하면서 ‘바이브 코딩과 배포까지 가능한 디자이너’ 같은 차별화된 역량을 개발하고 있는데, 이것으로 충분한지 모르겠다고 이야기를 마쳤다. 가구 디자인을 한다는 다른 멤버도 같은 이야기를 했다. 그 회사 디자이너들도 스터디를 하며 다른 역량을 찾고 있다고. 아직은 사람의 손이 마지막에 필요하지만, AI의 완성도가 점점 높아져서 지금 하는 일은 안전하지 않을 것이라 예상한다고 했다.
 
이번 독서 모임의 책은 송길영 작가의 『시대예보: 경량문명의 탄생』이었다. 4개월간 쉬었던 독서 클럽을 다시 시작하면서, AI로 인해 앞으로 벌어질 일자리 변화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잠도 자지 않는 AI가 수많은 일자리를 대체하고, 조직의 중간 단계가 사라지고, 전문성과 AI를 장착한 개인들이 모이고 흩어지며 일하는 '경량문명'이 온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막상 모임을 시작해 보니 이미 와 있다. 분야별로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AI가 전방위로 침투해 있었다. 한 멤버는 회사에서 제공한 AI 툴의 완성도가 너무 높아진 탓에 이제는 리소스 부족을 이유로 댈 수도 없어졌고, AI를 잘 쓰는 구성원과 못 쓰는 구성원의 편차가 너무 커서 야근까지 해가며 따라가고 있다고 우려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필자는 많은 이직을 했지만, 있고자 하면 조직은 나를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내 또래 주변을 보면 평생 함께할 가족 같은 존재로 회사를 바라보고, 그 안에서 안전하게 버티는 것이 목표이자 노력이었다. 하지만 오늘 멤버들과 이야기해 보니, 로열티를 갖는다고 해서 회사가 구성원을 지켜줄 것이라 기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다고 AI가 할 수 없는 ‘판단을 책임지는 자리’를 향한 피곤한 경쟁을 하고 싶은 것 같지도 않았다. 그 대신 크리에이터나 판매 부업을 이미 준비하거나 시작한 사람들이 많았다. 2년 전 이 독서 클럽을 시작할 때만 해도 조직에서 살아남는 역량과 태도에 대한 대화를 나누려고 했는데, 이제 그 이야기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직선대로처럼 조직만 바라보고 달려나갔던 우리 세대와 달리, 젊은 세대들은 이미 개인으로 독립할 수 있는 것들을 시작하고 있고, 그것이 AI 시대에 스스로를 지키는 옳은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지금 다니는 회사가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다. 함께하는 동안 일과 프로젝트로 성공하고, 그 과정에서 서로 성장하고, 때가 되면 서로 독립적으로 쿨하게 헤어질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회사는 더 이상 커리어의 목적지가 아니라, 독립을 위한 역량을 키우는 경유지로 봐야 할 것 같다.
 
송승선 커리어 작가, 『무경계 인간 호모 옴니쿠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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