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배희 기자] 금융당국이 생산적 금융 확대를 위해 은행·보험사 등 자본 규제 합리화 방안을 잇따라 내놓고 있는데요. 부동산 투자에 쏠린 자금을 기업 투자로 돌릴 수 있도록 금융사의 자금 공급 여력을 확대하겠다는 내용입니다.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부실에 대한 리스크를 극복하고 정책펀드·인프라·벤처 등 혁신 투자로 전환할 수 있는지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금융당국, 자본규제 합리화 나서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당국이 은행·보험사 등에 대한 자본규제 합리화 방안을 속속 내놓고 있습니다. 금융위원회는 최근 제5차 생산적 금융 대전환 회의를 개최하고 보험·은행 자본규제 합리화 방안을 통해 98조7000억원의 자금 공급 여력을 확보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조치로 보험업권에서만 24조2000억원의 추가 공급 여력이 생길 것으로 예측됩니다. 금융위는 우선 보험사들이 실질적인 위험 수준에 비례해 요구자본이 산출될 수 있도록 위험계수를 합리화했습니다.
그간 보험사들은 지급여력비율(K-ICS·킥스) 도입 이후 비상장 주식에 투자할 때 49%라는 높은 위험계수를 적용받아 왔습니다. 만약 비상장 주식에 100억원을 투자한다면 49억원을 요구자본으로 반영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위험계수가 높을수록 요구자본이 커져 킥스 비율이 떨어지기 때문에 사실상 자본 부담이 투자의 문턱으로 작용해 왔습니다.
앞으로는 보험사들이 국민성장펀드 등 정책 프로그램의 비상장 주식에 투자할 경우 위험계수가 20% 이하로 경감됩니다. 벤처기업 주식이나 벤처펀드를 통해 투자한 경우에도 위험계수를 35%까지 낮췄습니다.
은행권 역시 74조5000억원의 추가 공급 여력을 갖추게 됐습니다. 그간 금융위는 △비상장 주식 위험가중치 하향 △정책 목적 펀드 위험가중치 특례 요건 명확화 △주택담보대출 위험가중치 하한 상향 △해외 점포 출자금에 대한 구조적 외환 포지션 승인 등 조치를 취해왔습니다.
여기에 재발 가능성이 낮은 대규모 손실 사건의 운영리스크 손실인식 합리화 조치를 하고 구조적 외환 포지션을 확대해 환율 변동에 대한 리스크 관리 부담을 줄였습니다.
이번 정책 취지는 부동산 PF에 묶여 있는 자금을 국가 전략 산업인 벤처 투자와 신에너지 분야로 흐르게 유도하는 것입니다. 당국은 금융사들이 위험 자산으로 분류돼 소극적이었던 혁신 기업 투자의 위험계수를 낮춰줌으로써 자본 부담을 완화하고 적극적 투자가 가능하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자본규제 완화 전보다 요구자본 부담이 줄어들기 때문에 생산적 금융에 지원하고 투자할 수 있는 여력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며 "보험사들은 장기 투자처를 계속 찾고 있지만 리스크가 높을 경우 투자가 어려웠는데, 정부의 규제 완화로 실질적인 투자 유인이 확대될 것으로 예측된다"고 덧붙였습니다.
다른 관계자는 "생산적 금융 취지 자체가 부동산에 쏠린 자금을 생산적인 분야로 옮기겠다는 것"이라며 "보험사들이 국민성장펀드 출시를 앞두고 투자할 수 있는 방향으로 검토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보험사 건전성 부담 덜 추가책 필요"
전문가들은 금융당국의 규제 완화 조치로 생산적금융 확대에 기여도가 클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서지용 상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위험가중치 완화를 통해 생산적 금융을 확대하고, 은행 및 비은행 금융기관이 투자를 확대할 수 있게끔 계기를 마련하는 것은 좋은 시도"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투자가 부동산으로 집중되면 혁신 투자도 기피하게 되고, 부동산 가격만 오르는 문제점도 생기게 된다"며 "투자자들도 부동산이 안전한 투자라고 생각되는 악순환이 있으니 이런 측면을 개선하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다만 자본규제 완화가 단기적으로 효과를 발휘할지는 미지수인데요. 보험사는 수취한 보험료를 자산 운용을 통해 장기적으로 굴리는 게 대표적 특징인데요. 그간 혁신 기업에 대한 투자보다 장기 채권이나 부동산 같은 안전 자산으로 몰리는 경우 많습니다. 실제 보험산업의 운용자산에서 채권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 가까이에 달합니다.
특히 보험사는 구조적으로 부채 만기가 자산 만기보다 길어 자산 부채 관리 측면에서 안정적 자산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같은 격차가 적을수록 보험사 자산과 지급해야 할 부채 만기가 동일지는 등 금리 변동 리스크가 줄어듭니다. 현금 흐름 변수가 많은 혁신 기업에 투자할 경우 자산·부채 관리가 쉽지 않을 데다, 보험사의 지급여력비율(K-ICS, 킥스)에 대한 위험가중치가 높아 자본 건전성 측면에서 기피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자본건전성 지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완화 조치가 이어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벤처기업 등 첨단 산업 투자의 경우 위험계수가 내려간다고 하더라도 불확실성과 수익성 면에서 부담은 여전하다는 설명입니다.
한상용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혁신 투자가 규제도 문제였지만 기본적으로 안정적인 투자처가 아니다"라면서 "진짜 혁신 투자가 활발하게 일어나기 위해서는 벤처기업, 첨단 산업에서 수익성으로 결과를 보여준다면 자연스럽게 투자가 활성화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한 연구위원은 또 "보험사가 생산적 금융에 투자를 지속하기 위해서 보험 자본 규제나 투자 부담을 낮춰주면 좋을 것"이라면서도 "건전성에 부담돼서는 안 되기 때문에 혁신 투자와 자본 건전성 사이 접점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제언했습니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앞줄 가운데)이 서울 영등포구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생산적 금융 대전환 회의에서 참석자들과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배희 기자 SheisH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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