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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명 북 최고위급 '조성길'…남북관계 '겹악재' 되나
2018년11월 잠적 후 2019년7월 국내 입국
평양외대 졸업·4개국어 능통한 외교관 가문 출신 '초엘리트'
2020-10-07 10:06:40 2020-10-07 10:10:52
[뉴스토마토 백주아 기자] 지난 2018년 로마에서 잠적한 북한 조성길 전 주이탈리아 대사대리가 한국에 망명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돼 파장이 일고 있다. 북한의 우리 공무원 피격 사살 사건으로 남북관계가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가운데 북 최고위급 인사 망명 소식에 북한이 어떤 반응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7일 국회 정보위원회 야당 간사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조 전 대사대리가 부인과 함께 제3국을 거쳐 지난해 7월 국내에 들어와 당국의 보호를 받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조 전 대사대리의 망명 소식이 뒤늦게 알려진 배경에 대해 국정원 등 정보당국은 신변 보호 등의 이유로 구체적인 사실을 확인해주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망명한 조 전 대사대리는 북한에서도 뼈대있는 '외교관' 가문에서 태어나 평양외국어대를 졸업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등 4개 국어에 능통한 그는 지난 2017년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유엔의 대북 제재 여파로 문정남 전 주 이탈리아대사가 추방되면서 대사대리직을 역임하게 됐다. 주이탈리아 대사관은 식량지원을 담당해 북한에서도 중요한 재외공간으로 꼽힌다. 집안도 능력도 좋은 초엘리트층에 속했던 그의 잠적 사실에 초미의 관심이 쏠렸던 이유다. 
 
대사대리직은 북한에서도 최고위급에 속한다. 조 전 대사대리는 앞서 국내에 망명한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전 주영국 북한공사)보다 직급이 높다. 대사급 인사가 한국으로 들어온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해당 지위의 북 고위간부가 탈북한 것은 지난 1997년 장승길 주이집트 북한 대사가 미국으로 망명한 이후 21년 만이다. 즉 굉장히 이례적인 일로 평가된다. 
 
외교 전문가들은 그의 잠적·망명 시기간 시차를 고려했을 때 미국 등 제3국을 거쳐 국내로 들어왔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주이탈리아 대사관에서 근무하던 그는 지난 2018년 11월10일 북한으로의 귀임을 앞두고 아내와 돌연 잠적했다. 잠적 이후 북한에 사치품 상납 역할을 하다 상납금 등 실적 압박에 시달렸다는 설과 반북 단체가 '자유조선'이 그의 망명에 관여됐다는 설, 미국·영국 등 제3국으로의 망명을 타진 중이라는 등 추측이 난무했었다. 
 
다만 조 전 대사대리의 한국행에는 남북관계의 변화 국면 등이 일부 영향을 주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특히 지난해 2월 열린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노딜로 끝나 남북관계가 경색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제3국이 아닌 한국행을 결정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에 무게가 실린다. 당시 태영호 의원은 “친구야, 한국은 나나 자네가 자기가 이루려던 바를 이룰 수 있는 곳”이라며 “자네도 한국에서 자서전을 쓰면 대박 날 것”이라고 공개 편지를 통해 조 전 대사대리의 망명을 촉구하기도 했다. 
 
지난해 3월20일 조성길(가운데) 이탈리아주재 북한 대사대리가 이탈리아 산피에트로디펠레토에서 열린 문화 행사에서 '로베레토 자유의 종'을 들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북한 초고위급 인사의 망명소식이 전해지면서 북한이 어떤 반응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지난 2016년 태영호 의원이 한국에 망명했을 당시 북한은 "국가자금을 횡령하고 국가비밀을 팔아먹었으며 미성년 강간범죄까지 감행한 인간 쓰레기"라며 태 의원을 맹비난했다. 
 
조 전 대사대리 망명으로 남북관계가 더 악화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북한은 우리나라 공무원을 피격 사살한 이후 우리 정부의 '공동조사' 요구에 열흘간 침묵을 유지하고 있다. 미국 대선을 한 달 여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코로나19 확진 소식이 알려지면서 폼페이오 국무장관 등이 북한 측과 접촉하는 ‘옥토버 서프라이즈’도 사실상 물건너간 상황이다. 
 
백주아 기자 clockwork@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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