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백아란 기자] 자기자본 4조원 이상의 초대형IB가 출범 4년차를 보내고 있지만 '한국판 골드막삭스' 전략이 위기를 맞고 있다. 투자 제한 규제로 자금을 굴릴 때가 마땅치 않아 고질적 역마진에 시달리고 있어서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모험자본 공급 등 자본시장 역할이 강조되고 있지만, 금융당국의 관리감독이 강화되면서 각종 검사와 규제로 경영 불확실성에 시달리고 있다.
3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기준 한국투자증권, NH투자증권, KB증권 등 초대형IB 3곳의 발행어음 잔액은 총 16조4738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작년 상반기(10조1806억원) 대비 61.8% 증가한 규모다. 코로나로 회사채 등에 대한 운용손실 우려가 제기된 상황 속에서도 발행어음 덩치는 커진 것이다.
발행어음은 자기자본 4조원 이상의 초대형IB로 지정된 증권사가 자체 신용을 바탕으로 발행하는 만기 1년 이내의 어음으로, 기업대출·채권, 부동산금융 등에 투자할 수 있어 증권사들의 영업자금 조달을 원활히 하는 수단으로 꼽힌다. 특히 단기금융업(발행어음) 인가를 받은 증권사는 자기자본의 200%까지 발행어음을 판매할 수 있어 사실상 은행의 여·수신 기능을 한다. 발행어음 시장은 지난 2017년 한국투자증권을 시작으로 NH투자증권, KB증권이 잇달아 단기금융업 인가를 받으며 성장해왔다.
그러나 올 들어 코로나 충격으로 실물경제가 둔화하고 기준금리가 하락하면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단기금융업을 영위하고 있는 IB가 모험자본 공급과 자본시장 활성화라는 본래의 취지를 극대화하기 위해선 발행어음 투자용도 완화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기자본 보증 제한 등 정부의 규제에 이익을 낼 수 있는 투자처를 찾기도 쉽지 않다. 금융투자업 규정을 보면 초대형IB는 조달자금의 50% 이상을 기업 대출이나 비상장사 지분투자, 회사채 인수 등과 같은 기업금융에 의무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부동산금융에는 30%까지 넣을 수 있으며 나머지는 유동성으로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시장이 경색되면서 이익을 낼 수 있는 투자처를 찾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20일 기준 리스크 프리미엄을 나타내는 회사채 스프레드(국고채·회사채AA- 3년물 금리차)는 1.37%포인트 벌어졌다. 작년 말 회사채 스프레드는 0.577%였던 것을 감안하면 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코로나19 사태 확산으로 시장 변동성과 기업 펀더멘탈 약화에 대한 우려가 반영된 결과다. 회사채와 국채 금리간 차이가 커질수록 기업의 신용 위험도는 상대적으로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같은 기간 BBB+회사채는 8.536%로 7.723%포인트 확대됐다.
반대로 혁신기업에 대한 자금 조달 압박은 부담 요인으로 작용한다.
지난달 금융위원회는 ‘금융투자업규정’을 일부 개정하며 중소·벤처기업이 발행한 증권을 매입하거나 신용 공여한 금액을 발행어음 조달한도(자기자본200%)에서 제외해주기로 했다. 벤처 투자를 유도하는 것이다. 초대형IB들은 발행어음 조달 자금 중 모험자본에 투입되는 자금 규모나 비율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중소·벤처기업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 한다는 부담은 높다고 평가했다.
증권사 한 관계자는 "발행어음은 보통 1년 만기의 '단기자금'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벤처 기업에 집중하기엔 운용 부담이 존재한다"며 "단기간 안에 수신금리를 뛰어넘는 운용수익을 거둘 수 있는 마땅한 투자처를 찾기도 어려운 실정"이라고 언급했다.
역마진 우려도 발목을 잡는다. 기준금리가 사상 최저 수준인 0.5%까지 떨어지면서 증권사 경쟁력으로 지목됐던 발행어음 금리도 인하가 불가피해져서다. 이 때문에 한국투자증권은 이달부터 퍼스트 원화 발행어음 수익률을 0.10~0.20%포인트 내렸고 NH투자증권 또한 지난달부터 NH QV 원화 발행어음 수익률을 0.10~0.15%포인트 인하했다.
초대형IB 한 관계자는 "코로나19로 글로벌 금리 인하 기조가 이어지면서 채권 등 금융자산 가격이 하락하고 있어 발행어음 수익률 인하가 불가피하다"며 "자금 운용을 통해 약속한 수익률을 줘야 하는데 부동산·기업금융 시장이 경색된 상황에서는 운용부담도 존재한다"고 진단했다. 이어 "미래에셋대우 등이 발행어음업을 위해 준비하고 있어 경쟁이 심화될 가능성이 있다"며 "(단기금융업 영위에 있어) 정부의 규제뿐만 아니라 조달 상황 등 시장적인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백아란 기자 alive020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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