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50년)정부가 포기한 미운오리새끼, 세계 최고 항공사로 비상
"흉내내지 말고, 창의로 도전하라" 정석의 교훈…역발상 전략으로 유례없는 급성장
2019-02-27 06:00:00 2019-02-27 06:00:00
[뉴스토마토 채명석 기자] “세계 항공 역사에는 두 가지 미스터리가 있다. 하나는 육중한 쇳덩어리가 하늘을 날아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1970년대 한국의 항공사가 태평양을 건넌 것이다.”
 
항공업계 전문가들은 대한항공이 이뤄낸 성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과한 칭찬일수도 있으나 대한항공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면 그렇다고 고객을 끄덕일 것이다. 대한항공이 오는 3월1일 설립(민영화) 50주년을 맞는다. 한국 경제는 물론 세계 항공업에서도 기념비적인 성과다. 도저히 자립이 어려울 것이라던 동남아 지역 11개 항공사 중 꼴지였던 당시 대한항공은 반백년 만에 세계 20위권내 항공사로 초고속 성장했다.
 
대한항공의 성공 요인은 일반적인 상식과는 거리가 먼 새로움에서 찾을 수 있다. 정석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자는 생전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남을 흉내내지 말라. 흉내를 내면 시작부터 피나는 경쟁을 치르고 아무리 열심히 해도 2등으로만 남는다. 남이 생각지 않는 곳에 눈을 돌리는 참신한 아이디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자본력도 중요했지만, 남을 흉내내지 않는 창의력이 지금의 회사를 키워냈다는 것이다.
 
대한항공이 오는 3월1일 창립 50주년을 맞는다. 당시 동남아시아 지역 11개 항공사 가운데에서 꼴찌였던 대한항공은 이제 세계 20위권내에 드는 항공사로 탈바꿈했다. 대한항공 A380 여객기가 이륙하고 있다. 사진/대한항공
 
지금이야 일곱 번째 저비용항공사(LCC) 신규 면허를 획득하기 위해 5개 항공사들이 치열한 경쟁을 펼칠 만큼 업황이 성장했지만, 50년 전만해도 항공사업은 왠만한 덩지가 있는 기업도 섣불리 도전하기 어려웠다. 당시 민간기업이 항공업을 하는 국가는 미국이 유일했고, 프랑스, 독일, 일본 등 한국보다 경제력이 훨씬 앞선 나라들은 반관반민 형태나 정부주도로 항공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대한항공은 해방 후 민간자본으로 설립된 대한국민항공사가 모태다. 하지만 만성적자를 보이던 회사는 도산할 지경에 이르렀고, 부랴부랴 정부는 이를 인수해 1962년 대한항공공사로 전환했다. 그러나 막대한 자금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항공사를 정부로서도 감당할 수 없었고, 20여개 국영기업 가운데 가장 큰 적자를 내는 정부의 미운오리새끼로까지 내몰렸다. 이런 회사를 결국 인수했고, 결과적으로 전 세계 어떤 항공사와도 견줄 수 있는 경쟁력을 키워냈다.
 
대한항공의 역사는 한국경제의 성장과 궤를 같이한다. 특히, 수출 드라이브 정책에 따른 우리 기업들의 해외진출 과정은 대한항공의 노선 취항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즉, 1970~1980년대 당시 종합무역상사가 신규 공략국가를 선정해 현지로 파견, 시장을 조사하고, 해당 국가에 필요한 산업이 무엇인지 파악한다. 이어 그룹 계열 제조업체 또는 한국이 강점을 갖고 생산하는 제품을 현지로 수입해 판매한 다음에 직접 해당국가에 공장 등을 짓고 현지 생산하거나 그 나라 기업 또는 사회간접자본(SOC) 등에 투자해 사업 구조를 고도화 한다. 이렇게 해서 양국간 교류가 늘어나면 대한항공이 항공노선을 투입하는 시스템이 구축됐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맞춰 대한항공은 여객수송보다는 항공운송사업을 먼저 발달시키는 전략을 취했다. 1971년 미주노선 개발 당시 첫 취항도시로 서울에서 출발, 일본 도쿄를 경유해 미국 로스엔젤레스(LA)를 결정한 것은 초기 대한항공 성장의 신의 한수로 평가 받는다. 철저한 조사를 통해 LA가 급부상할 것으로 예상했을 뿐만 아니라 뉴욕이나 워싱턴 등에 취항할 경우 받게 될 미국 항공사들의 극심한 견제도 피할 수 있었다. 또한 이 노선은 여객기가 아닌 화물기를 먼저 띄웠다. 당시는 해외여객 수요가 수익을 낼 수준만큼 많이 않았던 데다가 안전과 서비스 품질을 확보하기 위해 검증할 시간을 벌고자 한 의도였다.
 
화물운송을 통해 터득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미주노선 첫 여객기를 이륙한 것은 1972년 4월, 도착지는 하와이 호놀룰루였다. 태극기가 그려진 대한항공 여객기가 호놀룰루 공항에 도착하자 활주로에 먼저 도착해 기다리던 재미교포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대한항공의 태평양 횡단은 현대자동차의 포니가 미국 고속도로를 달리게 된 것과 함께 재미교포들에게 자랑스러운 사건으로 기억됐다.
 
화물기를 띄운 뒤 여객기를 보내는 전략은 유럽 노선을 개척할 때도 활용해 조기에 수익화를 달성하는 데 기여했다. 대한항공 노선이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대한민국의 위상도 그만큼 높아졌다. 1970~1980년대 당시에는 태극문양의 심벌이 그려진 대한항공 여객기를 타거나 구경하면서 한국과 처음 인연을 맺은 외국인들도 많았고, 재외교포들 사이에서도 “칼(KAL) 타고 왔수다”라는 유행어가 돌기도 했다. 국적기가 있고 없고의 여부가 국가의 힘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었을 때의 이야기다.
 
대한항공 창립 50주년 기념 CI
 
1976년에는 항공기 제조업에 진출, 전 세계 항공사들 가운데에서 유일하게 항공 서비스와 제조를 함께하는 기업이 됐다. 항공기 제조업은 정석이 “남이 하는 사업은 안한다”는 경영철학을 바탕으로 진행한 것이다. 즉, 미국 보잉과 유럽 에어버스 등으로부터 항공기를 구매하는 대신 항공기 제작에 쓰이는 부품을 제조해 수출하는 사업구조를 처음으로 만든 회사가 대한항공이다. 이를 통해 한국은 선진국들에 버금가는 항공기 및 부품 제조 능력을 갖추었다.
 
한진그룹은 분단국의 지정학적 약점으로 인한 제한된 노선망, 보잘 것 없는 장비, 부족한 기술인력 등 난제가 산적한 부실기업을 넘겨받아 과감한 투자와 외길경영에 대한 집념으로 대한항공을 세계적 규모의 항공사로 키웠다. ‘낚싯대를 열 개 스무 개 걸쳐 놓는다고 고기가 다 물리는 것이 아니다’라는 정석의 지론을 이어받아 한진그룹은 문어발식 사업 확장을 지양하고 대한항공을 중심으로 한 항공사업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채명석 기자 oricms@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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