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반도체 백혈병 공식 사과…11년 갈등 종지부
“사회적 합의 통한 문제 해결”…보상 대상 등 과제도 산적
2018-11-23 17:53:40 2018-11-23 17:53:40
[뉴스토마토 왕해나 기자] 삼성전자 반도체 백혈병 분쟁이 11년 만에 매듭을 짓게 됐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직업병 피해자들에게 공식 사과하고 조건 없는 보상을 약속했다. 삼성전자와 반올림의 이번 결정은 사회적 합의를 통한 문제 해결의 선례로 기록되지만, 향후 보상 과정에서의 과제도 적지 않다.
 
삼성전자와 반올림은 23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중재판정 이행합의 협약식’에서 ‘삼성전자 반도체 등 사업장에서의 백혈병 등 질환 발병과 관련한 문제 해결을 위한 조정위원회’(이하 조정위원회)의 중재판정을 받아들이고 이행에 합의하겠다고 서명했다. 김기남 삼성전자 DS부문장(사장)은 “반도체 및 액정표시장치(LCD) 사업장에서 건강유해인자에 의한 위험에 대해 충분하고 완벽하게 관리하지 못했다”면서 “병으로 고통 받은 직원들과 가족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어 “삼성전자는 더욱 건강하고 안전한 일터로 거듭날 것이며 중재안을 조건 없이 수용해 이행할 것을 약속드린다”고 덧붙였다.
 
이어 단상에 오른 고 황유미씨의 부친 황상기 반올림 대표는 “제 딸 유미에게 했던 약속을 지키게 되어 기쁘다”고 운을 뗐다. 그는 “오늘 삼성전자 대표이사의 사과는 솔직히 직업병 피해 가족들에게 충분하지는 않다”면서도 “오늘의 사과를 삼성전자의 다짐으로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김기남 삼성전자 사장이 삼성전자-반올림 중재 판정 이행 협의 협약식에서 반도체 직업병 피해자들에게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삼성전자와 반올림 간의 반도체 백혈병 분쟁은 2007년 3월 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삼성반도체 기흥 공장 생산라인에서 일하던 유미씨가 사망하면서 불거졌다. 이후 2012년부터 양측 간 교섭이 진행됐지만 반도체 공정과 백혈병의 연관성에 대한 이견으로 번번이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2014년 유미씨 죽음과 부친의 투쟁을 다룬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이 개봉되면서 대중에도 해당 사건이 널리 알려지게 됐다. 지지부진하던 협상은 2014년 조정위원회가 구성되면서 조금씩 진전됐고, 이후 4년이 지난 끝에 양측은 최종 중재안에 합의했다. 
 
조정위원회 중재안에 따라 삼성전자는 1984년 5월17일부터 2028년 10월31일(현재로부터 향후 10년)까지 반도체와 LCD 생산라인에서 1년 이상 일한 삼성전자와 협력업체의 현직자 및 퇴직자 전원을 보상 대상으로 정했다. 보상 범위는 백혈병, 비호지킨림프종, 다발성골수종, 폐암 등 16종의 암과 다별성 경화증 같은 희귀질환 등이다. 보상액은 백혈병이 최대 1억5000만원이며, 비호킨림프종과 뇌종양 1억3500만원 등이다. 
 
보상은 이르면 연내 시작될 예정이다. 보상 업무를 위탁받은 법무법인 지평은 최대한 시일을 앞당겨 12월 초에 사무국을 개설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이달 30일까지 회사 홈페이지에도 사과 내용과 지원 보상 안내문을 게재하고, 보상 결정을 받은 피해자들에게도 사과문을 보내기로 했다. 산업안전보건 발전기금 500억원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 기탁할 방침이다.
 
고 황유미씨의 부친 황상기 반올림 대표가 발언을 하고 있다. 지난 7월 반올림과 삼성전자 측이 '삼성 반도체 백혈병 문제' 해결에 대해 차후 제시될 중재안을 조건 없이 받아들이기로 합의함에 따라 1023일째 지속됐던 농성은 막을 내리게 됐다. 사진/뉴시스
 
무려 11년 넘는 긴 시간 갈등이 이어졌지만 당사자들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한 것은 큰 성과라는 게 주된 평가다. 조정위원장을 맡은 김지형 전 대법관은 이번 중재안 협의를 두고 “화해를 위한 불씨를 키워나갈 때 우리는 치유에 이를 수 있으며, 이번 조정과 중재절차가 바로 그것을 보여준 하나의 전형"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보상 과정에서 여러 변수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어 보상 작업까지 원만하게 마무리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우선 피해자들의 범위와 보상액 산정 문제에 직면한다. 지난 30년여간 삼성전자 반도체와 LCD 생산라인에서 일한 근로자는 수십만명에 이르며 그에 따른 보상액은 추정하기 힘들 정도다. 현재 반올림이 파악하고 있는 피해자들의 규모만 최소 300여명이다. 최대 보상금액 1억5000만원으로 단순 계산하더라도 삼성전자가 부담할 보상액은 최소 450억원에 이른다. 
 
중재안 이행 합의의 당사자는 삼성전자지만 삼성의 다른 계열사로 확산될지 여부도 관심사다. 실제로 황 대표는 이날 “삼성전자뿐 아니라 삼성디스플레이, 삼성전기, 삼성SDI 등의 다른 계열사들도 유해 물질을 사용하고 있고 비슷한 피해자들이 있다”면서 “삼성은 이 모든 직업병 노동자들을 위한 폭넓은 보상을 마련하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왕해나 기자 haena0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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