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백아란·최홍 기자] 정부가 영세 자영업자와 중소기업 등을 위해 ‘일괄담보제도’ 도입과 금융 제도 개선을 요구하면서 금융권에서는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포용적 금융 활성화’라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수익성 하락 등 금융권이 떠안아야 할 리스크도 크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금융권에서는 기술적·제도적 정비가 우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지난 6월 서울 종로 금융위 대회의실에서 카드사 CEO와 카드수수료 산정체계 개편 등 업계 현안 논의를 위한 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신한·우리·KEB하나은행을 비롯한 시중은행과 카드사 등은 지난 22일 금융위원회 현안보고에서 제기된 영세 자영업자 및 서민·중소기업 금융지원 방안과 관련해 대책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부동산 등 물적 담보가 부족한 기업의 자금 조달을 위해 유·무형 자산을 한꺼번에 담보로 설정하는 ‘일괄담보제도’를 도입하고 영세 자영업자 신용카드 수수료율 인하와 부가가치세 매출세액 공제 등을 추진할 것으로 주문했다.
금융권, 정부 요구 따를 수밖에 없지만…"인프라 마련이 먼저"
금융권에서는 영세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을 위한 금융제도 개선에는 공감을 표하면서도 당장 시행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일괄담보제도의 경우 담보인정비율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는데다 담보에 대한 평가나 보관, 처분 등 제반되는 인프라가 없어서다.
이름을 밝히기 거부한 A은행 관계자는 "정부에서 요구하면 당연히 따를 수밖에 없다"면서도 "아직 담보를 설정할 때 정량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방법이 사실상 없고, 담보에 대한 보관이나 처분, 담보권자에 대한 보호책 등도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제대로 정착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현재 내부적으로 관련 내용을 파악하는 단계"라며 "금융위원회에서 구체적인 방향성을 제시한다면 이에 맞게 은행연합회와 공동으로 도입방안을 마련하게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B은행 관계자 또한 "취지에는 공감한다"면서도 "은행 입장에서는 리스크를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진단했다. 담보물에 대한 등기나 감정, 사후 관리가 없는 상태에서 무작정 제도를 도입한다면 이로 인한 리스크가 확대될 수 있다는 평가다.
이 관계자는 또 "기존 담보의 경우 부동산담보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최근 금융당국에서 동산담보대출 활성화를 추진하면서 은행별로 관련 대출을 확대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일괄담보제도가) 제대로만 정착된다면 은행과 기업, 자영업자 모두 좋을 수 있지만 그 만큼 유·무형 자산에 대한 보전방안이나 평가, 관리 등 포괄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담보별 특성을 고려한 인프라가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서정호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부동산이 아닌 다양한 자산을 담보제도로 활용하는 것은 좋은 방향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신용보강 수단이 쉽지 않다"고 꼽았다. 서 연구원은 "지난 2012년부터 동산담보에 대한 논의가 있어왔지만 활성화되지 못했다"며 "담보인정비율을 정교화하고 평가-관리-처분 등 각 담보에 대한 특성을 고려한 기술적, 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당국 움직임 예의주시…"금융정책 효율성·당위성 면밀히 살펴야"
신용카드 수수료 부담 완화 지시 또한 금융권에선 난색을 표하고 있다.
현재 금융권에서는 금융위가 적격비용 재산정을 통해 1조4000억원 규모의 수수료 인하방안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는 해당 규모가 전체 카드사 반년치 당기순익이라며 수익성 악화를 우려하는 상황이다.
A카드사 관계자는 "1조4000억원을 인하한다고 하는데 이는 카드 업계 반년치의 당기순익이 공중으로 사라졌다고 보면된다"며 "가맹점 수수료가 우리의 본업인데 당장 수익성 악화를 겪을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특히 수익성 보전이 가능한 신사업도 마땅치 않아, 비용절감에만 주력하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입장이다.
B카드사 관계자는 "솔직히 신사업은 불가능하다"며 "부대사업으로 수익 보전하면 된다고 하지만 수수료 수익의 10%밖에 안돼 보전하기 어렵다"고 귀뜸했다. 그러면서 "대안이 마땅치 않아 막막하다"며 "해외진출도 많은 투자가 필요한 것이라, 지금 당장은 비용절감에만 주력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카드사 업계에서는 정부의 금융정책의 효율성과 당위성에 의문을 갖기도 했다.
C카드사 관계자는 "거시경제를 발표해해야할 문재인 대통령께서 카드사 수수료를 얘기해 깜짝 놀랐다"며 "최저임금으로부터 발단이 된 소상공인 프레임을 카드수수료로 돌려버린 것이라는 의구심을 지울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D카드사 관계자도 "최저임금 사태로 어려워진 서민경제를 손쉬운 방법인 카드수수료로 무마시키려는 포퓰리즘"이라며 "시장의 가격을 정부가 개입하니 문제가 더욱 커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카드사 종사자도 소상공인처럼 월급쟁이이므로 구조조정을 겪게 된다"며 "우리의 고용안정성을 위해서라도 카드사 의견을 더 수렴해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카드사와 소상공인의 상생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소상공인 입장에서는 수수료 때문에 좌지우지 되는 것이 아니라 최저임금이 훨씬 부담"이라면서 "(카드 수수료 인하를 강행하며) 애궃은 카드사만 나쁜 경제주체처럼 비춰지는 경향도 있다"고 꼬집었다.
윤 교수는 "카드사도 돈을 벌어야 투자를 하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금융서비스를 다 공짜처럼 인식하는 것들이 사회에 팽배해 있다"면서 "소상공인의 매출을 올리는 방안을 고민하는 동시에 카드사 상황도 봐가면서 정책을 진행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백아란·최홍 기자 alive020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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