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논리 그대로 인용…정의 기대했는데 안타깝다"
36억 뇌물인데 집행유예?…법조·시민단체 "거꾸로 가는 판결"
2018-02-05 19:59:35 2018-02-05 19:59:42
[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해 항소심 재판부가 1심 선고 형의 절반으로 감형하면서 집행유예를 선고하자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안봉근 전 청와대 비서관과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까지 법정에 나와 이 부회장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독대를 뒷받침하는 진술을 하는 등 항소심 공판이 대체로 유리하게 돌아갔기 때문이다. 특검팀 안에서는 이 부회장의 형이 가중될 것이라는 예상도 나왔다고 한다. 
 
특검팀은 특히 항소심 판단 중 '사용이익 부분'과 '범죄수익 판단'에 대해 납득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이날 재판부는 삼성 측에서 최순실 측으로 건너간 용역대금 전액 36억 3484만원을 뇌물로 인정했다. 그러면서 마필과 차량들의 소유권은 이전되지 않았다고 봤다. 다만, 마필과 차량을 무상으로 사용한 이익만을 유죄로 판단했다. 이 때문에 뇌물 인정액수가 상당히 줄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 부분과 연결된 범죄수익 부분에 대해서도 “항소심은 마필과 차량들의 구매대금을 뇌물이나 횡령한 재물로 보지 않았으므로, 범죄수익의 발생 원인에 관한 사실 가장에 의한 범죄수익은닉 규제법 위반의 점 중 용역대금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이유무죄로 판단하고, 범죄수익 등의 처분에 관한 사실 가장에 의한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의 점은 모두 무죄를 선고한다”고 판시했다.
 
법조계에서도 법리적으로도 아쉬운 점이 없지 않다는 지적이다. 법무법인 ‘천일’의 노영희 변호사(전 대한변호사협회 수석대변인)는 “영재센터 뇌물 부분이나 범죄수익은닉, 국외재산도피 혐의 등에 대해서는 일부 무죄로 판단해 집행유예를 선고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며 “거꾸로 가는 판결”이라고 주장했다.
 
노 변호사는 특히 “판단 중, 겁박을 당했다는 등의 지적은 삼성의 주장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라며 “이 부회장에게도 억울한 부분이 없지 않겠지만 이런 논리가 그대로 받아들여진다면 앞으로 뇌물죄는 인정되기 어렵지 않을까 싶다”말했다.
 
김한규 전 서울지방변호사회장도 “항소심 판단을 세부적으로 봐야겠지만 , 30억원이 넘는 뇌물공여행위도 집행유예가 가능하다는 선례를 남긴 것은 다른 뇌물사건과 비교해보면 수긍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김 전 회장은 “법원의 판단을 존중해야겠지만 양형부분은 쉽게 수긍하기 힘들다”며 “공무집행의 적정성을 오염시키는 범죄가 뇌물이다. 30억원을 건넨 뇌물사건에서 집행유예를 선고한다면, 1~2억짜리 일반공무원들의 뇌물 사건은양형을 얼마로 판단할 것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번 항소심 판결에 대한 시민들 반응도 싸늘하다. 안진걸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이날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사법정의, 경제정의, 사회정의 실현을 열망하던 우리 국민에게 충격을 넘어 엄청난 고통을 주는 판결”이라고 혹평했다. 안 처장은 “상식과 정의의 눈으로 보면, 이 부회장 등이 우월한 정보력과 자금력으로 박근혜·최순실·정유라의 관계를 파악하고 이득을 위해서 온갖 뇌물을 준 것이 이 사건의 본질”이라며 “결국은 그를 통해 이 부회장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과 경영승계, 또 그 외에 박 전 대통령이라는 최고권력으로부터 때로는 세부적으로, 때로는 포괄적으로 유무형의 이익과 지원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들도 상식적으로 이 부회장이 독보적 지위를 비호 받고 보장받기 위해서 뇌물을 건넨 범죄라고 판단하고 있는데 그것을 어찌 법관들은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그는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블랙리스트 파문으로 법관들을 관리하고 심지어는 재판에도 개입한 흔적들이 있었다”고 지적하면서 “이번에도 재현된 것 아닌지 분노하고 의혹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아울러 “노골적인 판결이요, 최악의 판결이다. 국민들이 가만 있지 않을 것”이라면서 “반드시 대법원에서 바로 잡혀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특검팀은 항소심 재판 이후 즉각적인 반응을 자제하다가 “법원에서 정의가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를 기대했는데 너무 안타깝다”며 짤막한 입장을 표했다. 특검팀은 이어 “법원과 견해가 다른 부분은 상고해 철저히 다투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이 이날 집행유예로 풀려나면서 일각에서는 특검이 무리한 기소를 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틀리다는 반박이 우세하다. 항소심도 이번에 이 부회장에게 36억원의 뇌물을 인정했다. 한 특검팀 관계자는 “36억원의 뇌물공여는 작은 범죄가 아니다. 아무리 요구형 뇌물이라도 1억원 공여로 실형을 2년 씩 받은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특검팀이 이날 즉각 상고 의지를 밝히면서 상고심에 대한 전망도 거론된다. 노 변호사는  “지금으로서는 예상이 어렵지만 1심과 2심 판단이 첨예하게 다르고, 대법원 구성이 지금처럼 바뀐 상황에서는 하급심에서 적용된 법리를 모두 새로 판단하지 않을까 생각된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의 혐의가 박 전 대통령과 최씨와 연결돼 있는 만큼 이에 대한 관심도 비상하다. 항소심은 박 전 대통령과 최씨를 주범으로, 이 부회장을 조력자나 피해자로 보면서 박 전 대통령과 최씨를 공동정범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오는 13일 1심 선고를 앞두고 있는 최씨의 변호를 맡고 있는 이경재 변호사는 이날 항소심 선고에 대해 "최씨가 박 전 대통령과 뇌물공동정범에 해당한다는 판단에 대해서는 수긍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항소심 선고일인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열린 '국정농단 단죄, 사법정의실현, 삼성적폐 청산, 이재용 부회장 엄중처벌 촉구' 기자회견에서 고 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왼쪽 네번째) 씨가 이 부회장의 엄중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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