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성휘기자] 지난 2월 약진했던 안희정 충남지사의 대선후보 지지율이 급정거했다. 안 지사는 소위 ‘대통합’ 메시지를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로 내놓고 지난 한 달 동안 3%대 군소후보에서 ‘문재인 대세론’을 위협하는 20%대 다크호스로 성장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의 선한 의지’ 발언 등의 여파로 지지율 하락세가 뚜렷하다.
진보진영에서는 ‘사쿠라(변절자)’, 보수진영에서는 ‘좌빨 코스프레’로 공격하지만, 안 지사는 “상대방의 선의를 인정하고 대화해야 한다는 것은 오랜 소신”이라며 “개혁과제에 동의하면 자유한국당과도 연정 논의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무엇이 그 누구보다 혁명을 꿈꿨던 ‘강성 운동권’ 안희정을 대화와 타협을 중시하는 ‘현실 정치인’으로 바꿨을까. 안 지사는 지난 7년간의 충남 도정경험을 이유로 든다. 취재팀은 1일 안 지사의 텃밭 충남을 취재해 안 지사가 그렇게 변화할 수밖에 없는 지역의 속살을 들여다봤다.
KTX 천안아산역(온양온천)에 인근의 한 대형 쇼핑몰의 모습. 사진/뉴스토마토
"충청대망론, 말들은 많지만 뭉칠 수 있을까"
충남 지역 취재를 위해 지난 1일 KTX 천안아산역(온양온천)에 내렸다. 서울 수서에서 SRT를 타니 30분도 안돼 도착한다. 역 주위는 대형 주상복합 아파트 건축이 한창으로, 멀티플렉스 극장과 대형 아웃렛 등 서울과 별 다를게 없는 익숙한 풍경이 펼쳐진다.
역 근처 쇼핑몰에서 만난 한 40대 남성은 직장 문제로 3년 전 가족들과 내려왔다. 그는 “서울에서 살 때와 큰 차이가 없다. 충남도민이라는 자각은 별로 없다”면서 “안희정 지사에 대해서는 알고 있지만 도지사라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여러 사람들을 붙잡고 이야기를 들었지만 비슷한 내용이 이어졌다. 허름한 옷차림의 60대 남성이 지나가다 “지역 토박이말 들으려면 남산 중앙시장으로 가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그에게 안 지사에 대한 평가와 ‘충청대망론’ 등을 묻자 “내 생각은 아니고 주변에서 들은 이야기”라면서 “그럭저럭 잘한다는 평가다. 그런데 어차피 이번에는 문재인에게 안 될 것이라 다음을 노려야 한다는 말이 많다”고 했다.
택시를 타고 시장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 택시기사에게 지역민심을 묻자 “지역민들이 전체적으로 보수적이긴 한데 한 길을 가는 정치인들을 좋아한다”면서 “안희정이 일관된 행보를 해 주민들의 평가가 높다”고 말했다. ‘충청대망론’에 대해선 “이야기는 있지만 지역민들이 과연 뭉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김종필, 이회창, 이인제, 반기문 다 안되지 않았나. 일단 당 경선부터 이겨야지”라고 선을 그었다.
충남 천안에 위치한 남산 중앙 시장의 전경. 사진/뉴스토마토
“충청에서 40년 살았지만 난 호남사람”
남산 중앙 시장은 1918년 개설돼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천안 최대의 상설시장이다. 일제 강점기 때부터 철도 등 교통의 요충지로 전국 상인들이 집결했고, 지금도 300여개에 가까운 점포가 영업 중이다.
분식집에서 20대 커플을 만났다. 남성은 문재인을, 여성은 안희정을 지지했다. 안희정을 지지하는 이유를 묻자 “농민들한테 잘한다. 말도 잘하고 생긴 것도 잘생기지 않았나”라고 말했다. 그러나 남자친구는 “너도 논산출신이라 지지하는 것 아니냐”고 핀잔을 줬다. 남자는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과 '박근혜 잔당'을 쓸어버리려면 문재인이 돼야한다”고 주장했다.
시장에는 군데군데 술판이 펼쳐져 있다. 초저녁부터 막걸리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두 명의 60대 남성에게 합류했다. 그들은 문재인에 대해선 "군복무 단축한다고 하고 빨갱이 아니냐. 믿을 수 없다"고 성토했다. 반면 안희정은 “어른들한테 잘하고 예의바르다”며 “3선은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호평했다.
그렇지만 실제 안 지사가 대통령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남성 A가 “문재인이 싫긴한데 지금 여론조사에서 아무도 못 이기지 않나”며 “이번에도 결국 영남사람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남성 B는 “충청사람과 호남사람을 합치면 영남보다 많다. 몰아주면 안희정도 이길수 있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A는 “호남과 영남은 몰라도 충청이 뭉치겠나”라며 “뭉치면 내가 100만원 주겠다”고 호언했다.
A에게 뭉치지 못하는 이유를 물었다. 호남출신인 그는 40년 가까이 지역에서 터전을 잡고 살았지만, 호남향우회에 나간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충청 출신 대통령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는데, 지역은 결국 호남과 영남으로 나뉜다. 요즘은 서울사람들도 많이 와 뭉치기가 더욱 어렵다”고 설명했다.
여전히 속내 드러내지 않는 민심
시장에서 나와 택시를 타고 KTX역으로 향했다. 택시기사에게도 의견을 재차 물었다. 그는 KTX ‘천안아산역’의 역명에 얽힌 일화를 소개했다. 기사는 “천안과 아산이 각자 자기이름을 역명으로 쓰려고 헌법소원과 권한쟁의심판까지 갔다”면서 “지금도 천안택시와 아산택시는 영업권분쟁 등으로 사이가 안 좋다”며 충남내 소지역주의를 언급했다.
그는 “외지사람들은 그냥 충청도라고 하지만 워낙 오고가는 사람들이 많아 진짜 충청 사람은 얼마 안 된다”면서 “그 때문인지 지역마다 거리마다 정치성향이 다르다. 충청 사람들이 평소 자기 생각을 잘 이야기하지 않는 것도 어떤 사람을 만날지 모르니 일단 경계하고 조용히 있는 것”이라는 해석을 내놨다.
앞서 이날 오전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에서 거행된 제98주년 3·1절 기념식에서도 안 지사는 “우리는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누구와도 대화하고 타협해야 한다. 그래야 대한민국의 역사를 한걸음이라도 전진시킬 수 있다”며 본인의 소신을 거듭 밝혔다. 기자가 이날 충남에서 청취한 다양하고도 분산된 목소리는 왜 안 지사가 그런 정치철학을 가질 수밖에 없는지 알게 했다.
안희정 충남지사가 1일 충남 독립기념관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안희정 캠프
이성휘 기자 noirciel@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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