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에 방점을 둔 공간재생. 공간을 공유하면서 자연스레 이뤄지는 소통과 이를 통해 복원되는 사람관계. 결국 건축도 사람이 중심이 될 때 본질적 가치가 발휘될 수 있다는 믿음. 사회적기업 선랩건축사사무소(이하 선랩)의 설립 철학이자, 걸어가고 있는, 또 걸어가야 할 길이다.
일방향의 건축 현실에서 소통이라는 건축의 사회적가치에 주목하던 건축가들이 2013년 6월 뜻을 함께 하며 선랩을 설립했다. 선랩은 지역 내 자원 재순환을 통한 건축서비스를 제공, 노후된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동시에 지역활성화도 추구하고 있다. 예비사회적기업 인증은 2014년 5월에 받았다.
사람과 함께하는 건축, 사회적기업으로 이어져
현승헌 선랩 대표(사진)는 "대학시절 건축공부를 할 때부터 화려한 디자인 같은 겉모습보다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건축물을 함께 만들고 그 가치를 전달하는데 흥미를 느껴왔던 것이 사회적기업 창업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성균관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건축사사무소에서 사회에 첫 발을 내딛은 현 대표는 일을 하는 와중에도 틈틈이 건축 관련 봉사활동을 해왔다. 지난 2006년부터는 서울 관악·동작구 관내 취약계층의 집수리를 돕는 '해뜨는 집' 활동을 펼치고 있다.
현승헌 선랩 대표. 사진/선랩
현 대표는 "보람있는 일이었지만 각자 생업이 있는 상태에서 봉사활동 형태로 진행되다 보니 참가자들의 피로도가 높아졌다"며 "경험한 문제들을 타개하기 위해 연구소를 설립했던 것이 선랩의 초기모델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현 회사이름이 선랩인 이유도 '해뜨는 집' 연구소를 토대로 했기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사회적기업에 뛰어든 것은 2012년 서울시 사회적경제 아이디어대회(위키서울)에 참가한 것이 계기가 됐다. 처음부터 창업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다. 현 대표는 "아이디어만 제출하는 대회인 줄 알고 출품했는데 1차 합격팀에 선정된 후 워크숍 교육을 가서야 창업지원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함께 출품했던 동료와 고민하던 중 해보자는 결론을 내리고 교육에 참여하기로 결심했다. 하루종일 이어지는 교육을 일과 병행할 수는 없었기에 2013년 1월 다니던 회사도 정리했다.
건축에 가치를 심다…교육사업과 봉사활동도 병행
교육 이수 후 준비를 거쳐 2013년 6월 선랩을 설립한 현 대표는 서울 강북구 새터민청소년 주거시설 리모델링, 관악구 신원시장 활성화를 위한 경관디자인 사업, 한국해비타트 아동복지시설 공간환경 개선사업 등의 건축·설계사업을 수행했다. 서울 관악·동작 해뜨는 집과 연계한 취약계층 주거개선 사업도 매달 2~3가구를 대상으로 이어오고 있다.
학생교육과 연계한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2013년과 2014년 진행한 '지역울타리 토요프로그램 교육사업'을 통해서는 폐자재를 이용해 공공시설 내에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벤치, 태양광으로 운영되는 조명 등의 시설물을 설치하는 일을 진행했다. 현 대표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재활용 인식 개선 교육을 실시하고, 이후 마을걷기와 설문조사, 물품 제작실습 순서로 진행했다"며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조사하는 과정 등을 통해 참여도를 높이고자 했다"고 말했다.
현 대표는 지난해 5월부터 본격 시작한 서울 신림동 고시촌·고시원 공간재생플랫폼 사업(쉐어어스·SHARE US)에 가장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기존 고시원의 문제점을 분석해 1인 주거공간의 대안을 제시한 것이 쉐어어스다. 그는 이를 통해 신림동 고시촌의 활성화와 변화를 꾀할 것이라고 믿는다.
서울 신림동에 위치한 쉐어어스 입구. 사진/선랩
그는 "과거 사법·행정고시 등을 준비하던 사람들이 주로 살던 관악구 고시원이 최근 들어 공실이 늘며 지역적인 상황도 변하고 있다"며 "이를 통해 발생할 수 있는 슬럼화와 인구감소로 인한 기반시설 부족 등의 문제를 해결해보고자 시작한 프로젝트"라고 설명했다.
쉐어어스 통해 주거공간 제공과 커뮤니티 형성까지
100평 내외의 면적을 갖춘 건물을 물색하던 중 현재 고시원을 선정, 건물주와 5년 장기임대를 통해 안정적인 사업기반을 확보했다. 현 대표는 "계약 당시 한 층에 30평씩 4층구조로 된 건물에 총 44개의 방이 있었지만 상당수는 비어있었다"며 "임대료를 저렴하게 내주는 대신 개·보수비용을 우리가 부담해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고 말했다.
현 대표는 쉐어어스를 조성하는 과정에서 주거공간은 물론 커뮤니티적인 성격도 담으려고 노력했다. 한 개 층에 스터디룸과 모임공간 등을 마련해 주민 누구나 이용할 수 있게 했다.
쉐어어스 내에 마련된 커뮤니티공간. 사진/선랩
나머지 주거공간도 층에 따라 2·3·6인실로 구분했다. 현 대표는 "프로젝트의 목적 중 하나가, 각각의 공유주거 형식이 사람들의 삶에 어떤 형태로 나타나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라며 "사람들이 모여서 사는 또 다른 방식이 새로운 주거형태로 자리잡으려면 이에 걸맞는 유형을 개발해야 하기 때문에 여러 형태의 방을 만들어 확인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 신림동 쉐어어스의 2,3층 평면도. 각각의 구성을 달리했다. 사진/선랩
물론 공사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철거작업에만 두 달이 소요됐다. 최대한 현 구조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자원도 재활용하려고 해썼지만 폐기물 처리비용만 500만원이 소요됐다. 원래 8월이었던 완공 목표도 한 달여 늦춰야 했다.
공식 오픈일은 지난해 11월28일이었지만 9월부터 입주가 시작됐다. 홍보를 전혀 하지 않았음에도 입소문을 듣고 학생들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이후 지속적으로 입주가 이뤄지고 있다.
입주민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현 대표는 "시행 초기이다 보니 호불호가 있다"며 "원룸문화가 일반화되면서 계단이나 복도에서 서로 마주쳐도 인사하지 않던 사람들로서는 관계 형성에 방점을 둔 쉐어어스의 공간배치가 어색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쉐어어스는 한 달에 한 번 반상회 개념의 입주자모임을 여는 등 입주민 교류를 촉진하고 있다. 식사나 영화관람을 시작으로 향후 지역교육활동 참여 등으로 활동 폭을 넓힐 계획이다.
지난해 11월 진행한 쉐어어스의 숙박체험프로그램 '오쉐어' 참가자들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 사진/선랩
쉐어어스 확장계획…"공간 공유로 사람들의 관계형성에 도움"
1호점의 성과를 바탕으로 쉐어어스를 확장할 계획도 있다. 현 대표는 "신림동 지역 고시원건물 소유주는 대부분 지역주민들로, 빈 방이 많더라도 팔기에는 애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재건축도 쉽지 않다. 사람들을 유입하기 위한 유인이 적은 데다 이미 고층으로 올라간 상황이기에 철거 후 건물을 새로 짓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쉐어어스 방식의 공간재생은 건물주와 입주민, 사업주체 모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게 그의 믿음이다.
우려도 있다. 현 대표는 "건물들이 인기를 끌고 사람들이 몰리면, 다시 임대료가 오르고 원주민이 내몰리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며 "이 부분은 입주과정에서 건물주와 지속적으로 협의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현 대표는 쉐어어스 운영을 통한 커뮤니티 조성을 통해 현대인들의 외로움, 고립과 같은 사회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는 "공간을 공유한다는 것은 같이 있는 사람들과 함께 경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건축을 통해 사람들의 인식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을 현실화시키기 위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최한영 기자 visionch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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