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업계가 판매 증가세 둔화, 차급 세분화 등 신흥시장의 경쟁 환경이 급변하면서 대응책 마련에 분주하다. 업체들은 제품 경쟁력 강화를 위해 신속한 라인업 확대, 상품성 강화를 기조로 전략을 변경하고 있다.
최근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는 ‘주요 업체의 신흥시장 제품 전략 변화’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급변하고 있는 신흥시장에서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의 대응책을 소개했다. 신흥시장은 국내 완성차 업체들에게도 핵심 판매 지역이기에 타 브랜드들의 전략 변화를 살펴보며 대응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보고서는 지적한다.
자료/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의 격전지인 중국과 브라질, 러시아는 최근 몇 년간 자동차 시장 성장이 둔화되고 있다. 중국은 지난 1월 7.8%의 판매 증가율을 기록한 이후 2~5월에 성장세가 급격히 둔화됐다. 6월 0.3%의 판매 감소를 기록한 중국은 8월까지 3개월 연속 자동차 판매가 줄었다. 브라질은 2012년부터 감소 추세가 지속되고 있고, 러시아도 2013년부터 판매가 줄기 시작해 올 1~10월 판매는 전년 동기 대비 33.6% 감소했다.
이와 함께 전 지역에서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시장이 성장하고, 지역별로 다양한 차급이 주요 판매 차종으로 부상하면서 차급 세분화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이에 따라 차급 세분화에 대한 업체들의 신속하고 효율적인 대응 능력이 중요해졌다.
또 과거와 달리 글로벌 업체와 현지업체간 경쟁 영역이 확대되면서 가격 중시와 상품성 중시로 양분됐던 시장이 가격과 상품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방향으로 전환되고 있다. 글로벌 업체는 저가차 출시 확대, 현지업체는 품질 향상을 이루면서 경쟁 영역이 중첩됐다. 특히 현지업체들의 공격적인 연구개발(R&D) 투자로 과거 글로벌 업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세였던 디자인과 품질, 연비 등의 상품성이 개선되며 품질 격차가 줄어들고 있다.
자료/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
현지업체들의 성장 속도가 빨라지면서 결국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의 제품 전략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주요 업체들은 미진출 차급 공략을 강화하며 판매 증대를 추구하고 있다. 라인업 확대를 통해 현지업체들과 다양한 영역에서 경쟁하겠다는 의도다.
지난해 중국에서는 둥펑PSA가 ‘푸조 2008’, ‘C3-XR’을 투입하면서 소형 SUV 시장에 진출했다. GM과 닛산은 자주 브랜드를 활용해 저가 SUV 시장 공략을 본격화했다. 인도에서는 포드가 지난 8월 세단 ‘피고 어스파이어’를 출시했고, 9월에는 해치백 모델 ‘피고’를 투입했다. 폭스바겐은 폴로와 플랫폼을 공유한 신차를 내년에 투입해 신흥 시장 공략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이 같은 라인업 확대는 기존 출시 모델 기반의 파생모델 투입을 늘리는 방식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이상우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 주임연구원은 “업체들은 개발 기간과 비용 단축, 판매 확대를 동시에 달성하고자 동일 플랫폼 기반의 세단과 해치백, SUV 등 다수의 파생모델을 개발하는 방식을 활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폭스바겐을 시작으로 업계 전반에 확산되고 있는 ‘공용화 전략’도 선진시장뿐 아니라 중국과 브라질 등 신흥시장에도 적용되면서 각 사의 모델 운영 방식도 바뀌고 있다.
플랫폼과 부품을 동일 차급 및 다른 차급 간에 공용화하는 폭스바겐식 ‘어셈블리 키트’ 방법이 르노-닛산, 토요타, 포드, GM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업체들은 신흥시장에서 수익성을 확보하기 위해 과거에는 감가상각이 이미 진행된 플랫폼을 활용해 모델을 개발하거나 구형 모델을 투입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공용화를 확대해 규모의 경제를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업체들은 신흥시장에 현지전략차를 중심으로 모델교체주기도 단축하려 한다. 폭스바겐은 중국 현지전략차 ‘사지타’의 교체주기를 5년 11개월에서 4년 9개월로 줄일 예정이다. 브라질 전략차 ‘골’은 14년에 달했던 교체주기가 현 6세대부터 6년 5개월로 대폭 딘축됐다. 토요타는 중국 전략차 ‘비오스’의 교체주기를 5년 6개월에서 5년, 스즈끼는 인도 전략차 ‘왜건R'의 교체주기를 10년 2개월에서 6년 9개월로 줄일 계획이다.
모델교체주기가 단축될 수 있었던 요인은 선진시장과 신흥시장에 동일한 플랫폼을 적용하면서 가능해졌다. 일부 모델은 신흥시장에서 먼저 출시되는 경우도 발생했다. 토요타의 ‘8세대 코롤라’는 중국보다 2년 7개월 앞서 미국시장에 출시됐지만, 10세대와 12세대는 미국보다 각각 7개월, 1년 앞서 중국시장에 투입됐다.
자료/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
신흥시장의 경제수준 향상으로 현지 소비자들의 차에 대한 기대수준이 높아지는 것도 업체들의 전략에 영향을 주고 있다. 게다가 각국 정부의 각종 자동차 관련 규제가 강화되는 추세여서 업체들은 신기술 도입 확대 및 사양 고급화 노력을 통해 선진시장과 유사한 수준의 상품성 강화를 진행 중이다.
중국과 인도, 브라질 등 주요 신흥국들은 페널티와 인센티브를 수반한 연비 및 배기가스 규제를 대폭 강화하고 있다.
중국은 연비 규제를 매년 2~4%씩 강화해 내년부터는 규제 미충족 업체에 제품 등록과 신규 투자를 불허할 방침이다. 인도는 유럽의 ‘유로’에 대응하는 ‘BS’ 배기가스 기준을 점차 강화해 2023년에는 BS6를 인도 전 지역에 적용할 방침이다. 브라질은 2013년부터 ‘자동차산업혁신법’을 통해 필수 연비 기준을 설정해 초과 달성 시 1~2% 세금을 감면해 주고 있다.
규제 충족을 위해 글로벌 업체들은 선진시장에 우선 적용했던 엔진 다운사이징이나 변속기 관련 신기술을 신흥시장에도 동시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토요타는 중국에 출시한 2015년형 ‘하이랜더’에 2.0리터 터보 엔진을 장착해 연비를 기존 8.8km/L에서 11.5km/L로 개선했다. 포드도 브라질에 출시한 퓨전에 2.0리터 티타늄 에코부스트 엔진을 탑재해 동급 경쟁 모델 대비 고연비인 7.8km/L를 달성하고 주행성능도 대폭 개선했다.
이외에도 안전 및 편의성에 대한 신흥시장 소비자의 요구가 늘어나 업체들은 첨단 안전사양 강화와 함께 IT를 활용한 차량 내 편의사양을 대폭 확충하는 추세다.
이처럼 글로벌 업체들의 대응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국내 업체들도 이에 발맞춰 빠르게 시장 상황을 분석해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상우 주임연구원은 “신흥시장의 환경 및 주요 업체 제품 전략 변화가 급격하게 일어나고 있어 국내 업체의 현지에서의 위치가 위협받고 있다”며 “과거 적극적 신차 투입과 빠른 교체 주기를 통해 확보했던 국내업체의 제품 경쟁력 우위가 최근 들어 약화되고 있어 성장 차급에 대한 신속한 라인업 확대와 상품성 강화 등의 대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중국과 인도, 브라질 등 신흥국들이 점차 자동차 관련 규제를 강화하며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은 신기술을 대거 적용하는 등 발빠르게 대응에 나서고 있다. 사진/ 신화 뉴시스
강진웅 기자 multimovie7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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