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세계는 총성 없는 전쟁을 펼치고 있다. 군사무기로 직접적인 충돌을 하는 경우는 급격히 줄어들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국가간 대결이 결코 사라지지는 않았다.
미국이 초강대국의 지위를 누리는 이면에는 군사적인 힘도 크겠지만 정보 전쟁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미국 정보력의 중심에 중앙정보국 즉 CIA가 있다. 미국의 국가적 이익을 위해 정보의 최전선에 서있는 조직이다. 어떤 조직인지, 예산은 얼마인지, 모든 활동이 철저하게 베일에 가려있다. 전세계에 걸쳐 방대한 첩보 활동을 하고 있는 조직이라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국내정치와 국제정치에서 미치고 있는지조차 가늠하기 힘들다.
1947년 지금의 이름으로 만들어진 이후 많은 정치적 부침이 있기도 했다. 1961년 쿠바의 카스트로 제거 작전은 수많은 희생자만 양산한 체 실패로 끝나기도 했다. 2014년 기준으로 44조원(추정치)에 달한다고 하는 방대한 예산의 실체에 대해서도 의문이 많다. 미국 상원정보위원회의 보고서를 보면 조지 부시 대통령 재임시에는 국외 비밀 수감시설에서 고문을 자행했다는 보고가 있을 정도라고 한다. 이러한 활동은 미국 국익에 별로 도움 되지 않았다는 상원 정보위원회의 지적까지 뒤따랐다. 위기는 내부에서 찾아왔다. CIA의 컴퓨터 기술자였던 에드워드 스노든은 2013년 유력 매체인 가디언지를 통해 미국내 통화감찰 기록과 프리즘 감시프로그램(국가보안감시체계) 등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다양한 기밀문서를 폭로했다.
스노든의 행동에 대해서는 찬반이 엇갈린다. 일반 국민들 사이에는 민감한 사안의 폭로를 통해 알권리를 충족시켰다는 평가가 있는 반면 보안과 국익을 최우선해야 하는 요원으로서 용납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는 비판이 함께 한다.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CIA라는 조직의 필요성에는 미국 정치권에서나 납세자인 미국 국민들 사이에 큰 이견이 없다. 어떻게 보면 CIA나 한국의 정보기관인 국정원(NIS)이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미국에는 있지만 한국에는 없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해답은 국민의 대표기관인 의회에 있다.
국가정보기관은 국가 이익 수호에 반드시 필요한 조직이다. 동시에 국가 이익과 관련되지 않은 개인의 자유와 비밀 보호 그리고 인권이라는 마지노선을 넘지는 말아야 한다. CIA를 독립적으로 서 있도록 만드는데 미국 의회와 주권자인 국민들이 있다. 설립정신에 맞게끔 미국 의회와 국민들은 끊임없이 CIA를 견제해왔다.
상원 정보위원회는 미국 국민들의 편에서 철저하게 감시 감독하고 있다. 더불어 국민들은 개인의 인권이 유린되지 않도록 시민단체 차원에서 모니터링한다. 가장 중요한 역할은 누구보다 전문성이 있고 제도적 견제 능력이 있는 상원 정보위원회이다. 초당적으로 국민들의 입장에서 국익에 부합하는지 무고한 시민들의 인권이나 개인 정보가 도용되지 않았는지 따져본다. 메르스 사태가 휩쓸고 간 빈자리를 국정원 해킹 의혹 논란이 뒤덮고 있다. 급기야 국정원 소속 직원의 죽음으로까지 이어졌다.
여론조사전문기관인 리얼미터가 지난 15일 실시한 조사(전국500명 유무선RDD자동응답조사 표본오차95%신뢰수준±4.4%P)에서 ‘국정원의 해킹 의혹과 관련한 국정원의 해명을 믿는지 여부’에 대해 물어본 결과, 10명 중 6명에 가까운 응답자(58.2%)는 불신한다고 했다. 새누리당 지지층과 새정치민주연합 지지층의 입장은 양 갈래로 나누어졌다. 사건의 진위 여부와는 상관없이 의혹만으로 여론은 부정적으로 흐르게 마련이다.
국정원은 그동안 선거를 포함한 국내 정치 문제, 권력의 외풍에 많이 시달렸고 그때마다 국민들의 의혹을 받거나 오해를 받기 십상이었다. 중앙정보부, 안전기획부, 그리고 국정원으로 이름을 바꾸었지만 과거 독재 정권 시절 빚어졌던 인권탄압 이미지를 숙명처럼 완전히 벗어나기 힘든 탓도 있다. 국정원의 요원들 개개인의 우수성과 투철한 사명감, 국가관은 재차 확인할 필요조차 없다. 돌아보면 국정원의 역사적 변화와는 별도로 독립적인 지위를 지켜주지 못하고 권력의 안녕과 이익을 위해 독립성을 훼손한 정치권력의 책임이 더 크다.
정보기관의 위상과 본령을 지켜주기보다는 각 진영의 정치적 이익차원에서 자기 세력으로 오도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특히 선거와 관련된 논란으로 연결되는 경우 국정원의 신뢰는 더욱 땅으로 추락하는 사례가 많았다. 특정 권력에 부화뇌동(附和雷同)되지 않는 국정원의 모습을 국민들에게 남기기 위해서는 특정 세력을 초월한 의회의 감시와 견제 역할이 절실히 요구된다. 당연히 국민의 이익이 최우선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CIA에는 있고 국정원에는 없는 것이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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