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보라기자] 제습기 시장이 얼어붙었다. 당장 재고 처리에만도 벅찬 실정이다. 동시에 향후 시장 전망을 놓고 낙관론과 비관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제습기 업계는 당초 전년 대비 두 배 이상 시장 규모가 커질 것으로 예상하고 물량 확보에 집중했지만 과열화된 경쟁과 마른 장마 등의 악재가 겹치면서 되레 재고 부담만 커졌다.
시장조사기관 GFK에 따르면 지난 2009년 112억원에 머물던 제습기 시장은 2012년 들어 1529억원 규모로 급성장하며 본격 개화기를 알렸다. 2013년에는 3500억원 규모로 팽창했다. 제습기가 에어컨과 함께 여름철 필수가전으로 자리하면서 올 한 해 시장 규모는 지난해보다 두 배 가량 커진 7000억원에서 많게는 1조원 규모로까지 성장할 것으로 관측됐다.
하지만 올해는 날씨가 도와주지 않았다. 업계에서는 제습기의 올해 연간 판매량이 지난해와 비슷하거나 이를 살짝 밑도는 100만대~130만대 정도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예상을 크게 벗어났다"면서 "판매가 지난해 수준으로 머문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지난해 최장기간 장마로 다습했던 것과 달리 올 6월과 7월에는 제대로 된 장마 한 번 찾아오질 않았다. 마른 장마에 그치면서 제습기의 수요 여건인 덥고 습한 날씨가 조성되지 않았다. 더위마저 8월 중순부터 꺾이면서 제습기 시즌은 사실상 종료됐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한 가전업체의 제습기 생산라인(사진= 뉴스토마토 DB)
업계에서는 갖가지 행사를 동원해 재고 처리에 나섰다. 삼성전자와 LG전자 같은 대형 가전업체는 자체 유통망인 디지털프라자와 베스트샵을 통해 다른 가전과 끼워팔기 등의 방식으로 재고 소진에 나섰다. 질세라 중소업체들은 자체적으로 가격 할인행사를 진행 중이다.
위니아만도는 총 1000대에 달하는 제습기를 30% 할인 판매하고 있고, 캐리어에어컨은 인버터 하이브리드 보일러 구매 고객 300명에게 선착순으로 제습기를 증정한다. 삼성전자는 에어컨을 구매하는 고객에게 제습기를, LG전자 역시 에어컨과 제습기를 함께 구매시 가격을 할인해 주는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따로 할인행사를 진행하지 않고 있는 한 제조사 관계자는 "5월~6월에 정가로 판매하던 제품을 지금 할인행사나 증정 등을 통해 판매하고 있는데 미리 구입했던 고객들은 배신감을 느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는 한국소비자연맹이 발표한 제습기 관련 소비자 불만 조사에서도 지적된 내용이다.
당장 울며 겨자먹기로 재고 처리에 나섰지만 내년 시장 사정 역시 걱정이다. 또 다른 제조사 관계자는 "할인 판매로 제 값을 받지 못하게 되면 디자인 등 신규 개발비용이 줄어들 수 있어 걱정"이라고 전했다. 이는 결국 마케팅의 싸움만 가열시킬 뿐, 정작 기술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게 하는 요소다.
더 큰 문제는 7월부터 이어지고 있는 각종 이벤트로 제습기에 대한 소비자 인식이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제습기는 덤(공짜)으로 받는 것', '할인행사 제품'이라는 고착화될 경우 제습기 시장 전체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
물론 낙관론도 있다. 올해 간신히 지난해 수준은 유지했으니, 내년에는 이보다 나으리라는 전망이다. 지난해 제습기 시장이 폭발적인 성장을 거두면서 기대가 큰 탓에 실망도 커졌지만 팔릴 만큼은 팔렸다는 반응이다.
지난해 위닉스의 선전을 관찰하면서 올해 30~40개 업체가 난립했다. 자체생산에 나선 업체도 적지 않았다. 올해 판매가 부진했던 신규 업체들 중심으로 서서히 비중을 축소하거나, 발을 빼면서 자연스레 시장이 정리될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한 관계자는 "이번 시즌에 오히려 업체들이 싹 정리되면서 내년에는 '진짜'들의 싸움을 벌일 수 있지 않겠냐"면서 "가전제품이 2년마다 주기를 타는데 올해 저조했으니 내년에는 다시 잘 팔리는 시즌이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감을 전했다.
문제는 이 같은 낙관론의 근거가 비관론보다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데 있다. 때문에 제습기 시장 역시 위닉스를 중심으로 한 중견·중소기업들이 비록 열어 젖혔지만 과실은 결국 삼성과 LG로 양분화될 것으로 보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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