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황인표기자] “한번 장사 때마다 쉰 명 정도의 순장자들이 죽은 왕을 따라서 구덩이 속으로 들어갔는데, 그 쉰 명 안에는 신하와 백성들의 여러 종자와 구실들이 조화롭게 섞여 있었다....순장자들은 왕보다 먼저 각자의 구덩이 속에 누워 왕의 하관을 맞았다.....돌뚜껑이 덮이는 순간, 뚜껑을 밀치고 구덩이 밖으로 뛰쳐나오려는 자들도 더러는 있었다....세월이 지나도 사람들은 그 참람한 일을 일절 입에 담지 않았다”
- 김훈 ‘현의 노래’ 중
정권 말까지 청와대에 남는 인사들은 순장조(殉葬組)로 불린다. ‘레임덕’을 넘어 바람이 완전히 빠진 풍선 같은 대통령의 권력에 기대 이들은 마지막을 함께 한다. 정권 재창출의 희망이라도 보이면 다음을 도모하겠지만 권력 교체가 확실시 되면 이마저 어렵다. 순장조가 되어 못다한 정책을 다 하거나 ‘출마조’가 되어 다른 권력이 되는 게 이들의 선택이다.
순장은 싫고 출마는 어려운 인사들도 있다. 이들은 시대를 뛰어넘어 ‘낙하산’을 탄다. 착지지점은 사람들 눈에 잘 안 띄고 업무 부담도 없고 임기도 보장되는 기업의 이사, 감사 자리다.
최근 금융권에 연이어 낙하산 인사들이 내려오고 있다. 예금보험공사 감사에 이상목 전 청와대 국민권익비서관이 왔는데 이 감사는 6월에 기업은행 감사를 노리다가 여론 비판에 퇴짜를 맞은 적이 있다. 보기드문 '재수(再修)인사'인 셈인데, 한번에 안되니 대상을 바꿔 또다시 낙하산을 펼치는 집념이 놀랍다. 그의 감사 선임은 언론에도 알리지 않고 조용히 이뤄졌다.
박흥신 주택금융공사 신임 감사는 언론사 간부 출신으로 지난 대선에서 한나라당 대선후보 공보팀 팀장이 된 후 청와대 정책홍보비서관까지 지냈다.
청와대 출신 두 인사 모두 ‘순장’과 ‘출마’를 피해 감사 자리를 받았다.
정치권 인사도 줄줄이 내려온다. 지난 5월에는 이해돈 전 서대문구청 구청장 권한대형이 주택금융공사 이사로 선임됐다. 이 이사는 지난 지자체 선거에서 한나라당 서대문구청장 후보로 나섰다가 민주당 후보에게 패한 인사다. IBK신용정보에는 지난 8월 신임 부사장으로 류명열 씨가 선임됐는데 한나라당 비례대표 출신이다.
이명박 정권은 정권출범 초기부터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출신)'인사로 시끄러웠다 특히 금융권에서는 4대 금융지주 수장 자리를 대통령과 친분있는 인사가 싹쓸이할 정도로 문제가 많았다. 이들을 가리켜 금융권 '4대 천왕'이라는 비아냥이 다른 금융지주 회장의 입에서 나올 만큼 심각했다.
요즘 요동치는 정치권 새 판짜기로 순장 당하기 싫은 인사들의 낙하산 인사는 더할 것이다. 보궐 선거에 이어 내년 4월 총선, 연말 대선까지 반기마다 중요선거가 연이어 있다. 대통령의 레임덕은 더 심해질 것이고 이에 발맞춰 순장과 출마를 피해 만만한 자리를 꿰차고 싶은 욕심도 더 강해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낙하산 인사'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들의 경력이 금융과는 사실상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인물들이 금융회사나 기관에 내려오는 것은 이 정부가 강조하는 '시장경제 논리'와도 맞지 않고 심지어 경영을 망치거나 회사수익을 축낼 수 있다. 2~3년씩 보장되는 임기 동안 이들에게 지급되는 억대 연봉은 고객의 주머니를 털어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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