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성 스프레이는 무죄, 스티커는 유죄…시위 처벌 가른 기준은
원상회복 가능성과 본래 기능 훼손이 유·무죄 갈라
2026-10-19 16:46:58 ㅣ 2026-10-19 17:02:57
[뉴스토마토 신다인 기자] 기후운동 활동가들이 기업 조형물에 수성 스프레이를 뿌린 사건은 대법원에서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됐지만, 장애인단체 활동가들이 지하철 역사 벽면과 바닥에 스티커 수백 장을 붙인 사건은 유죄가 확정됐습니다.
 
최근 대법원은 공적 관심사에 대한 표현의 자유를 강조하면서, 시위의 구체적인 방식과 영향을 따져 형사처벌 여부를 판단하고 있습니다. 물건의 본래 기능을 해쳤는지, 원상회복에 얼마나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드는지, 업무를 방해할 위험이 있었는지 등이 판단의 기준입니다. 형법상 재물손괴죄 성립의 핵심은 단순한 외관의 일시적 변화가 아니라 ‘물건 본래의 용법에 따른 효용을 해쳤는가’입니다. 
 
청년기후긴급행동 활동가들이 2021년 2월18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두산에너빌리티 사옥 앞에서 사명이 적힌 조형물에 녹색 스프레이를 칠하고 현수막을 펼치고 있다. (사진=청년기후긴급행동)
 
대법원은 두산에너빌리티 본사 조형물에 녹색 수성 스프레이를 분사한 청년기후긴급행동 활동가들의 재물손괴 혐의에 대해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2024년 5월 깨고 사건을 수원지법으로 돌려보냈습니다. 활동가들이 베트남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에 항의하며 스프레이를 뿌린 뒤, 미리 준비한 물과 스펀지로 씻어 잔존물이 제한적이었던 점이 근거로 작용했습니다.
 
대법원은 “(분사 행위로 인해) 기업의 광고라는 본래의 사용 목적대로 사용할 수 없을 정도에 이르렀다고 보기 부족하다”고 판시했습니다. 이어 “기후위기를 알리는 표현의 수단으로 이 사건 조형물에 수성 스프레이를 분사한 직후 바로 세척하는 행위를 했다”며 “여기에 형법상 재물손괴죄를 쉽게 인정한다면 표현의 자유를 억누르게 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반면 지하철 역사에 스티커를 붙인 행위에는 정반대의 결론이 내려졌습니다. 대법원은 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 승강장에 장애인 권리 보장을 요구하는 스티커를 붙이고 락카 스프레이를 분사한 혐의(공동재물손괴 등)로 기소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들에게 벌금을 선고한 원심을 지난 5월20일 확정했습니다. 
 
1심은 승강장 이용 자체가 불가능해진 것은 아니라며 무죄로 봤지만, 2심과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2심은 도시철도 직원 30여명이 이틀간 제거 작업을 벌였고, 이 과정에서 승객들이 우회해야 하는 등 통행 방해가 발생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피고 측은 표현의 자유를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2심 재판부는 “수백 장의 스티커를 벽면과 바닥에 빼곡히 부착했어야만 할 긴급성이나 불가피성, 상당성이나 보충성이 인정된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대법원은 이러한 원심 판단에 법리 오해가 없다고 봤습니다. 
 
업무방해죄 판결에서도 대법원은 공적 관심사에 대한 표현행위를 형사처벌하는 것에 대해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핵심 기준은 타인의 자유의사를 제압할 정도의 ‘위력’이 실질적으로 행사되었는지 여부입니다. 
 
대법원은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무기 박람회에서 반전 연주와 구호 제창 등을 해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된 평화활동가 8명의 유죄 판결을 지난해 4월 파기했습니다. 대법원은 1350개 부스 중 단 1곳에서 이뤄진 점, 확성기나 앰프를 사용하지 않고 5분 만에 자진 종료한 점 등을 종합해 판단했습니다.  
 
무기 박람회 사건을 대리한 임재성 법무법인 해마루 변호사는 “대법원이 과거 좁게 보던 표현의 자유를 상식적인 수준으로 보장하고 있다”며 “시위 시간과 인원, 원상회복 가능성, 업무에 미친 영향 등을 따져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신다인 기자 shin12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0/300

뉴스리듬

    이 시간 주요 뉴스

      함께 볼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