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을 사실상 지배해온 김범석 쿠팡Inc 의장이 공정거래법상 규제를 받는 법적 지위인 동일인(총수)으로 지정되면서, 쿠팡 중심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는 첫 단추가 끼워졌다.
쿠팡이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된 지 5년 만의 일이다. 2021년 쿠팡이 대기업집단으로 처음 지정된 이후 그동안 동일인은 자연인이 아닌 국내 법인인 쿠팡 주식회사였다. 다른 대기업집단과 달리 자연인이 아닌 법인이 동일인으로 지정되는 예외를 인정받은 것이다. 이는 쿠팡이 해외 지배구조와 특수한 경영 형태 등을 이유로 예외 요건에 해당한다는 당국의 판단에 따른 결과였다.
당시 공정위는 쿠팡의 지분 구조가 비교적 단순하고, 김 의장의 친족이 국내 계열사 경영에 직접 참여하지 않고 있다는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동일인을 자연인으로 지정하지 않더라도 계열사 범위를 판단하는 데 큰 문제가 없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이후 상황은 달라졌다. 최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한 국회 청문회 과정에서 김 의장의 동생인 김유석 씨가 쿠팡에서 부사장급 보수를 받으며 실제 경영과 사업 운영에 영향력을 행사해 온 사실이 드러났다. 그동안 쿠팡이 받아온 총수 없는 대기업 특혜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결국 이번 동일인 지정은 단순한 형식 변경을 넘어, 쿠팡 역시 국내 대기업집단과 동일한 책임과 규제를 적용받아야 한다는 원칙을 확인한 조치라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한 고비를 넘은 수준일 뿐이다. 이커머스 업계 절대 강자인 쿠팡이 그 동안 누려온 특혜 중 하나가 사라졌을 뿐이다. 운동장은 아직도 기울어져 있다.
본질적인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현재 유통산업발전법 체계 자체가 오프라인 유통업체에는 강한 규제를 적용하면서도 쿠팡 등 대형 이커머스 플랫폼에는 상대적으로 느슨한 기준을 적용하는 구조로 설계돼 있다. 시장 현실과 규제의 괴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과거 유통산업발전법은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의 골목상권 침해를 막기 위한 것이었다. 의무휴업, 영업시간 제한, 출점 규제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소비 패턴이 온라인 중심으로 이동한 지금도 규제의 칼날은 여전히 오프라인에 집중돼 있다. 반면 쿠팡은 24시간 새벽배송과 전국 단위 물류망을 기반으로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지만 동일한 규제 틀에서는 비켜나 있다.
결국 오프라인만 규제받고 온라인은 사실상 무제한 확장하는 기형적 시장 구조가 고착화됐다.
이는 단순히 업계 간 형평성에만 있지 않다. 쿠팡 중심으로 재편되는 유통 생태계는 납품업체와 입점 판매자, 물류 노동자까지 구조적으로 종속시키고 있다. 플랫폼은 가격과 물류, 배송을 모두 통제하는 구조에서는 거래상 우월적 지위에 있다. 최근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 사태와 물류, 배송 노동 문제 역시 플랫폼 독점 구조의 폐해를 보여주는 사례다.
그럼에도 현행 유통산업발전법은 여전히 마트 시대 규제에 머물러 있다. 산업 구조는 플랫폼 중심으로 바뀌었는데 법은 10여년 전 오프라인 유통 환경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유통산업발전법 개정 논의는 단순히 쿠팡을 규제하자는 차원이 아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간 규제 형평성을 맞추고, 플랫폼 독점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며, 공정한 유통 생태계 속에서 지속가능한 시장을 확보하자는 문제다.
이제 겨우 김범석 의장의 동일인 지정으로 쿠팡은 한국 재계 질서 안으로 들어왔을 뿐이다. 그렇다면 다음 단계는 쿠팡만 유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기 위한 제도 정비다.
이혜현 기자 hyu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