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침묵을 견디는 리더
읽는 사람이 이끄는 사람이 된다
2026-01-26 16:35:04 2026-01-26 17:03:29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은 이런 말을 남겼다. "Not all readers are leaders, but all leaders are readers." 모든 독자가 리더인 것은 아니지만, 모든 리더는 독자라는 뜻이다. 대학을 나오지 않아 정치 엘리트들에게 무학으로 여겨졌던 트루먼은 오히려 평생 탐독가로 살았다. 그에게 독서는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 세상을 보는 눈을 얻는 일이었다.
 
트루먼의 말을 줄이면 "Leaders are Readers", 순서를 바꾸면 "Reading is Leading"이 된다. 그러나 나는 이 말에 또 다른 층위가 있다고 생각한다.
 
Reading에는 '읽다' 외에 '읽어내다'라는 의미도 있다. "I can read your mind"라고 할 때의 read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마음을 읽어내는 것. 그것이 리더에게 요구되는 또 하나의 reading이다.
 
책을 잘 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몰두하는 것이다. 나를 내려놓고 텍스트에 빠져들 때 비로소 책이 전하는 메시지가 들려온다.
 
사람을 잘 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같은 원리다. 잘 듣는 것이다. 내 말을 멈추고 상대의 말에 온전히 귀 기울이는 것이다. 판단을 유보하고 상대의 입장에서 듣는 것이다. 책을 읽을 때 저자에게 몰두하듯, 사람을 읽을 때는 상대에게 온전히 몰입해야 한다.
 
그렇다면 잘 듣는다는 것, 경청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옛말에 "듣기를 좋아하면 덕이 쌓이고, 말하기를 좋아하면 허물이 쌓인다"고 했다. 그러나 경청이 단순히 입을 다무는 것은 아니다. 조용히 앉아서 상대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것도 아니다.
 
나는 90명의 동료들과 일대일 면담을 하면서 경청의 본질을 배웠다. 어떤 질문을 던지면 대답 대신 긴 침묵이 찾아올 때가 있었다. 15초, 30초, 때로는 1분 이상. 그 시간은 무겁고 불편했다. 무언가 말을 해서 침묵을 깨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혹시 질문이 어려우셨나요?"라고 묻고 싶었고, "제가 다시 설명해드릴까요?"라고 끼어들고 싶었다.
 
리더는 본능적으로 조급하다. 문제를 정의하고, 방향을 제시하고, 답을 주는 데 익숙하다. 침묵 앞에서 가만히 있는 것은 무능해 보일까봐 두렵기까지 하다. 침묵이 답의 전부는 아니다. 그러나 듣지 않고 던진 말은 울림이 없다. 경청은 말하기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말의 무게를 더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기다렸다. 그 기다림 끝에 터져 나온 말은 진실에 가까웠다. 평소라면 꺼내지 않았을 속마음, 오랫동안 품어왔던 상처, 차마 말하지 못했던 바람들이 쏟아졌다. 그때 깨달았다. 진정한 경청이란 말을 이끌어내는 기술이 아니라, 침묵을 견디며 기다리는 용기라는 것을. 상대가 스스로 말문을 열 때까지 내 조급함을 내려놓는 용기임을. 90명의 면담이 끝났을 때, 복도에서 먼저 인사하는 직원들이 늘었다. 침묵을 견딘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고 느꼈다.
 
경청에는 또 하나의 차원이 있다. 말의 이면을 읽는 것이다. 면담 중 한 동료는 조직의 문제점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날카로운 비판, 냉소적인 어투. 듣는 내내 불편했다. 그런데 한 시간이 넘는 대화 끝에 그가 조용히 덧붙인 말이 있었다. "저도 이 조직이 좋아요. 그래서 바꾸고 싶어요." 그 한마디가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만약 내가 그의 불만에만 귀를 기울였다면, 그 안에 숨은 애정을 영영 놓쳤을 것이다.
 
"이 조직은 안 바뀌어요"라는 냉소 속에는 "그래도 바뀌었으면 좋겠어요"라는 희망이 숨어 있다. "말해봤자 소용없어요"라는 체념 속에는 "제 말 좀 들어주세요"라는 갈망이 숨어 있다. 경청은 들리는 것을 듣는 행위가 아니라, 들리지 않는 것까지 듣는 행위다. 언어라는 껍데기를 넘어 진심이라는 알맹이를 만나는 과정이다.
 
책을 읽을 때 우리는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려 한다. 행간을 읽고, 맥락을 짚고, 숨겨진 메시지를 찾는다. 사람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다. 말의 행간을 읽고, 상황의 맥락을 짚고, 표현되지 않은 메시지를 찾아야 한다. 결국 두 가지 reading은 같은 곳에서 만난다. 나를 내려놓는 것. 책 앞에서 겸손해지듯 사람 앞에서도 겸손해지는 것. 내가 아는 것을 말하기보다 상대가 아는 것을 듣는 것. 나를 비우고 상대를 채우는 것이다.
 
나에게 Reading이란 두 가지다. 텍스트를 통해 세상을 배우는 공부, 그리고 사람을 통해 조직을 이해하는 기술. Reading is Leading. 책을 읽어 식견을 넓히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마음을 잘 읽는 것은 더 중요하다. 책에 몰두하듯 사람에게 몰두하고, 텍스트의 행간을 읽듯 말의 이면을 읽을 때, 비로소 리더는 이끄는 사람이 된다. 연설하는 리더보다 질문하는 리더가, 말하는 리더보다 듣는 리더가 결국 사람의 마음을 얻는다. 그리고 마음을 얻은 리더만이 진정한 변화를 이끌 수 있다.
 
리더의 서재에는 책만 꽂혀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이야기가 켜켜이 쌓여 있어야 한다. 트루먼이 위대한 리더들의 전기에서 지혜를 얻었듯이, 우리는 동료들의 이야기에서 조직의 길을 찾을 수 있다.
 
오늘, 당신은 어떤 페이지를 펼치고 계신가. 책상 위의 책인가, 아니면 눈앞에 있는 동료의 마음인가. 당신은 침묵을 견디는 리더인가.
 
김주성 노원구시설관리공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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