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사이언스)암은 왜 재발할까
네이처, ‘휴면 세포’를 원인으로 지목
스트레스와 염증이 '기상 알람' 역할
2026-01-09 11:28:58 2026-01-09 15:22:34
암과의 싸움에서 승리했다고 믿었던 순간, 다시 찾아오는 재발의 공포는 암 환자들에게 커다란 절망을 안겨줍니다. 유방암 환자의 약 3분의 1, 그리고 다른 많은 암종의 환자들이 성공적인 치료 후 수년, 심지어 수십 년이 지난 뒤 암의 재발을 경험합니다.
 
최근 과학계는 이 미스터리한 '시간차 공격'의 원인을 규명하고 해결책을 찾기 위해 분주합니다. 학계가 주목하는 주범은 바로 ‘휴면 종양 세포(Dormant Tumour Cells)’입니다. 이번주 과학 저널 <네이처(Nature)>는 암이 왜 오랜 시간 뒤에 다시 나타나는지, 그리고 이를 멈출 방법은 무엇인지에 대한 최신 연구 동향을 집중 조명했습니다.
 
지난해 10월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세계 유방암 인식의 달을 맞아 열린 기념행사에 시민들이 참석하고 있다. 매년 10월은 전 세계적으로 ‘유방암 인식의 달’로 지정돼 있다. (사진=뉴시스)
 
숨어있는 시한폭탄 ‘휴면 종양 세포’
 
2017년 유방암 완치 판정을 받은 리사 더튼(Lisa Dutton)씨는 3년 뒤인 2020년, 골수에서 암세포가 발견되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습니다. 새로운 암이 생긴 것이 아니었습니다. 기존 치료 과정에서 살아남아 숨어 있던 세포들이었습니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유방암, 전립선암, 폐암, 대장암 등에서 흔히 발견되는 이 휴면 세포들은 암의 초기 단계, 심지어 진단받기도 전에 암세포가 처음 발생했던 종양(Primary Tumor)에서 떨어져 나와 혈류를 타고 이동합니다. 이들은 골수나 림프절 같은 특정 장기에 자리를 잡고 ‘겨울잠’에 들어갑니다.
 
프레드 허친슨 암 센터의 사이러스 가자르(Cyrus Ghajar) 박사는 “이 세포들은 빠르게 분열하는 세포를 공격하는 기존의 항암 화학요법을 교묘히 피해 간다”고 설명합니다. 분열하지 않고 멈춰 있기 때문에, 항암제의 공격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또한 이들에게는 면역 체계의 감시망을 피하는 능력도 있습니다. 연구자들은 “최대 30% 환자가 휴면 세포를 지닌 것으로 추정되지만, 더 많을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이런 휴면 상태는 일종의 생존 전략입니다. 다나-파버 암 연구소의 면역학자 주디스 아구도(Judith Agudo) 박사는 “종양에서 떨어져 나온 세포가 홀로 생존하기 위해 스스로를 숨기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휴면 세포들은 수천 번 깨어나려 시도하지만 대부분 죽습니다. 이들 휴면 종양 세포가 이렇게 죽거나 평생 잠들어 있다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특정 조건이 갖춰지면 이들은 다시 깨어나 무서운 속도로 분열하면서 전이암을 형성합니다. 연구진은 휴면 세포를 깨우는 ‘알람’으로 다음과 같은 요인들을 지목합니다.
 
▲면역 체계의 교란 : 감기, 독감, 코로나19 등 감염 질환이나 노화로 인해 면역 균형이 깨질 때 ▲염증 및 손상 : 신체 조직의 손상이나 만성적인 염증 반응 ▲환경 변화 : 노화로 인한 골밀도 감소나 폐 등의 장기가 딱딱해지는 섬유화(fibrosis) ▲스트레스 : 만성적인 스트레스 호르몬의 영향.
 
과거에는 재발을 막기 위해 정기 검진을 하며 기다리는 것이 최선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과학자들은 휴면 세포를 적극적으로 찾아내 제거하는 방향으로 치료 패러다임을 전환하고 있습니다. 2018년 미국 FDA가 암 치료제의 범위를 ‘이미 커진 종양을 줄이는 것’에서 ‘2차 종양(재발)을 예방하는 것’까지 확대하면서 관련 연구에 가속도가 붙었습니다.
 
현재 진행 중인 대표적인 임상시험들은 다음과 같은 전략을 사용한다고 <네이처>는 소개합니다.
 
① 세포의 자가포식(Autophagy) 차단 
 
가장 주목받는 전략 중 하나는 암세포의 에너지원을 끊는 것입니다. 휴면 세포는 외부 영양분 공급 없이 생존하기 위해 자신의 세포 소기관을 분해해 에너지로 쓰는 ‘자가포식’ 작용을 합니다.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안젤라 드미셸(Angela DeMichele) 박사가 이끄는 임상시험에서는 말라리아 치료제로 쓰이는 하이드록시클로로퀸(hydroxychloroquine)을 이용해 이 자가포식 과정을 차단했습니다. 대사 차단(mTOR 억제)에 사용되는 에베로리무스(everolimus)와 병용 투여한 결과, 참가자의 87%에서 6~12개월 후 휴면 종양 세포가 사라지는 고무적인 결과를 얻었습니다.
 
② 면역 세포의 유도(CAR-T) 
 
사이러스 가자르(Cyrus Ghajar) 박사팀은 환자의 면역 세포를 유전자 조작한 CAR-T 세포가 숨어있는 휴면 세포를 더 잘 찾아내 공격하도록 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T세포가 휴면 세포와 접촉할 확률을 높여 면역 시스템이 스스로 암세포를 제거하게 만드는 원리입니다.
 
③ 스트레스 반응 조절 
 
하이버셀(HiberCell)사는 암세포가 스트레스 상황에서 생존하게 돕는 효소(PERK)를 억제하는 약물을 개발 중입니다. 세포는 외부 공격을 받으면 스트레스를 완충해 ‘정상 상태로 귀환’하려 합니다. 휴면 세포는 이 회복 체계를 활용해 생존합니다. PERK 차단은 이 회복을 무너뜨리는 방식입니다. 이 연구는 미국 FDA의 패스트트랙 지정을 받았습니다.
 
간으로 전이된 유방암 세포. 최근의 암 연구는 휴면 세포를 ‘기다리는 전략’에서 ‘찾아 없애는 전략’으로 전환하고 있다. (사진=National Cancer Institute)
 
전문가들은 암의 재발을 막는 ‘단 하나의 마법 탄환’은 없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환자의 상태와 암의 종류에 따라 다양한 ‘도구 상자(tool kit)’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희망은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속수무책이었던 ‘죽은 듯 숨어지내는 암세포’를 이제는 식별하고, 추적하며, 공격할 수 있는 방법들이 속속 개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20년 장기 추적 연구 프로그램 ‘SURMOUNT’에 참여 중인 유방암 환자 리사 더튼은 “정보를 아는 것이 나에게는 중요하다.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는 것만으로도 좋은 결과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안도감을 준다”고 말했습니다.
 
암은 끈질긴 적이지만, 인류의 대응 또한 정교해지고 있습니다. 휴면 세포를 타깃으로 하는 정밀 의학의 발전은 ‘완치 후 재발’이라는 암 환자들의 오랜 공포를 끝낼 열쇠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임삼진 객원기자 isj2020@daum.net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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