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기에 '무용지물'…증인 못 부르는 '증감법' 요지경
정권현 전 언론재단 본부장, 국감 불출석에도 국회증감법 위반 '무혐의'
검찰 "국회, 당사자 송달 원칙 안 지켰다…송달기관 편의로 대리인 송달"
절차 따지며 국회 출석 안하고 버티기는 사례 빈번…김범석 쿠팡 의장도
김태규 전 방통위 부위원장, 거푸 불출석…"신문요지 부정확하다" 주장
2026-01-05 06:00:00 2026-01-05 06:00:00
[뉴스토마토 강예슬 기자] 국회에서 출석을 요청하면 반드시 나와야 한다는 법이 있지만, 실제로는 '안 나가고 버티면 그만'이라는 인식이 퍼져 실효성 논란이 끊이지 않습니다. 처벌 수위가 낮아 '벌금만 내면 된다'고 생각하거나, 서류 전달 과정의 허점을 노려 출석을 회피하는 일이 반복되는 겁니다. 심지어 최근엔 국회 국정감사에 불출석해 고발된 증인이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은 사례까지 확인됐습니다. 국회 증인 출석요구서가 전달됐지만, 절차에 문제가 있다며 버틴 경우도 있습니다. <뉴스토마토>가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국회증언감정법)을 둘러싼 논란을 짚어봤습니다. 
 
지난 2023년 국정감사에 불출석해 고발됐던 정권현 전 한국언론진흥재단 광고본부장이 최근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은 걸로 확인됐습니다. 정 전 본부장은 당시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의 기관 증인으로 채택됐으나, 일본 출장을 이유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에 국회는 그를 국회증언감정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습니다. 하지만 사건을 수사한 서울북부지검은 문체위가 당사자에게 직접 출석요구서를 전달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대리인을 통해 송달했다는 점을 들어 정 전 본부장을 무혐의 처분했습니다.
 
이 사건을 구체적으로 보면, 2023년 국감 당시 문체위는 정 전 본부장에게 직접 출석요구서를 전달하는 대신, 언론재단 직원 A씨에게 '국회 행정실을 방문해 요구서를 받으라'고 요청했습니다. 정 전 본부장은 이 직원을 통해 출석요구서를 수령하는 동시에 '미리 잡힌 일본 출장이 있다'며 불출석 사유서도 함께 냈습니다. 그러나 국회는 당시 표완수 언론재단 이사장이 정 전 본부장의 출장을 승인하지 않았는데도 그가 출장을 강행한 건 국회증언감정법에 명시된 '정당한 이유 없는 불출석'이라고 판단, 고발한 겁니다. 
 
국회증언감정법 12조엔 "정당한 이유 없이 (국회에) 출석하지 아니한 증인, 고의로 출석요구서의 수령을 회피한 증인, 보고 또는 서류 제출 요구를 거절한 자, 선서 또는 증언이나 감정을 거부한 증인이나 감정인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상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됐습니다. 
 
2023년 10월17일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표완수 한국언론진흥재단 이사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그런데 검찰이 정 전 본부장에게 무혐의를 준 건 송달 절차상의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민사소송법 183조에 따르면, 출석요구서 송달은 원칙적으로 당사자 주소, 영업소, 사무소 등에 보내야 합니다. 다만 해당 장소를 알지 못하거나, 송달할 수 없을 때는 송달받을 사람이 취업하고 있는 곳으로 보낼 수 있습니다. 또 같은 법 184조에 따라 당사자나 법정대리인 등은 주소 외 장소를 송달받을 장소로 지정하고, 송달 영수인을 정해 대리 송달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서울북부지검은 국회 문체위 측이 이를 지키지 않았다고 본 겁니다. 
 
서울북부지검은 불기소결정서를 통해 "민사소송법상 송달은 당사자에게 직접 서류를 전달해야 하는 교부송달이 원칙임에도 위와 같은 방법은 교부송달 시도조차 하지 않고 송달 기관의 편의만을 위해 대리인을 통해 송달한 것으로 교부송달 원칙에 위배돼 송달이 적법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당사자(정권현 전 본부장)에게 출석요구서를 전달하려고 노력하지 않고, 문체위 행정 편의로 송달 장소를 지정, 정 전 본부장이 아닌 언론재단 직원(대리인)이 출석요구서를 수령해 가도록 한 것은 민사소송법상 송달 원칙에 위배된다는 겁니다.
 
결국 정 전 본부장은 소속 기관장의 승인도 받지 않은 채 일본 출장을 핑계로 국회에 출석하지 않았지만,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게 됐습니다. 
 
해롤드 로저스 쿠팡 대표이사가 지난해 12월31일 국회에서 열린 쿠팡 연석 청문회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더 큰 문제는 이런 엄격한 법 절차를 이로 증인 출석을 거부, 버티는 사례도 있다는 겁니다. 2024년 김태규 전 방송통신위원회 부위원장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그해 8월9일 '언론 장악 청문회' 증인으로 김 부위원장에 출석을 요구했지만, 그는 출석요구서 전달 절차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국회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출석요구서를 당사자에게 직접 전달하지 않은 걸 문제 삼은 겁니다. 
 
이에 과방위는 8월21일 청문회를 앞두고 김 전 부위원장의 부산 자택까지 직접 찾아가기까지 했습니다. 과방위 관계자들은 김 전 부위원장의 배우자에게 출석요구서를 전달, 법적 요건을 갖췄습니다. 그런데 김 전 부위원장은 이번엔 배우자에게 전달된 출석요구서의 신문 요지가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또다시 출석을 거부했습니다. 김 전 부위원장은 법조인 출신으로, 2007년부터 2021년까지 판사로 재직한 바 있습니다. 결국 국회 과방위는 김 부위원장을 국회증언감정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습니다. 
 
우리나라 국민 3370여만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됐지만 청문회 출석 요구에 버티기로 일관하는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 사례도 있습니다. 국회는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고에 대한 경위를 밝히고, 책임을 묻기 위해 지난해 12월30일부터 이틀간 연석 청문회를 열었지만, 김범석 의장은 '해외 거주 중 기존 일정'을 이유로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습니다. 결국 국회는 지난달 31일 김 의장과 그의 동생 김유석 쿠팡 부사장 등을 국회증언감정법 위반으로 고발했습니다. 정당한 이유 없는 불출석이라고 판단한 겁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회 안팎에서는 국회증언감정법을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불출석힌 증인을 고발하더라도 최종 처벌 여부가 결정되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 데다, 처벌 수위 자체가 낮아 실질적인 압박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국회 문체위 관계자는 "국회가 증인 출석을 압박하고, 국회증언감정법 위반으로 고발하겠다고 엄포를 놓지만, 처벌 수위가 약하다 보니 강제력이 있진 않은 것 같다"며 "법엔 징역형까지 규정돼 있는데, 현재까지는 벌금형이 사실상 최고 수위"라고 지적했습니다. 
 
국회 과방위 관계자는 "국회는 국민의 대표들이 모인 곳인데, 지금 쿠팡이 국회에 안 나오고 버티는 행태를 보면 국회를 떠나 대한민국 전체를 무시하고 우롱하는 모습"이라며 "기관과 기업들이 갈수록 국회 출석에 비협조적이기 때문에 국회증언감정법을 강화하려는 움직임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국회 과방위원장인 최민희 의원(민주당)은 지난 6월 국회증언감정법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개정안은 국회 상임위원회가 출석을 요구한 증인이 정당한 이유 없이 불응할 경우, 지정된 장소까지 강제로 데려올 수 있는 '동행명령 권한'을 부여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현재 국정감사와 국정조사에만 한정된 동행명령 규정을 상임위 전체회의 등으로 확대, 법의 실효성을 높이겠다는 취지입니다.
 
강예슬 기자 yeah@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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