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가 장악한 부정선거 선전선동 'STOP THE STEAL'
"부정선거 드러날까 두려워 '정상선거' 규정 안 했다" 주장도
학계 "진짜 정치 사라지고 팬덤문화 남아…정치 양극화 낳아"
2025-02-14 18:11:31 2025-02-14 18:56:21
[뉴스토마토 강예슬 기자] 부정선거 음모론이 서점가를 장악했습니다. 내란수괴 피의자 윤석열씨를 대리하는 도태우 변호사가 쓴 'STOP THE STEAL 대법원 부정선거 은폐의 기록'이 교보문고 2월2주차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겁니다. 탄핵심판이 진행되면서 보수층이 결집하는 여론조사 결과와 같은 맥락으로 풀이됩니다. 이 책에는 '부정선거가 드러날 것을 두려워한 재판부가 판결문에 '정상선거'의 개념이 규정하지 않았다'는 취지의 황당한 주장도 담긴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14일 <뉴스토마토> 취재에 따르면, 교보문고에서 이달 5일부터 11일까지 가장 많이 팔린 책은 'STOP THE STEAL 대법원 부정선거 은폐의 기록'이었습니다. 지난달 20일 출간된 이 책은 민경욱 전 의원의 국회의원선거무효 소송을 대리한 변호인단인 도태우·박주현·윤용진·현성삼 변호사가 썼습니다. 출판은 부정선거 음모론을 담은 기사를 생산하는 언론사 '스카이데일리(도서출판 스카이)'가 맡았습니다. 민 전 의원은 21대 총선에서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소속으로 인천 연수을 후보로 출마했지만, 낙선했습니다. 이후 민 전 의원은 자신의 낙선이 부정선거 탓이라며 부정선거 음모론을 줄기차게 제기하고 있습니다.
'STOP THE STEAL 대법원의 부정선거 은폐 기록' 중 발췌 (이미지=뉴스토마토)
 
책 안에는 민 전 의원이 제기했다가 패소한 대법원 확정판결을 비판하는 내용으로 허무맹랑한 주장이 적잖습니다. 책은 대법원 판결을 ‘기준 없는 판결’이라고 비판하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판결문에 '부정선거가 아닌 정상선거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기준을 제시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책 32쪽에선 "부정선거 문제를 다루는 판결문에 정상선거가 어떤 것인지 전혀 기재돼 있지 않다. 한 마디로 기준이 없는 판결"이라며 "정상선거가 무엇인지 기술되면, 그에 위반되는 것은 부정선거로 규정될 텐데, 마치 이를 두려워하는 듯 정상선거가 무엇인지 판결문을 쓰고 있지 않다"고 주장했습니다.  
 
한 발 더 나아가 저자들은 국회의원선거무효소송에서 선거관리위원회의 손을 든 대법원 판결을 '원고패소 결론을 정해둔 선거 재판'이라고 했습니다. 책은 그 근거로 "대법원은 판결문 4페이지에서 시작해 총 여섯 번이나 증명책임은 원고 측에 있다고 강변했다"며 "선거소송의 결과는 원고패소라는 결론이 정해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입증책임은 원칙적으로 무효를 주장하는 사람에게 있습니다. 그런데 법원이 이런 일반 소송원칙을 따랐다고 재판의 결론을 정해뒀다는 주장을 하는 겁니다.  
 
민 전 의원은 발문에서 "재판만 잘 됐으면 계엄은 없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대법관들의 죄는 그냥 사라지지 않았다"며 "죄는 커질 대로 커져서 5년 뒤 계엄으로 나타났다"고 적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재판 결과를 받지 못한다면 사법절차는 물론 과정도 믿지 않는 윤씨의 사법불신 조장과 같은 행태입니다. 
 
책의 주장에 대해 법조계는 황당하다는 입장입니다. 천윤석 '민주주의를 위한 변호사 모임' 변호사는 "헌법에는 선거의 원칙이 규정돼 있다"며 "정상선거라는 용어를 꼭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은 궤변"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천 변호사는 "'정상OO'라는 용어를 도입하지 않아도, 그 행위가 법이 정한 절차와 내용을 준수하면 정상적인 행위로 인지하는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도 "정상선거란 책에 기재되어 있는 대로 공직선거법등 법에 근거하고 법을 준수한 선거를 말하는 것"이라며 "정상선거를 정의하지 않았다고 이를 두려워하는 것이라는 판단은 완전한 비약"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지난달 2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인근에서 윤석열씨의 지지자들이 집회를 열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특정 진영을 응원하기 위해 책을 사는 현상은 '진짜 정치'가 사라지고 '팬덤 정치'만 남은 결과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어떤 정치인이 책을 낼 때 잘 팔리는 경우가 있는데, 그건 정치인의 팬덤에 의한 영향"이라며 "윤석열씨도 마찬가지"라고 말했습니다.
 
실제 'STOP THE STEAL'의 판매가 크게 늘어난 이면엔 구매인증 운동이 있습니다. 보수층이 활동하는 인터넷 커뮤니티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서는 "이거 안 사면 직무유기", "아주 작은 도움이라도 됐으면 하는 마음에서 2권 구매했다"와 같은 말과 함께 구매인증 게시글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신 교수는 "정치 팬덤 문화는 절대 긍정적이지 않다"며 "정치는 이성적 프로세스에 따라 이뤄져야 하는데 정치를 사람 중심으로 바라보게 하고, 내가 지지하는 정치인이 아니면 다른 사람을 적이라고 생각하니 정치를 선과 악의 이분법적인 양극화 구도를 만든다"고 했습니다.  
 
정치학자인 박상훈씨는 "정당이 대통령 후보를 여론조사와 국민선거인단으로 뽑게 되니까 결국 여론에서 주목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고 자신들이 추종하는 사람들을 거느린 사람이 승자가 된다"며 "대중들은 누군가 필요하다고 하면 영치금을 넣어주기도 하고, 키보드워리어 돈도 모아주고, 책도 사주고 일상화가 되어버렸다"고 해석했습니다. 
  
강예슬 기자 yeah@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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