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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추락하는 날개가 다시 비상하려면
2024-03-07 06:00:00 2024-03-07 06:00:00
“하나를 믿어야 하는데 선택지가 두 개라면 하나를 선택해야지. 판단을 해야 하는데 정보가 부족하면 결정하는 수밖에 없어.” 
 
자신을 보호하는 법무부 직원의 조언에 다니엘은 이렇게 되묻는다.  
 
“믿음을 지어내라고요?” 
 
언뜻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믿음을 선택한다는 말은. 마치 믿음이란 유전자에 새겨진 수정불가한 정보처럼 선택의 문제가 아닌 순응의 문제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영화 <추락의 해부>는 우리에게 곧장 묻는다. 진정 너의 믿음은 자연발생적인 게 맞냐고. 그런 운명의 믿음이라면 너는 그걸 잘 지켜내고 있냐고.  
 
사무엘과 산드라는 서로에게 지적 영감의 대상이자 사랑의 반려자였다. 그들이 함께 하는 일상의 순간들이 작가인 그들에게 훌륭한 글감이 된 걸 보면 그들은 각자일 때보다 함께일 때 서로를 성장시키는 존재였을 것이다. 아니, 그렇게 믿었을 것이다.  
그런데 깨졌다.  
믿음이 깨졌다. 
결국 파괴되었다.  
관계가 파괴되었다. 
적당히 깨지고 파괴되었다면 환부를 도려내는 것으로 충분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의 깨짐과 파괴는 추락이라는 단계에 도달할 만큼 강력했다. 사무엘의 물리적 추락은 산드라의 사회적 추락을 야기했는데, 해부는 바로 그 추락의 원인을 알기 위해 필요한 것이었다. 죽은 자에게만 행해질 수 있는 수술. 예리한 칼날로 피부를 절개해 장기손상 여부를 살피는 일은 수술과 해부가 동일할 것이나, 수술이 죽어가는 이를 살릴 수 있는 반면 해부는 죽음을 삶으로 되돌리지 못한다. 오히려 산 자의 삶마저 죽음과 가깝게 만든다. 
 
무엇이 이 파괴력을 멈출 수 있을 것인가. 부모의 추락과 해부의 전 과정을 겪으며 영혼이 찢기는 아픔을 겪은 아들 다니엘. 사랑의 증표여야 했던 자신이 부모에게 고통을 주는 존재가 됐음을 알게 됐을 때, 육체적 시력상실을 넘어 마음의 눈까지 멀 지경이 됐을 때 문득 다니엘에게 던져진 질문은 갈등, 분열, 와해가 화두가 된 지금의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다. “믿음을 지어내라고요?”라는 말은 선택보다 중요한 건 지키는 일이라는 걸 깨닫게 해주어서이다. 사랑을 해본 사람, 특히 결혼을 해본 사람이라면 긴 말 없이도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종교도 마찬가지다. 어떤 신을 믿느냐보다 얼마나 오래, 얼마나 깊이 신앙을 유지하느냐가 종교생활의 전부일지도 모른다.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믿느냐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그저 믿을 것인지 믿지 않을 것인지에 대한 선택이란 얘기다. 이것이 믿음이 맹목성과 자주 한 몸이 되는 이유다. 마침내 다니엘은 용의자로 몰린 엄마를 믿기로 선택했고 그 힘은 그 둘에게 생명력을 부여했다.   
 
“당신은 나의 믿음을 저버렸어.” 
라는 말은 그래서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관계가 상한 것은 믿지 못할 짓을 한 상대가 아니라 믿겠다는 의지를 놓은 나일 수도 있다. 불완전한 우리 모두는 나약하고 자주 악하고 이기적이다. 하여 이해와 배려보다 비난과 원망이 언제나 더 쉽다. 비난과 원망은 가해임에도 모두들 상처받은 피해자로 스스로를 먼저 규정하고 위로를 갈구하기에 바쁘다. 적잖은 경험 속에서도 우리는 거의 대부분 사무엘과 산드라와 닮아 있어 이미 추락했거나 추락 중이거나 추락 지점에 근접해 있다. 그런 우리들에게서 찾을 희망은 안타깝게도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마지막 한 가지 역할이 남아 있다. 다니엘의 믿음을 지켜주는 것이 그것이다.  
 
선거가 이제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정말 다양하고도 기가 막힌 추락들을 목도하고 있는 요즈음. 우리의 선택이 이 추락을 멈추고 싶어 하는 미래세대에게 조금이나마 빚을 갚는 결정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 땅의 다니엘들이 부디 믿음을 잃지 않도록. 
 
이승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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