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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서른 살의 솔뫼농장
2024-03-06 06:00:00 2024-03-06 06:00:00
며칠 전 충북 괴산 청천면 솔뫼 지역에 다녀왔다. 솔뫼농장 창립 3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오랜만에 장거리 운전을 했다. 솔뫼농장은 25년 전 내가 귀농했을 때 활동했던 유기농 생산자 공동체다. 우리 가족은 솔뫼농장에 7년 정도 참여하다 18년 전 여기를 떠나 수도권으로 유턴했다. 나와 함께 했던 몇몇 농가들도 솔뫼농장을 떠났다. 그러나 새로운 사람들이 바통을 잘 이어받아 이렇게 멋진 서른 살을 축하하는 잔치를 치르게 됐다.  
 
25년 전 신문기자 사표를 내고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이 솔뫼 지역에 왔을 때 솔뫼농장은 내게 오아시스와 같은 존재였다. 단순히 먹고사는 문제를 넘어 공동체와 대안적 가치를 추구하는 회원들의 모습이 반가웠고 큰 공감이 돼 바로 의기투합했다.
 
우리는 허구한 날 모여 울력을 하고 도시 소비자를 만나고 회의를 하고 고스톱을 치고 술을 마시고 때로 목소리 높여 노래를 불렀다. 그 무렵 대부분 30, 40대의 나이였던 우리는 아마 그때가 인생의 황금기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는 유기농업이 고되긴 했지만 힘들고 어려운 길을 함께 간다는 믿음, 개인의 이익 못지않게 공동체의 가치를 위해 노력한다는 자부심, 무엇보다 형제 못지않게 서로에 대한 살가운 정. 울력으로 친환경 화장실을 만든 것부터 시작해 농장 건물을 흙집으로 짓고 가공공장까지 만들었다. 부지런히 농사를 지어도 각자의 생활은 별로 나아지는 것이 없었지만 공동체의 발전을 자기 일처럼 흐뭇해했다. 
 
?이제는 세상에 계시지 않는 예수회 정일우 신부님, 그리고 누룩공동체 조진배 김성환 김정욱 신부님. 쎈뽈수녀회 배숙희 수녀님. 이런 성직자들이 지역의 농부들과 어울려 함께 농사를 지으며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를 풀어나갔다. 성심수녀회 남궁영미 수녀님은 ‘하늘지기 꿈터’라는 지역 어린이 공부방을 헌신적으로 운영했고 서울의 대학생 친구들이 방학 때마다 지역 어린이를 위한 솔맹이 배움터를 열었다.
 
2002년 솔뫼 지역엔 삼송리 채석장을 반대하는 주민들의 움직임이 있었는데 그때 솔뫼농장 회원들이 가장 앞장서 반대 투쟁을 벌이다 세 사람이 구속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당시엔 솔뫼농장 회원들이 지역주민과 함께 농사일을 마치고 저녁때마다 차를 몰아 청주의 탄핵 반대 집회에 참석했다. 
 
기념행사를 마치고 뒤풀이를 하는데, 새로운 얼굴들이 많이 보였다. 내가 떠난 이후 새롭게 솔뫼농장 회원이 된 분들도 계시고 인근에 조성된 한살림마을 주민들도 보였다. 인근 학교 선생님들도 합창단을 꾸려 축하 공연을 했다. 술잔을 주고받으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요즘 농촌에서는 듣기 어려운 기쁜 소식이 많았다. 
 
솔뫼는 면 소재지도 아니고 청천면에 속한 리 가운데 경북 상주 경계 쪽으로 외떨어진 몇 개의 리를 묶어 부르는 이름이다. 일반 면 단위의 절반도 되지 않는 인구 수준이다. 그런데 이 작은 곳에 송면중학교와 송면초등학교가 있다. 20년 전 통폐합과 폐교까지 거론됐지만 이제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솔뫼농장과 한살림마을의 귀농, 귀촌 가족의 아이들 때문이다. 
 
지역 소멸, 농촌 소멸을 걱정해야 하는 오늘 솔뫼는 희망을 만들고 있다. 이런 희망의 씨앗이 다른 지역에 널리 널리 퍼지길 기원해 본다. 그리고 솔뫼와 함께했던 나의 30대가 그런 희망의 씨앗을 만드는 데 작은 힘을 보탰다는 사실에 새삼 가슴이 느꺼워진다. 
 
백승권 비즈라이팅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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