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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신성한 사유재산과 신성모독적 자본주의
2023-12-26 06:00:00 2023-12-26 06:00:00
자유주의 대표 사상가 존 로크에 따르면 사유재산은 신성하다. 정확히 말하면, 신이 인간에게 자연을 선물로 주었고, 인간이 근면한 노동을 통해 자연의 일부를 떼어내 사유재산으로 삼아 풍요를 누릴 것을 명령했기에, 사유재산은 신성하다고 말할 수 있다(『통치에 관한 두 번째 논고』 5장). 물론 로크는 여러 제한, 이를테면 내 몫을 취한 후에도 남에게 그만큼의 몫이 남아있어야 한다는 것, 또 내가 썩혀두지 않고 향유할 수 있을 만큼만을 사유재산으로 취해야 한다는 등의 조건도 붙이고는 있다. 하지만 자신의 노동이든 다른 원천으로부터 얻은 것이든 사유재산은 누구도 침해할 수 없다는 관념은 그 이후 부르주아 혁명과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발전에도 큰 역할을 했다.
 
  그런데 현대사의 숱한 이념대결 속에서 우리는 북한과 같은 공산주의 체제에서는 사유재산이 보장되지 않기에 자본주의 체제가 더 우월하며 그 체제를 ‘수호’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을 흔히 듣곤 한다. 그런데 사유재산도, 시장경제도, 화폐도 모두 자본주의 이전에 이미 있어왔던 것들이다. 그럼 자본주의의 무엇이 특별히 새로운가? 아마도 모든 것을 자본 증식의 관점에서 평가해 투여할 수 있다는 믿음인 것 같다. 그런데 때때로 자본 증식을 절대화하는 이 믿음은 신성한 사유재산을 마구 짓밟는 신성모독으로 이어진다. 지난 10월 개봉한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영화 <플라워 킬링 문>이 그런 ‘신성모독적 자본주의’의 이야기다.
 
  이 영화는 아메리카 원주민 오세이지 족에 대한 이야기다. 땅은 사고팔 수 없다는 사고방식에 따라 사유재산 없이도 자연 속에서 풍요를 누리던 인디언식 삶의 방식이 이미 옛일이 된 19세기 말, 오세이지 족은 계속해서 좁아지는 보호구역으로 밀려나지 않기 위해 부족이 정착할 땅을 ‘돈을 주고’ 구매했다. 그런데 거기서 석유가 발견되었고, 미리 해둔 합의에 따라 ‘석유의 균등 수익권’을 분배받은 부족민들은 당시로 따지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부를 누리게 되었다. 그 이후 1907년부터 23년까지 발생한 무수한 오세이지 족 사람들의 사망 사건 속에서, 영화는 특히 몰리라는 인디언 여성이 백인남성 어니스트와 결혼한 후 그의 자매들과 어머니가 알 수 없는 질병으로 목숨을 잃거나 살해당한 사건에 주목한다. 남편 어니스트가 (그리고 그 지역의 유지였던 백인 헤일이) 몰리의 가족 전체의 수익권을 손에 넣기 위해 형제들과 어머니를 차례대로 죽여 몰리가 이를 모두 상속받고, 마침내 몰리마저 독살하려 계획했음이 드러난다. 이렇게 수익권을 노리고 오세이지 족을 살해한 사건은 추정상 수백 건에 이른다고 한다.
 
  많은 ‘현실주의자들’이 자신의 ‘작고 귀여운’ 사유재산을 신성시하고자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 불가피한 경쟁과 도태 등 자본주의의 제 문제들 역시도 당연시하곤 한다. 마치 경쟁을 통해서라면 모든 것이 정의롭게 될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당신이 그 경쟁에 참여해 받은 정당한 몫이 사유재산인 것은 아직은 그 편이 강자들의 자본 증식에 도움이 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당신이 소수인종이나 빈민과 같은 약자라면, 강자들은 언제라도 규칙을 깨고 당신의 몫을 빼앗아갈 것이다. 사유재산이 진정 신성한 것이라면 일어날 수 없을 신성모독이다. “사유재산은 신성하며 자본주의를 수호해야 한다”는 신앙고백은 그 횡포에서 우리를 지켜주지 못한다. ‘자본주의의 천국’ 미국의 피에 젖은 역사 한 굽이가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다.
 
노경호 독일 본대학 철학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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