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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용산의 겨울’ Coming soon!
2023-11-29 06:00:00 2023-11-29 06:00:00
여러 사람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뭉텅이로 잘려 나간 영화예산은 복구될 것 같지 않다. 지난 14일과 15일 이틀에 걸쳐 열린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예산결산위원회에서 민주당 의원들의 영화예산 복구 요구에 문화체육관광부는 애초 거부의사를 표했다가 보류로 한발 물러섰는데, 이튿날 결국 ‘정부안 유지’로 입장을 정리했다고 한다. 단돈 1원의 변화도 없을 것이란 얘기다.
 
이런 때에 개봉한 <서울의 봄>은 영화인들에게 희망의 불씨가 되고 있다. 극장에 관객이 든다는 현상 때문만이 아니라 내용적 측면에서 더 그렇다. 영화는 10·26 사태 이후 서울에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려던 찰나, 전두광을 위시한 하나회 소속 반란군들이 일으킨 12·12 군사쿠데타를 다루고 있다. 정상호 육군참모총장을 납치해 서울을 함락시키기까지의 긴박했던 9시간 동안 전두광과 노태건 등 권력에 눈이 먼 자들의 야만성과 잔학함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역사적 진실, 진실은 진실이되 ‘불편한’ 진실을 담은 작품인 것이다. 
 
내년 총선을 앞둔 시점에 행여나 불똥이 튈까 여당으로서는 괜히 옷깃을 여미게 될 수도 있겠다. 원칙과 신념보다 욕망과 이해가 우선인 건 여야를 가리지 않을 것이나, 국민의 눈에 그 시절의 군부가 지금의 검찰로 대입될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그러니 유인촌 장관의 발언을 빌리자면 이런 영화는 ‘국가 이익에 반하는 작품’으로 분류되기 십상이다. 유장관은 문화체육특별보좌관이던 지난 8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굳이 정치적 표현을 하고 싶다면 말릴 수 없다. (중략) 다만 정부 예산을 지원하라고 요구해선 안 된다. 나랏돈으로 국가 이익에 반하는 작품을 만드는 게 말이 되나.”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가 장관이 된 이후 이 영화가 상영됐다는 것은 정치적 표현이라고 보지 않았거나, 정부 지원금이 투입되지 않았거나. 혹자는 이 영화에 유장관의 아들이 출연한 사실을 거론하기도 한다. 이유가 무엇이든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는 사실이 반가울 따름이다. 
 
반가운 일이 또 있다. 지난 17일 법원에서 날아든 낭보가 그것이다. 법원은 이명박 정부 때 블랙리스트에 등재된 문화예술계 인사들에게 이명박 전 대통령과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소송이 시작된 지 무려 5년만이다. 중요한 건 이번 승소로 문체부 장관 인사청문회 때 유인촌 후보자가 발언한 내용의 진위를 다시금 따질 수 있는 여지를 주었다는 점이다. 유장관은 분명 “이명박 정부에서 블랙리스트라는 말도 없었고 실체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다들 아시다시피 유장관은 이명박 정부에서 문체부 장관을 지냈던 분이다.
 
용산의 봄이 시작된 이래 가장 많이 듣고 있는 말이 ‘확실히 영화판은 좌파로 구분되고 있다’는 말이다. 용산의 시선보다 더 중요한 건 이 두 가지이다. 대중이 ‘바라보는’ 영화판의 실체가 무엇인가와 그들이 ‘바라는’ 영화판은 무엇이냐 하는 것. 전자의 답은 단정할 수 없지만 후자의 답은 누구라도 같을 것이다. 어떤 목소리라도 담을 수 있어야 하는 게 영화라고. 나와 목소리가 다르다고 해서 편가르기를 한다면 아군끼리 총질하던 1979년 12월 12일의 상황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나아가 그런 찬탈이 영원한가 말이다. 부디 잊지 말아야 한다. 역사는 언젠가 반드시 재평가의 과정을 거친다는 것을. 다행히 아직 본회의가 열리지 않았다. 2024년도 예산안 의결까지 실낱같은 희망이 조금 남아있다는 얘기다. 마지막 기회를 놓치면 용산의 계절은 바뀔지도 모른다. ‘서울의 봄’을 잃어버렸던 아픔을 우리 국민이 두 번 겪지는 않을 테니.
 
이승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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