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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팬덤정치는 본질이 아니라 현상이다
2023-09-01 06:00:00 2023-09-01 06:00:00
이토록 정치가 불신 받던 때가 있었을까. 지역을 다녀보면 “이 놈도 저 놈도 다 꼴보기 싫다”고 하신다. 여론조사 상에도 나타난다. 무당층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무당층 당’이 양당 지지율을 위협하는 조사결과가 연일 나온다.
 
10여년 전 이와 유사했던 적이 또 있었다. 바로 새정치를 표방하며 안철수 의원이 돌풍을 일으켰던 때다. 당시에도 기성 정당에 대한 비토정서가 어느 때보다 높았다. 그러나 그때와 지금이 명백히 다른 점은 2023년의 무당층 국민들은 정치의 가능성에 대한 일말의 기대가 없다는 점이다. 양당을 제외한 기타 원내 정당은 물론 신당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저조한 지지율이 나타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우리 정치사에 진영 간 대립은 늘 있어왔다. 그러나 그 첨예한 대립의 마지막 순간, 역사의 물줄기를 결정하는 화룡점정은 중도층 국민의 몫이었다. 1987년 6월 항쟁의 마침표는 거리로 나온 넥타이 부대가 찍었다. 우리 보수정당에겐 뼈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는 2017년 대통령 탄핵도 보다 못한 중도보수 국민이 나선 결과다. 그 조타수 역할을 해오던 국민들이 이제 정치의 광장을 떠나고 있는 것이다.
 
중도층 국민이 떠난 경기장에 남는 것은 육탄전이다. 눈치 볼 존재가 없으니 지켜야할 선도 없다. 상대를 더 아프게 괴롭히는 것이 실력의 척도가 된다. 각자 지지층의 환호만 받으면 된다. 가장 뼈아픈 결과는 누군가 좋은 비전을 갖고 혜성처럼 정치무대에 등장해도 박수쳐줄 국민이 남아있지 않게 된다는 점이다.
 
원흉으로 ‘팬덤정치’를 지목하는 분들이 있다. 강성 지지층이 문제라며, 우리 정치를 망가뜨린 주범이라는 주장이다. 동의하지 않는다. 팬덤 정치는 본질이 아니라 현상이다. 우리 정치가 늘상 외쳐왔던 구호가 있다. 정치에 관심 가져 주십사, 투표해 주십사 간절히 호소해왔다. 관심 가져 주시는 만큼 우리 모두의 삶이 바뀐다고 외쳤던 것이 매 선거의 풍경이다.
 
아직 ‘뭣 모르는’ 초선 의원이어서 일까. 나는 그분들의 마음만큼은 십분 이해한다. 오죽 정치가 답답하면 그렇게까지 시간과 돈을 들여가며 몰입하실까. 당최 바뀌는 것 하나 없고 일말의 효능감도 주지 못하는 정치에 대한 분노를 표현하고 계신 것이다. 국민을 분노하게 한 주범이 급기야 국민이 직접 정치에 깊이 몰입하자 우리 정치의 원흉처럼 매도하고 있는 셈이다. 대단히 오만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 분노를 정치적 자산으로 삼으려는 정치인들이다. 당장의 SNS ‘좋아요’ 수, 당장의 유튜브 조회수, 나아가 당장의 후원금을 위해 주권자 국민을 대상화 하는 것이다. 정치의 주체가 되어야할 주권자를 치어리더로 전락시키는 방식이다. ‘지지층 국민의 뜻을 제대로 받드는 것’이라고 항변할지 모르지만 역설적으로 지지층 국민을 가장 무시하는 태도에 가깝다.
 
사실 스스로에게도 늘 다짐하는 대목이다. 왜 그런 유혹이 없었을까. 당장의 뜨거움에 기대는 방식에 손을 벌리고 싶은 적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눈 딱 감고 한 시절 성원 받고 권력을 얻고 난 다음부터 좋은 정치를 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비릿한 마음도 은연중에 스쳐갔을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알고 있듯 잠깐 반짝하는 하루살이 정치다. 못난 과거를 지우고자 더 괴물이 되는 경우를 허다하게 봤다. 그런 뻔하디 뻔한 정치인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지금 우리 정치에 필요한 것은 용기다. 때로 지지층 국민의 뜻이 더 큰 다수 국민의 뜻과 다를 때 용기있게 설득에 나설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분노가 이끄는대로 직진하면 공멸할 수밖에 없다’고 정직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당장은 호응보다 비난이 많을지라도, 이럴 때일수록 우리 정치가 입버릇처럼 말하던대로 “국민을 믿어야” 한다. 민심의 단면은 천심일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지만 결국에는 현명한 길로 나아간다는 믿음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 믿음아래 지지층을 끝끝내 설득해내겠다는 정치인의 그 용기야말로 자신의 지지층을 ‘함께 세상을 바꿔나갈 동업자’로 존중하는 겸허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막스 베버는 정치인의 덕목으로 열정, 책임감, 균형감각을 말하며 ‘신념윤리’와 ‘책임윤리’를 이야기했다. 베버가 말하는 ‘신념윤리’란 말 그대로 자신의 신념 앞에 부끄럽지 않은 정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베버는 신념윤리 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한다. 신념에 따른 행위의 결과까지 고민할 줄 아는 ‘책임윤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팬덤 지지층 국민에 편승하는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우리 정치에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지 고민하고 있을까? 당장의 환호만 받으면 우리 정치가, 나아가 국민의 삶이 황폐화 되도 상관없다는 것일까. 적어도 오늘날 우리 정치는 ‘신념윤리’도 ‘책임윤리’도 모두 내팽개친 상태다.
 
정치인의 한사람으로서 뼈아픈 송구한 마음을 담아 글을 마친다. 모든 순간 책임윤리를 고민하는 정치인이 되겠다는 다짐도 드린다. 국민의 힘을 믿고 언제나 용기있게 정치하겠습니다.
 
허은아 국민의힘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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