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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일본에게 바란다. 일본인에게 말한다
2023-08-24 06:00:00 2023-08-24 06:00:00
코로나19가 확산되던 2020년 3월 즈음이다. 여러 언론은 영국에서 사람들이 휴지, 냉동식품, 생필품 등을 사재기(공황구매, panic buying)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산업혁명을 시작한 20세기 최강국 영국에서, 선진국민 중 선진국민이라고 자부하는 영국인들이, 코로나19라는 질병의 공포 속에서 보인 모습이었다. 코로나19라는 질병으로 인한 막연한 죽음의 공포 앞에서, 공동체 의식은 파괴되고 독자 생존의 욕구가 노골적으로 분출된 것이다.
 
나는 이 모습을 보면서 ‘동일본 대지진’ 당시 일본인의 모습을 떠올렸다.
 
2011년 3월 11일에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 일본 국내 지진 관측기록상 최고 규모인 9.1의 지진이었다. 이 지진으로 인한 피해는 사망자 1만5900명, 실종자 2523명, 이재민 50만명, 파손 주택 40만여채, 피해 선박 약 2만 9천척에 이른다. 최대 9.3m 높이의 초대형 쓰나미가 발생하여 서울특별시 면적의 땅이 침수되었고, 15만명의 사람들이 피난길에 나섰다(2022년 기준). 이 지진으로 2011년 3월 12일 세계 역사상 가장 심각한 원자력 사고인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가 발생했다. ‘지진’과 ‘쓰나미’라는 불가항력의 천재(天災)에 더하여 ‘원자력 발전소 폭발’이라는 엄청난 인재(人災)가 한꺼번에 일본을 덮친 것이다.
 
내가 2020년 3월 영국에서 벌어진 영국인의 ‘사재기’를 보면서 그로부터 9년 전인 2011년 3월 일본에서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을 떠올린 이유는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다. 일본인들이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이라는 엄청난 재난 상황에서 보인 모습 때문이다.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당시, 그들은 흔들리는 땅과 밀려오는 파도의 압도적 힘, 함께 피신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눈 앞에 두고서도, 질서정연하게 피신했다. 그들은 공포에 압도당하면서도, 눈물을 흘리면서도, 다른 사람을 앞서가지 않았고 함께 길을 걸어가며 피신했다. 도저히 죽음의 공포를 눈앞에 두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집단적인 차분함’이었다. 그 순간 일본인들은 공동체 의식의 최정점을 보여줬다.
 
영국인들은 죽음의 막연한 공포 때문에 ‘사재기’했으나, 일본인들은 죽음의 현실적 공포 앞에서도 질서를 선택했다. 그들은 죽음의 두려움을 함께 이기려고 했고, 함께 살려고 한 것이다. 나는 일본인들의 이 모습에 감동했고 존경스러웠다.
 
그런데, 일본 정부는 2023년 8월 22일 “2023년 8월 24일부터 134만톤의 핵오염수를 30년간 방류하겠다”고 결정했다. 일본 정부는 핵오염수의 해양 방출이 ‘과학적’으로 그리고 ‘기술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강변하면서, 핵오염수로 인한 위험을 일본이 아닌 모든 국가에, 일본인이 아닌 모든 인류에게 전가하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이에 대해 중국 정부는 ”오염수 해양 방류는 중국 등 일본 인근 국가와 국제사회에 핵 오염의 위협을 전가하는 것”이라고 항의했다. 다만, 윤석열 정부는 (어처구니 없게도) “과학적, 기술적 문제는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 다만 우리 정부가 오염수 방류를 찬성 또는 지지하는 것은 아님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고 발표했다.
 
12년 전의 일본인과 오늘의 일본인은 다른 사람들일까. 현실의 ‘쓰나미’ 앞에서도 최고의 공동체 의식을 보인 일본인들이 동일본 대지진의 참상을 보며 극도의 이기적 의식으로 퇴행한 것일까.
 
일본인에게 말하고 싶다. 무엇보다 그대들이 동일본 대지진으로 입은 고통을 위로한다고. 우리 모두는 그 참상을 함께 슬퍼하고 있다고. 그대들의 고통은 그대들의 책임이 아니라, 천재지변으로 비롯된 것이라고. 그래서, 그 고통을 그 참상을 우리 인류가 함께 해결해야 하고, 함께 극복해야 한다고.
 
나는 또, 일본인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우리 대한민국 국민이 일본의 ‘핵오염수 방출 결정’을 규탄하는 것은 그대들을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고. 우리는 ‘핵오염수 방출 결정’ 이외의 다른 해결방법을 선택하자고 촉구하는 것이라고. 우리는 일본인들이 다시 위대한 공동체의 의식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라고. 그것이 일본인의 본래 모습이고 일본이 선택해야 하는 길이라고.
 
곽상언 더불어민주당 종로구지역위원장·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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