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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강성 고객이 되는 이유
2023-08-21 06:00:00 2023-08-21 06:00:00
정수기 냉수가 시원치 않아 서비스센터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센터의 상담원은 정수기 기종과 증상을 확인했습니다. 이전에 썼던 정수기와 비교할 때 온도 차이가 확연해 내부점검이 필요해 보였습니다. 상담원은 정수기 뒷면의 먼지망을 적어도 일주일에 한번씩은 청소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3개월마다 점검을 받고 있어도, 고객 스스로 먼지망 청소는 해야한다고 했습니다. 먼지망 청소 외에는 서비스 기사가 가도 별다른 해결책은 없으며 약정 기간 내에 정수기 제품을 교환할 수 있는 방법 역시 없다고 했습니다.
 
소비자 불만에 대처하는 상담원의 태도에 조금 혼란스러웠습니다. 하루에 적게는 수십명, 많게는 수백명에 이르는 민원을 감당해야 하는 '감정노동자'인 콜센터 직원들의 고충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편입니다. 텔레마케팅 전화가 올 때 가입 의사가 없다면 미안하다며 전화를 빨리 끊습니다. 그 시간에 다른 사람에게 한명이라도 판촉 전화를 돌리는 게 낫겠다 싶어서 입니다. 또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태도로 말하려 노력합니다. 
 
이날도 마찬가지로 정수기 상태를 설명하며 점검서비스를 요청했습니다. 10분여의 긴 통화 끝에 콜센터 직원은 이를 거부했습니다. 정수기의 경우 3~5년에 달하는 약정기간 동안 해지하지 못하는 이미 '잡아둔' 고객이기 때문에 성심성의껏 서비스를 제공할 필요성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판단일까요. 아니면 여름 시기, 서비스 요청은 쏟아지는 데 반해 일손은 부족해 소비자 스스로 문제 해결을 유도하라는 별도의 매뉴얼이라도 존재했던 것일까요. 민원의 내용과 심각성, 민원인의 성향에 따라 단계별 구분하는 것인지 내심 궁금해졌습니다.
 
주변에 물으니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리고는 하나같이 '강경한 태도로 나가라'고 조언해줬습니다. 점잖게 말하면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하며 소비자 권리를 찾을 수 없다는 겁니다. 소위 말해 '쎈' 고객이 돼야한다는 건데요. 정말 그래야 할지 고민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필요한 서비스를 단번에 받고자 하는 소비자는 상담원에게 실제보다 더 과하게 증상을 포장해 이야기해야 하는 것일까요. 목소리가 크거나 억지를 부리는 등 다소 '강성'으로 분류된 소비자들의 민원을 끊어내기 위해 업체는 으레 재빨리 '당근책'을 제시하곤 하니까요.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이미 이같은 일을 직·간접적으로 익히 경험해온 터라 강성고객이 되는 것이 가장 빠른 해결책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업체들 입장에서 본다면, 다양한 결의 소비자들을 상대하다보니 고객 성향에 따라 반응하고 응대하며 이같이 서로 다른 응대 패턴을 보이게 된 것일 수 있겠습니다.
 
서비스에 소극적이고 보수적인 업체들의 태도가 강성 고객을 만들어내는 것일까요, 아니면 그 반대일까요. 분명한 점은 이러한 일이 반복되면 양측이 서로 악해지며 손해를 보는 악순환이 계속 되고 말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기업은 강성 고객이 아닌 보통의 고객들에겐 서비스 장벽을 높일 것이고, 소비자는 어쨌든 원하는 서비스를 받아야 하니 이전보다 더욱 강경한 태도로 나가게 될 것입니다.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누구의 책임인지 따져묻는 것은 무의미한 일인 듯 싶습니다. 양측이 스스로 변화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야겠죠. 소비자는 사전에 충분한 정보를 습득하고 자체 해결 방법을 찾아보는 등 필요한 조치를 먼저 취해보는 게, 기업(상담원)은 소비자의 요구를 귀기울여 듣고 성심성의껏 응대하는 자세를 갖추는 게 정도라는 것만 기억한다면, 목소리 큰 사람이 장땡인 이 불편한 서비스 현장도 조금은 개선되지 않을까요. 
 
이보라 중기팀장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나볏 중기IT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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