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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삼성, 엘리엇과 윤정부의 자가당착
2023-07-20 10:06:08 2023-07-20 10:06:08
도끼로 제 발등을 찍습니다. 먼저 야당은 여당의 권력남용 행태를 비판합니다. 그러다 막상 정권이 바뀌면 여당이 된 야당도 비슷한 전철을 밟습니다. 흔히 권력에 취한다고 하죠. 야당이 비판했던 논리를 여당이 취하면 ‘내로남불’이 됩니다. 그래서 정권에 유리한 법이나 법리는 바뀌지 않나 봅니다. 그러니 비판 주체와 객체가 바뀌어 자기논리에 공격당하는 자가당착에 빠지기도 쉽습니다.
 
최근 삼성, 엘리엇과 윤정부를 둘러싼 1400억원 손해배상 소송이 화제입니다. 미국 사모펀드 엘리엇이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2018년에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 일명 엘리엇 사건 관련해 법무부는 지난 18일 중재판정부에 판정의 해석과 정정을 신청하고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취소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판정을 부정하는 논리는 사건 당시 국민연금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주주총회에서 독립적 판단으로 의결권을 행사했고 여기에 정부 책임은 없다는 것입니다. 이제 법무부는 국민연금과 정부 연결성을 부인하고 독립성을 입증해야만 합니다. 이 상황에서 금융기관과 KT, 포스코 등 소유분산기업 인사에 개입했던 정황은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국정농단 사건 당시와 지금 달라진 게 없는 국민연금 지배구조는 약점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당초 1400억 손배 판결 후 법무부 조치가 주목을 받았습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검사 시절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박근혜 전 대통령을 수사해 권력남용, 뇌물죄 등 혐의를 입증했던 사건이기 때문이죠. 그런 한 장관이 사건 범죄로 손해를 입었다는 엘리엇 주장을 부정하면 모순이 됩니다. 그렇다고 판결을 수용할 수도 없습니다. 국민 세금으로 1400억을 물어줘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정부가 이재용 회장과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구상권을 행사해야 하는 문제로도 번집니다. 이 경우 윤정부는 용인 반도체 투자를 결정짓는 등 국가 경제 측면에서 도움을 주고 있는 삼성과 껄끄러운 관계에 놓일 것이 자명합니다.
 
이런 난제 속에 등장한 게 국민연금과 정부의 선긋기입니다. 그나마 대안이 될 수 있지만 국민연금 관치논란에 휘말렸던 재계 당사자들은 씁쓸함을 감추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런 정성적 문제보다 심각한 결함도 있습니다.
 
재계는 국민연금 독립성이 결여돼 있다고 오랫동안 주장해왔습니다. 지배구조와 기금수익률을 고려하지 않은 채 기업 경영에 과도하게 관여해왔다는 비판입니다. 주된 논거는 국민연금 의사결정 기구에 정부 인사가 많다는 것입니다. 국민연금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는 정부위원 등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이제 이런 논거는 엘리엇의 무기가 될 테죠.
 
국민연금 독립성 문제는 국정농단 사건 재판 당시 권력남용과 뇌물죄를 입증하는 검찰의 무기였습니다. 윤 대통령과 한 장관은 당시 국민연금의 문제를 알았지만 정권을 잡고서도 고치진 않았습니다. 되레 KT 등과의 마찰로 연금 관치논란만 커졌습니다. 이제 내가 쓴 도끼가 엘리엇 손에 주어진 꼴입니다. 반복되는 역사의 희극은 언제쯤 멈출까요.
 
이재영 산업1부 선임기자 leealiv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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