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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뱅크런' 공포 잠재우려면
2023-04-20 08:00:00 2023-04-20 08:00:00
2011년은 저축은행 대수술이 촉발된 때입니다. 그해 1월14일 금융위원회가 서울 소재 삼화저축은행의 영업정지를 결정했는데요. 저축은행의 '호시절'이 끝났을 때쯤 저도 금융권 기자실에 발을 들였습니다.
 
당시 금융권 출입기자들은 주말마다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습니다. 금융당국이 뱅크런(대량 현금 인출 사태) 충격파를 줄이기 위해 월요일 직전인 월요일이나 토요일에 영업정지 발표를 했기 때문인데요. 
 
다음달인 2월 셋째 주말 부산저축은행 계열의 4곳이 다시 영업정지 처분을 받았습니다. 그 해가 끝나기 전에 저축은행 10여곳이 추가로 문을 닫았습니다. 저축은행 사태의 피해자만 10만여명, 27조원이 넘는 공적자금이 투입된 쓰라린 기억입니다.
 
당시에도 저축은행 영업정지가 예상되는 '살생부'가 공공연하게 돌았었는데요. 이른바 '88클럽'에 들지 못한 불량 회사들이 이름을 올렸습니다.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 비율이 8% 이상이면서 고정이하 여신(부실채권) 비율이 8% 미만일 경우 '88클럽'에 들었다고 했습니다. 속칭 '지라시' 성격의 명단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명단에 오른 상당수가 실제로 문을 닫았습니다.
 
10년이 더 지난 지금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으로 위력을 실감한 '뱅크런' 공포가 국내 금융권을 덮치고 있습니다. 어느 때보다 강력한 긴축으로 경제 위기 공포감이 만연한 가운데, 금융위기를 촉발할 '약한 고리'가 어디서 나올지 모두가 민감한 상태입니다.
 
최근에는 "(긴급) A, B저축은행 PF(프로젝트 파이낸싱) 1조원대 결손 발생, 지급정지 예정, 잔액 모두 인출 요망"이라는 문자가 불특정 다수에게 발송되면서 두 저축은행은 물론 금융당국과 금융권이 곤욕을 치렀습니다. 저축은행 업계는 부동산 PF 부실 가능성이 제기되던 터라 해명하느라 진땀을 뺐습니다. 저축은행업계는 다른 금융업권 대비 상대적으로 뱅크런에 민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위에 언급한 것처럼 2011년 저축은행 사태 당시 뱅크런을 이미 경험한 바 있기 때문이겠지요.
 
터무니 없는 내용의 지라시시지만 '단순 해프닝'으로 넘길 수만은 없습니다. 확인되지 않은 얘기는 전체 특정 금융업권을 넘어 금융·경제 전체 시스템을 위기로 몰아넣기에 충분합니다. 지난해 10월 레고랜드 채무불이행 사태로 자금경색에 대한 공포가 만연했을 당시에도 출처불명의 '지라시'가 돌았습니다. 부동산 PF 부실화로 유동성 위기에 몰린 증권사 몇 곳이 곧 매각된다는 얘기였지요. 당시는 레고랜드 사태 여파로 자금시장 경색 우려가 커진 상황이라 소문의 여파는 생각보다 컸습니다. 회사채와 CP 금리는 연일 치솟았고, 기업들의 자금조달 부담도 대폭 커졌습니다.
 
소문의 근원지를 찾기보다 중요한 것은 흔들리지 않는 시장 환경을 조성하는 것입니다. 저축은행 사태 때에도 예금주 수천명이 몰려 전국 저축은행 영업점이 아수라장이 됐는데, 정부는"영업정지는 더 이상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유동성에 문제가 없으니 안심하라"는 해명을 거듭 내놨지만 사람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금융당국의 '괜찮다'는 해명이 국민들에게 닿기 위해선 투명한 정보 공개와 부실금융기관에 대한 철저한 관리 감독이 병행돼야 할 것입니다.
 
이종용 금융증권부 선임기자 yo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증권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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