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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익도의 밴드유랑)오로라, 바이킹을 먹은 게 분명해
'음의 요정'이 내려왔다…'겨울왕국2'의 그 목소리
노르웨이 싱어송라이터…3년 만의 단독 내한 공연
2023-02-21 16:07:59 2023-02-21 16:07:59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솔♭-파-솔♭-미♭’
 
3년 전, 세계를 휩쓸던 그 유령 같은 목소리와 몽환적 선율. 애니메이션 ‘겨울왕국 2’을 봤다면 익숙할 ‘그 목소리(The Voice)’의 주인공.
 
'음의 요정'이 있다면 아마도 신성한 이런 형상의 초록빛이었을지도. 19일 서울 예스24라이브홀의 무대에 선 노르웨이 싱어송라이터 오로라(AURORA·본명 에우로라 악스네스·26)가 금발의 단발 머리를 격렬히 흔들며 나비 같은 고운 손짓을 펼칠 때, 눈 앞에 여러 형상들이 스쳐갔습니다. 빙하와 만년설, 트롤과 피오르, 엘프 나라로 대표되는 노르웨이와 북유럽 국가들이.
 
지난 19일 서울 예스24라이브홀의 무대에 선 노르웨이 싱어송라이터 오로라(AURORA·본명 에우로라 악스네스·26). 사진=라이브네이션코리아
 
바이킹의 고도(古都) 베르겐에 사는 이 음악가는 현재 세계음악 업계에서 가장 뜨거운 뮤지션 중 한 명. 신비롭고 몽환적이며 초자연적인 그의 음악은 전 세계에 닿고 있습니다. 영화 ‘겨울왕국2’ 주인공 엘사의 잠을 깨운 묘한 목소리의 주인공이 그 임을 안다면 대략의 힌트 정도는 얻고 들어가는 셈. 사실 영화 참여 전부터 세계적 팬덤을 일군 음악가입니다. 팝스타 빌리 아일리시, 케이티 페리가 오로라의 팬.  영국의 전설적 전자음악 듀오 케미컬 브러더스의 곡에도 참여했습니다.
 
어릴 적 전자 피아노 소리에 매혹된 그는 10살 때부터 곡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다양한 음악 장르를 탐미하며 자신의 음악관, 예술관을 확장시켜왔습니다. 가수 엔야로부터 모성애 같은 천국의 음성을, 프로그레시브 메탈 밴드 마스토돈에게서 록적 폭발이 주는 짜릿함을 흡수했다고. 소설처럼 드라마틱한 그의 가사들은 레너드 코언, 밥 딜런의 영향입니다.
 
지난 2019년 노들섬에서 첫 내한 공연 당시 900명 앞에서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낸지 3년 만에 다시 찾은 한국입니다.
 
지난 19일 서울 예스24라이브홀의 무대에 선 노르웨이 싱어송라이터 오로라(AURORA·본명 에우로라 악스네스·26). 사진=라이브네이션코리아
 
이날 공연에 앞서 대부분의 곡을 요술가루 같은 전자기타 잔향을 뿜어대는 테아 왕(Thea Wang)을 오프닝 무대에 세우는가 하면, 푸른 목초지와 차가운 얼음의 공존이 연상되는 배경음악들을 드리우며(아이리스 'lavender and heaven', 낸시 시나트라 'Bang Bang', 마그넷 'Gently Johnny'), 분위기를 예열했습니다.
 
저녁 7시 13분, 명멸하는 푸른 전구빛 사이로 ‘솔♭-파-솔♭-미♭’를 부르던 그 요정 같은 외모, 음색, 악곡이 서서히 번져가자('Churchyard'), 홀 내부는 이미 백색왜성으로 변해있었습니다. 공기를 가르는 음성이 흡사 초록 비와 파란 달을 눈 앞에내리듯. 안개 자욱한 꿈결이나 죽은 영령을 위무하는 것처럼 퍼져가는 목소리는 단번에 1500여 관객을 숨 죽이게 했습니다.
 
부서질듯 가녀린 체구로 바이킹을 먹고 자란 게 아니었을까. 맑고 청아한 음색 땐 나비 같은 몸짓, 포효 땐 부족 같은 원시적 에너지의 동작. 빨간 해 같은 조명이 떠오르고('Blood In The Wine'), 그것이 다시 거대한 천막을 일렁이는 녹색의 오로라빛 조명처럼 번져갈 때('All Is Soft Inside'),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음의 요정이 고막에 내려 앉은 게 분명하구나!' 북유럽의 부서질듯 얇은 얼음처럼 가는 목소리로 그가 얘기합니다.
 
"슬픔이 있다면 부디 여기 두고 가세요. 당신은 충분히 강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랑스럽습니다. 다시 일어설 힘이 생길 겁니다."('The River'를 부르기 전)
 
지난 19일 서울 예스24라이브홀의 무대에 선 노르웨이 싱어송라이터 오로라(AURORA·본명 에우로라 악스네스·26). 사진=라이브네이션코리아
 
동화 같은 세계관을 구축하는 그는 환경 문제, 개인주의, 페미니즘, 동성애 같은 사회적 현안도 음악으로 빚어내기로 유명합니다. 프로그래밍 된 전자 건반에서 신비로운 멜로디를('Soft Universe'), 드럼의 폭발적인 댐핑('Queendom')을 연신 뿜어낸 뒤 그가 내는 가녀리지만 뼈가 있는 음성.
 
"사실 당신의 성별이 무엇이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한 건, 당신은 당신 그대로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이죠. (곡 'Cure For Me'에 앞서)"
 
이날 14곡을 쏟아낸 뒤 3곡의 앙코르까지 펼친 그는 "서로가 서로에게 일깨우는 사랑의 가치란 아름다운 것"이라며 "그 존재가 바로 여러분들"이라고 했습니다. 깊고 오묘한 옥색의 외계(外界)인 같다가도, 실수를 연발할 때 보면 영락없는 지구인이 분명하다는 것.
 
"한국에 돌아와서 정말 기뻐요. 무대에 오르면서 너무 떨려서 무슨 얘기 해야할지 싹 다 잊어버린 것 있죠. (관객 한 명을 보며) 볼에 칠한 거 그거 너무 예쁜데? (다른 관객을 보며) 아, 당신은 생일이세요? (한국어로)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마지막 엔딩곡으로 깔리는 크랜베리스의 ‘드림’. 오로라 퇴장 뒤에도 계속해 고막을 잠식해 들어가는 오리어던의 ‘종이 울리듯 맑은 소리(bell-clear voicings)’... 꿈과 사랑, 청춘, 그리고 자유의 세계로…
 
지난 19일 서울 예스24라이브홀의 무대에 선 노르웨이 싱어송라이터 오로라(AURORA·본명 에우로라 악스네스·26). 사진=라이브네이션코리아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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